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둘러싼 무례를 목격하며... 아무도 괜찮지 않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서인희 기자]
▲ 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 부근인 이태원역 1번 출구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시민들이 가져다 놓은 국화꽃, 메모지, 술병, 촛불 등이 가득하게 쌓여 있다. |
ⓒ 권우성 |
156명이 사망하고, 151명 넘게 부상당한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고도 4일이 지났습니다.
'참담하다'는 말로는 감히 다 표현되지 않는 사고를 마주하고 한마디도 하기 어려웠던 시간이었습니다만, 슬픈 예감은 이번에도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이후 쏟아지던, 희생자에 대한 조롱과 비난의 언어들 말입니다.
타인의 비극을 대하는 개인의 태도
무례함은 때로 가장 날카로운 비수가 됩니다. 그런 행위는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에게 쉽고, 대면할 때보다 보이지 않을 때 쉬우며 익명성이 담보될 때 더 쉽게 튀어나옵니다. 망자와 부상자 그리고 그 가족들에 대한 무례. 돌이킬 수 없는 비극 앞에 위로보다 비난이 쉬운 이들은 그렇게 존재합니다.
참사 이후 온라인상에는, 희생자들이 그 시간 그 자리에 있었음을 탓하고, 특정 세대를 뭉뚱그려 비난하거나 농담의 소재로 삼는 등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댓글들이 난무했습니다.
"표현의 자유가 있다. 그저 내 생각이 그렇다고 말 한마디 했을 뿐이다"라고 누군가는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바꿔 말하면,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참사 희생자들 역시 그저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을 뿐입니다. 나의 기준 혹은 내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죄 없는 망자를 비난하고 조롱하는 일은 미성숙하고 무례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최소한 지인이 사고로 사망했다면, 그 앞에서 '그러게 왜 거기에 있었느냐'고, 왜 그 상황에 놓였냐고 함부로 말할 수 없을 것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 광주시민들이 꾸린 분향소 사고 사망자가 아닌 참사 희생자분들께 애도를 표한다. 이날 조문하는 순간, 5시 18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
ⓒ 서인희 |
국민의 비극을 대하는 국가의 태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트라우마 등은 현대 사회에서 익숙한 단어가 되었습니다. 트라우마는 일반적으로 정신적 외상을 뜻하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다양한 외상을 겪은 후에 나타나는 불안 장애를 의미합니다.
이 참사로 전국의 시민들이 절망과 분노, 충격과 무력감에 빠졌습니다. 지난 1일, 한덕수 총리는 "유가족과 부상자는 물론, 일반 시민도 심리 상담과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국가 트라우마센터와 서울시 정신건강복지센터를 통해 적극 지원하겠다"라고 밝혔습니다. 이는 모든 시민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지원이라고 봅니다.
국가가 무료로 건강검진을 하고 취약한 연령에는 무료로 예방접종을 지원하는 것처럼, 시민의 마음(정신) 건강에 대한 지원은 당위적인 과업입니다.
중요한 것은, 트라우마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충분한 이해입니다. 이 상처들은 즉시 나타날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 드러나기도 합니다. 심리적인 것이라, 신체적 상처처럼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상처가 낫고 아무는 과정 또한 쉽게 알기 어렵습니다. 기한이나 지역, 대상을 정해두고 보여주기 식으로 진행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지속적이고 실질적인 지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한국 국민은 지난 10년 사이 대형 참사를 두 번이나 목도했습니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수많은 사고와 억울한 죽음도 계속됩니다. 누구도 괜찮다고 단언할 수 없습니다.
희생자와 가족에 대한 적극적이고 따뜻한 지원이 가장 먼저입니다. 그에 더해 상처 입은 국민의 마음을 섬세하게 돌보는 것 또한 국가의 역할입니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겠지만, 이런 참사가 또 발생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원인 규명과 대책 마련을 철저히 해야만 합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 국가의 역할을 묻는다
'주최가 있는 행사가 아닌 자발적 모임이었기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예측할 수 없었다'와 같은, 일부 관료들의 면피를 위한 일차원적 발언은 국가의 존재 이유와 행정의 역할을 의심하게 합니다.
참사 이후, <오마이뉴스> 한 기사에서 다룬 일본 시부야의 사례만 보더라도 반복적이고 특징적인 시민의 자유로운 축제에 행정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도쿄 시부야는 핼러윈 기간 동안 100만여 명이 몰린다고 합니다. 매년 축적되는 데이터가 있다 보니, 행정은 기업과 협업하기도 하고 관련한 입법 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관련 기사: '이태원 압사 참사' 일본 반응... 정말 착잡합니다 http://omn.kr/21er4 ).
2018년에 있었던 시부야 '트럭 전복 사건' 이후에는 핼러윈을 포함한 특정 기간에 노상 음주를 금하는 내용의 조례가 제정되었습니다. 또한 실제로 통신사와의 협업을 통해 대중들의 밀집도를 분석하고, 미리 경찰 인력을 곳곳에 배치하여 1평방미터(㎡)내에 4명 이상이 있다고 판단이 되면, 이들을 분산시키거나 통제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막을 수 없었던 일도 아니었거니와, 자발적으로 모인 상황이니 책임이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오히려 참사 이후 밝혀지고 있는 정부의 태도가 그저 참사를 축소하고 면피하려는 모습뿐이라는 점은, 탄식을 넘어 분노에 가닿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지금부터라도 마음은 따뜻하되 머리는 냉철하게 이 깊은 슬픔을 대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이태원 참사로 돌아가신 수많은 생명에 깊은 애도를 표하며 명복을 빕니다. 부상당하신 분들이 꼼꼼하고 완전하게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가족들의 마음에 진심의 위로를 전합니다.
[관련 기사]
공권력이 외면한 참극... 사고 전, 11번 도움 요청했다 http://omn.kr/21fuw
30일 이상민 "특별히 우려할 정도 인파 아니었다" http://omn.kr/21e2f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중고생 1511명 '윤석열 퇴진' 시국선언... "정치탄압과 보복, 규탄"
- "이태원 173-7 그 좁은 골목... 그곳엔 꽃들도 포개지 마라"
- 마침내 이태원 '참사' 희생자로...안양시 현수막 또 바꿨다
- 합참 "북한 장거리미사일 760km 비행, 고도 1920km, 속도 마하15"
- '자국민 생명권 수호' 강조한 윤 대통령, 지켜보겠다
- "'날리면' 듣기평가하더니, 이젠 욱일기로 틀린그림찾기 하냐"
- 경찰국 강행 때 만든 '경찰청장 지휘', 이상민 발목잡나
- "대전시의 철 지난 도서검열, 어디까지 후퇴할 건가"
- [오마이포토2022] 사망자 아닌 '희생자' 국힘 현수막... 여전히 '사고'
- "112→행안부 통보체계 없어"... 소방 "대통령실·행안부 동시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