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모를 외국인 남성들, 참사 현장서 시민들 ‘무 뽑듯’ 구조하고 사라져

“건장한 체격 외국인들이 30명가량 구조” 증언 나와
시신 아래 깔린 사람 구하는 등 참사 속 시민 구한 의인들

지난 1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핼러윈데이 사고 추모공간을 찾은 외국인이 희생자로 보이는 여성의 사진을 국화꽃 사이에 내려놓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당일 해밀톤호텔 옆 좁은 골목에서, 압사 위기에 놓인 시민들을 구조하고 사라진 외국인들이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3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충청북도 청주시에 사는 20대 A씨는 지난달 29일 오후 6시쯤 친구들 5명과 핼러윈 축제를 즐기기 위해 이태원을 찾았다. 그러다 참사가 발생한 골목에 진입했고, 수많은 인파에 밀려 남성들에게 깔렸다.

A씨는 빠져나가려고 몸부림을 쳤으나, 사람들의 하중이 가해지며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있을 때 A씨 앞에 건장한 체격의 흑인 남성이 나타나, 키 182cm 몸무게 96kg인 그의 팔과 겨드랑이를 잡더니 구조에 성공했다.

A씨 등에 따르면 구조 과정은 마치 밭에서 무를 뽑듯이 단번에 인파 속에서 구조했다. A씨를 골목 옆 일본 술집으로 데려다 놓은 흑인은, 다른 동료 외국인 2명과 함께 계속 압사 위기의 사람들을 구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외국인 3명은 술집이나 클럽 직원이 아닌 듯했는데 무려 30명가량을 구조했으며, 119 구급대원들이 출동한 후 조용히 사라졌다. 생명의 은인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A씨는 전치 3주의 진단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의인들도 있다. 'BJ 배지터'는 참사 발생 당시, 인파에 밀려 앞으로 떠밀렸다. 그의 주변에서는 "뒤로! 뒤로!", "밀지마" 등 비명이 난무했지만, 인파는 더욱 늘어갈 뿐이었다. 골목 난간까지 밀린 그는 자신의 안전을 챙기기 보다, 난간 아래쪽에 있는 사람들을 먼저 구조하기 시작했다.

배지터는 안간힘을 쓰며 난간 위로 사람들을 끌어올리기 시작했으며, 난간에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자 한 남성은 "올리지 마요. 이제 못 올라와"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배지터는 난간 위 사람들을 바라보며 "한 명만, 한 명만"이라고 말하며 구조 활동을 이어갔다.

당시 그의 구조 활동이 담긴 영상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온라인 커뮤니티에 퍼졌으며, 누리꾼들은 "진정한 의인이다" "정말 고맙다" 등 감사를 표시했다. 이후 배지터는 자신의 방송 채널에서 "이태원 참사 때 다치신 분들의 빠른 쾌유를 빌며 안타깝게 고인이 되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라며 애도를 표했다.

그런가 하면 인근 업소의 한 직원은 연합뉴스 등 언론 매체와 인터뷰에서 "시신을 50구는 나른 것 같다"며 "시신들 아래 깔린 한 분이 '살려 달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을 발견해 바닥에서 겨우 꺼내드리기도 했다. 한 명이라도 살릴 수 있어 정말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또 한 국립병원 의사는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 "이태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가 사고 소식을 듣고 심폐소생술(CPR)은 할 줄 아니까 도움이 될까 싶어서 이태원으로 갔다"며 CPR 등 구조 활동에 나섰던 상황을 전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이태원 참사로 사망한 156명 중 128명에 대한 발인과 본국 송환이 완료됐다고 3일 밝혔다. 128명 가운데 내국인은 121명(발인 완료), 외국인은 7명(본국 송환)이며, 빈소에 안치된 인원은 9명, 송환 대기자는 19명이다. 부상자 173명 중 입원자는 38명, 귀가자는 135명이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