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 10년 맞은 스파크랩 대표들의 호소 "바보야, 문제는 규제"
정부 소프트웨어 정책·규제 완화 강조
"실패 비용 줄어" "국가 위상 달라져"
AI·빅데이터 활용 플랫폼 고도화 계획
"정부가 소프트웨어 산업을 정책적으로 도와주고 규제를 좀 더 풀어야 합니다."(김호민 스파크랩 공동대표)
"규제 샌드박스만으론 부족합니다. 지금은 과감하게 규제를 풀어야 할 때입니다."(이한주 스파크랩 공동대표)
초기 스타트업 투자·육성을 전문으로 하는 액셀러레이터(AC) 스파크랩이 설립 10주년을 맞았다. 스타트업 글로벌 진출 지원에 특화된 스파크랩은 그동안 270여개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이들 기업의 후속 투자 유치 금액은 1조3000억원, 기업가치는 6조7000억원에 달한다.
스파크랩은 대만, 호주, 파키스탄에 공식 진출한 상태이며 주요 포트폴리오 사로는 발란, 원티드랩, 엔씽, 스파크플러스 등이 있다.
이날 코로나 사태 이후 처음으로 스파크랩 공동대표 4명이 모두 모여 기자간담회를 열고 사업 방향과 최근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들은 취재진과의 질의응답에서 정부의 신산업 규제 완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한주 공동대표는 "정권마다 규제를 줄이기는커녕 훨씬 더 늘어나고 있다"며 "민간 주도의 역동성을 활용하려면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규제샌드박스만으론 부족하다. 실증 기간 2년이 끝나면 그 후는 어떡하나"라며 "지금은 과감하게 규제를 풀어야 할 때"라고 밝혔다.
김호민 공동대표는 소프트웨어 산업에 대한 규제 완화를 호소했다. 그는 "제조업, 스마트팩토리와 같은 하드웨어 쪽은 정부 차원에서 장려하고 있지만 소프트웨어는 아직 초기 단계"라고 진단했다.
이어 "전 세계적으로 기업가치가 높은 회사들은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파는 회사"라며 "우리나라에서 B2B(기업 간 거래) 클라우드 분야에 조 단위 기업가치의 회사가 없다. 소프트웨어 산업을 정책적으로 도와주고 규제를 좀 더 풀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대표도 "소프트웨어는 제조업처럼 공급망이 무너질 일이 없다. 두뇌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거들었다. 10년, 20년 후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소프트웨어 산업을 정책적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게 이 대표의 주장이다.
다만 10년간의 세월을 돌아보며, 창업 실패에 대한 비용이 크게 줄어드는 방향으로 정부 정책과 사회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평했다. 이 대표는 "대표이사가 보증을 서면 형사처벌을 받는 등 실패에 대한 비용이 컸는데, 지금은 창업자들의 마인드셋이 많이 바뀌었고 스타트업 생태계의 다양성도 확보됐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정부 부처들이 스타트업에 대해 잘 모르고 생태계를 어떻게 도와줄지 몰랐지만, 지금은 정책이 세련돼지고 있다"며 "다른 나라에서 우리나라를 정책을 많이들 부러워 한다. 특히 팁스(TIPS)는 훌륭한 프로그램"이고 밝혔다. 이어 "투자업계는 느리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꾸준히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버나드 문 공동대표는 "기술과 문화가 조합을 이루는 나라가 되면서 국가의 위상이 달라졌다"고 평가했다. 김유진 공동대표도 "초기 단계 스타트업에 초점을 맞춰서 실패 비용을 줄여주면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비상장사)도 훨씬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스타트업 투자 시장이 얼어붙은 상황에서 4명의 공동대표는 투자를 결정할 때 어떤 점을 주의 깊게 볼까. 버나드 문 대표는 '마케팅', 이한주 대표는 '숫자', 김호민 대표는 창업가의 성향과 경험, 김유진 대표는 '차별성'이었다.
이 대표는 "기업의 가치는 현금 창출력에서 나온다"며 "'내가 투자를 받으면 언제까지 이만큼의 돈을 벌어오겠다'고 설명하지 못하면 요즘 같은 분위기에선 절대 투자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전 세계는 미·중 간 패권 싸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면서 "피로감이 쌓인 많은 나라들에 우리나라는 제3의 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호민 대표는 "투자란 투자가 필요한 사람에게 돈을 주는 게 아니라, 돈이 필요 없는 사람이 돈을 받게끔 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가장 좋은 회사를 먼저 찾아가서 어필하고 있다"고 했다.
아울러 스파크랩은 이날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플랫폼 고도화 계획을 발표했다.
김호민 대표는 "고객인 초기 창업자에 더욱 집중해 서비스를 고도화하고 빅데이터·AI 기반 액셀러레이터 플랫폼 구축을 통해 프로그램 운영과 포트폴리오 관리를 체계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파크랩은 액셀러레이터 앱, 스파크랩 큐(Q), 스파크랩 아이(I)라는 세 가지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이날 오후 열리는 스파크랩 19기 데모데이에선 연사 중 한명으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참석한다. 최 회장은 '미래 기업 가치 창출의 핵심 : 고객과의 관계, 스토리 그리고 신뢰'라는 주제로 인사이트를 나누고 창업가들과 소통할 예정이다.
앞서 최 회장은 2019년 6월 스파크랩 13기 데모데이에도 참석해 스타트업이 주도하는 디지털 전환을 주제로 이야기하고 후배 기업가들을 위한 조언을 나눈 바 있다.
이 대표는 "최 회장과의 친분은 시카고 대학 동문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됐다"고 말했다. 그는 "1998년 최 회장이 취임한 이후 SK그룹은 바이오, 반도체 등 미래 산업으로 재구성됐다"며 "두 번째 창업을 한 것과 다름없는 입장에서 사업가로서 갖고 있는 생각을 공유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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