"낙태권보다 경제"...공화당 지지로 돌아선 美 '위기의 주부들'
캘리포니아 링컨에 사는 다나 지아나시(68·여)는 오는 8일 미국 하원과 상원(3분의 1) 의원을 선출하는 중간선거에서 사전투표를 통해 공화당에 표를 던졌다고 말했다. 공화당을 찍은 건 처음이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최대 관심사는 인플레이션과 남부 국경 지역의 안보 문제였다고 했다. 지아나시는 "지금 민주당은 미국을 망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수입은 고정돼 있는데, 연료비가 너무 올랐다"고 말했다.
코네티컷 다리엔에 거주하는 루스 앤 램지(76·여)는 아직 마음을 정하진 않았지만, 경제에 대한 걱정 때문에 공화당으로 기울고 있다고 했다. 그는 "사회 문제에선 민주당을 신뢰하지만, 경제 분야에선 공화당을 더 신뢰한다"며 "경제가 최우선이다. 생활비가 너무 올랐다"고 했다.
중간선거를 1주일 앞둔 시점에서 미국 교외에 거주하는 백인 여성 계층이 공화당 쪽으로 기울고 있다고 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교외에 거주하는 백인 여성 유권자는 약 20%로 이들은 2018년 선거에서 민주당에 하원 40석 이상을 가져다준 강력한 지지층이었다. 교외 백인 여성은 ABC가 2004년부터 8년간 방영한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해, 이후 하나의 계층으로 통용된다.
WSJ는 지난주(10월 22~26일) 전국의 유권자 15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최근 몇달 새 표심이 반전됐다고 전했다. 전체 응답자 중 공화당을 지지한다고 답한 비율은 46%, 민주당은 44%였다. 이는 지난 8월 조사(공화당 44%, 민주당 47%)와 상반된 결과다.
특히 교외 지역 백인 여성의 변심이 결정적이었다. 이유는 경제다. 이들은 지금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냐는 질문에 71%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지난 8월(62%)보다 더 부정적이다. 또 누가 경제문제를 해결한 적임자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공화당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50%, 민주당은 35%였다. 이도 석 달 전 조사(민주당 48%, 공화당 35%)의 반대다.
백인 여성 유권자의 달라진 표심은 석 달 전 뜨거운 이슈였던 낙태권에 대한 관심이 멀어지고, 선거를 앞두고 경제 문제가 부상했음을 시사한다고 WSJ는 전했다. 지난 6월 대법원이 낙태 권리를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은 후 민주당 성향의 미국 여성들은 크게 반발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를 의식해 중간선거에서 이긴다면 "첫 법안으로 로 대 웨이드를 성문화하겠다"고 하는 등 지지층 결집을 위한 의제로 삼았다. 그러나 먹고 사는 문제 앞에 식어버렸다.
여론조사에서 이들 계층 중 66%가 생활비 상승으로 인해 재정적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답했는데, 이는 8월(54%)보다 심화한 수치다.
공화당에 투표할 예정인 펜실베니아 퍼카시에서 사는 수잔 스미스(76·여)는 "식료품점에서 식료품 몇 개를 샀을 뿐인데 120달러(약 17만원)가 나온다"며 "아침마다 시리얼을 먹는데, 가격이 2배로 올랐다"고 말했다.
전통적으로 교외 백인 여성은 범죄 등 안보와 외교 정책에 대해선 공화당을 더 신뢰하는 반면, 낙태와 의료·교육 등에선 민주당을 지지하는 편이다.
민주당 여론조사기관에서 일하는 몰리 머피는 "이들 계층이 낙태보다 경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 건 사실"이라며 "그들은 미국이 경기 침체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대다수가 재정적인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WSJ는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 떨어졌다고 했다. 이들 계층에서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38%에 그쳤으며, "나라가 잘못 가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74%에 달했다. 또 2024년 대선에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출마한다면 바이든을 찍겠다는 응답자는 41%, 트럼프는 52%였다. 지난 8월 조사(바이든 55%, 트럼프 39%)와 상반된 결과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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