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를 이렇게 말하지 마라, 정 떨어진다
[유현재 기자]
▲ 시민이 3일 오전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
ⓒ 유성호 |
재난이 일상화된 국가가 돼버렸다. 8년 전 수학여행을 떠났던 고등학생 포함 300여 명은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했고, 지난 주엔 서울 한복판에서 축제를 즐기던 150여 명이 또 돌아오지 못했다. 감당하기 힘든 슬픔이 온 나라를 휩싸고 있으며, 경제규모 세계 10위라는 국가에 왜 자꾸 이런 난리가 반복되는지 국민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정부는 참사 대신 사고라는 용어를 쓰라고 하고, 희생자란 말 대신 사망자가 맞다 고 주장하지만, 상당수 국민과 국내외 언론은 이미 참사를 넘어 어이없는 희생자가 양산된 비극으로 이 살풍경을 정의한다.
재난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자주 언론의 정보원이 되는 주체는 단연 정치인이다. 물론 주무 기관의 관리들도 마찬가지다. 재난과 참사를 어떻게든 예방하고, 만약 발생할 경우 최대한 신속하게 수습하라고 대중이 권한을 부여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의 발언과 방향 설정, 지시와 업무 수행에 의해, 벌어진 재난의 피해는 의외로 최소화될 가능성도 있다.
재난에 즈음해 등장하는 정치인들의 적절한 말은 혼란과 슬픔에 빠진 대중에게 안정감을 부여하며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낼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재난 소통의 방식이나 내용이 적절하지 않을 때 해당 정치인과 관리들의 멘트는 역대급 망언이 되기도 하며, 그 자체로 또 다른 참사가 돼 대중에게 외면받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위기 커뮤니케이션 혹은 재난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정치인의 미숙한 소통은 안 그래도 힘든 대중에게 거슬림을 넘어 분노까지 만드는 악수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정치인과 관리들이 재난 상황에 처한 대중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몇 가지 제언을 해본다.
▲ 한덕수 국무총리가 31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 마련된 '이태원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에서 조문을 마치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 이희훈 |
첫째, 자신의 위치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소통의 준비이며 출발임을 깨닫기 바란다. 발생한 재난에 있어 자신이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당사자'인지 혹은 약간은 비켜나 있어도 되는 사람인지 판단하라는 말이다. 판단은 의외로 쉬운데, 재난이 발생하고 기자들의 연락이 빗발치면 당신은 '1급 당사자'다. 숨거나 소극적으로 발언할 경우 강력한 후폭풍을 각오해야 하는 사람이다.
이태원 참사 당시 일부 언론은 박희영 용산구청장의 소극적 처신에 대해 상당한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박 구청장은 "구청이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 "핼러윈은 축제가 아닌 현상이다"라는 등 이른바 '유체이탈 화법'까지 시전해 공분을 사기도 했다. 참사 3일 후 발언에 대한 사과를 했지만, 재난 발생 후 즉각 전면에 나서지 않은 모습에 대중의 분노는 이미 심각해진 뒤였다.
▲ 행정안전부 김성호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이 2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다중 밀집 인파사고 안전확보를 위한 범정부 특별팀(TF) 1차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
ⓒ 권우성 |
외신 기자들과의 회견에서 농담을 친 한덕수 총리도 똑같은 맥락이었다. 156명의 죽음이 발생한 참사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책임의 '당사자'로 느꼈다면 그런 농담은 택도 없는 일이다.
회피와 '유감 표명'은 최악
두 번째, 자신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법이나 규정을 들어 면피하려는 발언은 최악의 소통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재난은 명확한 법의 테두리 바깥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규정의 틀 안에서 발생하는 일을 우리는 재난이라 부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참사에서도, 주무 기관인 행정안전부의 율사 출신 장관과 대통령실은 현장에 파견된 경찰 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에 규정과 법으로 맞섰다.
주최자가 없는 자발적 행사에는 인원이 많이 모였다 해도 경찰이 개입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는 용산의 소통도 기가 막혔고, 권한의 한계를 넘어 투입됐다고 해도 막을 수 있는 사고가 아니었다는 장관도 대중의 마음과는 거리가 멀었다.
▲ 이태원 참사 사흘 만에...고개 숙인 이상민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이태원 압사 참사 발생 사흘 만인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공식 사과했다. |
ⓒ 남소연 |
세 번째, 큰일 터질 때마다 정치인이 뽑아드는 그 '유감'이라는 클리셰(진부한 표현)를 제발 자제하라는 제언이다. 내부자들끼리야, 유감 표현까지 했으니 정리가 될 것이라 최면을 걸 수도 있겠지만, 다수의 대중에게 '유감'이란 표현은 '잘못은 했지만 사과하기 싫으니 이 정도로 퉁 치자'는 억지로만 들릴 뿐이다.
그냥 담백하게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면 되는데, 그걸 하기 싫어 버티다 자신은 물론 조직에도 해를 끼치는 경우를 우리는 그동안 숱하게 봐온 터다. 이번에도 "민심을 헤아리지 못한 발언으로 심려를 끼쳐 유감"이라는 말은 이상민 장관을 비롯한 당사자들에 의해 여지 없이 애용됐다. 깔끔한 사과에 토를 다는 대중은 웬만해선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 꼭 기억하기 바란다.
네 번째, 재난 기간 중엔 아무리 정치인이라도 발언으로 정치할 생각은 말라는 제언이다. 재난을 이용해서 입지를 다지려는 뉘앙스가 보이면, 대중은 바로 인상을 찌푸리기 마련이다. 윤리적으로도 옳지 못하고, 전략적으로도 전혀 효과적이지 않다. 재난 직후 다짜고짜 정치적 메시지로 세게 몰아붙일 경우, 대중은 역으로 발언의 주체에게 어이없어 하는 것이 보통이다. 공동의 난리를 마주한 상황에서, 대중은 본질에서 벗어난 싸움을 먼저 거는 쪽에 마음을 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 반복해서 주목받고 있는 남영희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발언이 전형적인 사례다. 당 내에서 자제를 요청해도 멈추지 않고 격한 발언이 이어졌다. 관련 기사의 댓글을 읽어보면, "정부와 여당이 밉지만, 이래서 민주당을 응원하기도 어렵다!"는 등의 의견이 보인다. 그가 대중 소통의 원리를 깨우치시길 바란다.
재난을 '대참사'로 만들지 않으려면
마지막으로, 대중을 향한 어줍잖은 프레이밍을 자제하라는 제언이다. 프레이밍 작업에 대한 의도는 스마트한 대중에게 생각보다 아주 쉽게 들킬 수 있다. 특히 재난에 대한 면피 욕망으로 프레이밍을 시도할 경우, 대중은 재빨리 알아채고 분노하기 시작한다.
▲ 부산시청 1층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부산 합동분향소. '사고'와 '사망자'라는 표현이 쓰였다. |
ⓒ 김보성 |
해명을 요구하는 기자에게 행안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사안의 책임에 대한 주체가 명확하지 않아 중립적인 용어를 쓰는 게 맞다는 논리를 전했단다. 책임 소재에 대한 물타기 프레임을 하고 싶다는 욕구 외에, 도대체 어떤 해석이 가능할지 묻고 싶을 뿐이다. 정나미가 똑 떨어지는 소통이다.
재난은 온전히 단일 변수에 의해 벌어지는 사건이 아니며, 대중은 정치인이나 관료에게 무조건 100%의 책임을 지라며 생억지를 부리지도 않는다. 재난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사실, 일정한 지분의 책임을 깔끔히 인정하며 소통하면 그때부터 응원을 할 수도 있다.
감수성이 결여된 소통은 재난을 대참사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제발 울고 싶은데 뺨 때리는 난감한 소통은 그만하고, 스타일을 구기더라도 진심으로 보듬는 재난 소통을 보여주기 바란다.
상식적인 대중은 의외로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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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유현재 시민기자는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커뮤니케이션학 박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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