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이겨냅시다]"이태원 사람들 표정 생생, 안 잊혀"…'이 말' 듣고 위안 얻었다
[아시아경제 변선진 기자, 김영원 기자] 2일 찾은 서울광장의 이태원 핼러윈 참사 ‘심리지원 상담부스’에는 안대, 귀마개, 발 지압기구, 파스, 색칠도구 등으로 구성된 키트가 놓여있었다. 사건의 충격으로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을 겪는 시민들에게 1~2주간 트리거(방아쇠)가 될 수 있는 외부자극은 줄이고 안정을 되찾으라는 취지로 상담 후 나눠주기 위해서다. 가령 갑자기 불안하면 지압기로 신체부위를 눌러 혈액순환을 순조롭게 한다거나 눈과 귀를 가려 외부자극을 피하고 크게 숨을 내뱉는 식으로 가다듬는 것이다.
이날 상담부스에서 심리 상담 후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정신과 전문의와 연계됐다. 심리지원을 받은 시민들은 “당분간은 악성댓글을 보지 않게 인터넷을 줄이는 게 좋다” “호흡을 가다듬어라”는 조언이 도움됐다고 했다. “누군가에게 슬픈 일에 대해 터놓고 말할 수 있다는 자체로도 위안이 됐다”는 반응도 있었다.
지난달 29일 밤 일어난 서울 이태원 참사 이후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상담을 받고 있는 이들이 늘고 있다. 어쩌면 누군가는 평생에 한 번도 겪지 못했을 충격적인 경험으로 정서에 큰 타격이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정신심리 치료 전문가들은 “작은 것에 깜짝깜짝 놀라거나, 꿈에 나타난다거나, 여전히 현장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한 번쯤 심리상담을 받아보는 게 좋다”고 말한다.
서울시 정신건강복지센터는 지난달 31일부터 서울광장·녹사평역 광장 2곳에 상담부스를 마련했고, 보건복지부는 국가트라우마센터를 통해 1일부터 같은 장소에 ‘마음 안심버스’를 들여놨다. 이태원 참사로 불안·불면을 겪는 유가족·부상자·목격자·이 외 국민들에게 정서적인 안정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2일부터는 마음 안심버스가 대전분향소, 양산웅산병원장례식장, 전북도청·광주시청 분향소, 강원도청 분향소 등 4곳에 추가 배치됐다. 서울광장 상담부스엔 첫날인 지난달 31일 19명이 찾았고, 마음 안심버스는 1일 첫날 18건의 심리 상담이 이뤄졌다. 주로 그날 밤 현장에 있었던 목격자가 방문하고 있다.
지난 1일 서울 녹사평역 광장의 심리지원 상담부스를 찾은 A씨(20대)는 20여 분간 상담요원 2명에게 ‘그날의 악몽’에 대해 토로하고 나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수시로 가슴이 덜컥 가라앉는 듯한 불안감에 시달려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A씨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의 모습이었는데, 일상에서 그런 참사를 겪은 게 믿기지 않고 바깥이 너무 두려워지기만 한다”면서도 “용기를 잃지 말라는 따뜻한 조언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고 했다.
이날 같은 장소의 마음 안심버스에 방문한 B씨(20대)는 “가방·옷 같은 소지품만 잃어버리는 정도의 피해만 입고 살아남았다”면서도 “시퍼렇게 질려 인파에 떠다니는 듯한 사람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B씨는 이날 정신건강 평가와 스트레스 측정에 나선 뒤 두 가지 척도를 바탕으로 정신건강 전문요원의 상담을 받았다. “스트레스와 불안은 당연한 것” “당신은 중요한 사람”이라는 위안을 얻었다고 했다.
개인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는 트라우마엔 빠른 심리지원이 필요한 탓에 심리지원 상담부스·마음 안심버스는 각각 4일·5일까지만 운영된다. 보건복지부 측은 “대면 상담의 종료 예정일은 그렇게 예정돼 있지만, 필요한 경우 지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게 다양한 경로를 검토해보겠다”고 했다. 유가족·부상자에 대해서는 정부가 공무원을 1명씩 배치해 맞춤형 심리지원에 나선다. 2일까지 총 830회의 대면·전화상담이 이뤄졌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참사의 사진·영상·악성댓글 등을 의도치 않게 보게 되면서 정신건강을 우려하는 이들도 많다. 이럴 경우 위기상담전화 핫라인(1577-0199)을 통해서도 심리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국가트라우마센터 관계자는 “참사 이후 전국의 지자체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트라우마 상담 연결 전화가 급증하고 있다”고 했다. 정정엽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는 “트라우마에 장기간 시달리지 않기 위해서는 나를 지지해준다는 심리적 안전지대가 있다고 당사자가 느껴야 한다”며 “평소와 다른 것 같다면 심리상담을 받아보는 것도 좋다”고 조언했다.
변선진 기자 sj@asiae.co.kr
김영원 기자 forev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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