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빅스텝 딜레마 셋…자금경색·부채·성장

서소정 2022. 11. 3.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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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격차·고물가·환율 등
빅스텝 당위성에도 고심
레고랜드 사태로 돈맥경화
가계·기업 대출도 급증해
기업 부채발 금융위기 우려
경기침체에 무역적자 지속
급격한 금리인상, 성장에 부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3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 참석하고 있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아시아경제 서소정 기자, 문제원 기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긴축 장기화 움직임에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에도 변경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미국의 4연속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으로 금리인상 기조를 이어가는 것은 확실하지만 당장 이달 말 열리는 올해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의 금리인상폭이 최대 고민거리다. 석 달 만에 반등한 물가와 상승흐름을 이어가는 원·달러 환율을 고려하면 오는 24일 열리는 금통위에서 빅스텝(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을 밟아야 할 당위성이 크지만,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단기자금 시장 경색과 국내 금융 불안을 고려하면 베이비스텝(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이 적절하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금리향방에 '묵묵부답' 이창용=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3일 오전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고 Fed가 고강도 긴축 기조를 재확인한 것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지난달 23일 이후 약 열흘 만에 다시 만난 것이지만 이날 파월 의장의 매파적 발언에 오전 코스피가 급락하고 환율이 급등하는 등 불안심리가 커진 만큼 회의는 예정보다 긴 1시간30분 정도 긴장된 분위기 속 진행됐다.

회의 직후 기재부가 보도자료를 통해 "미 Fed의 금리 인상이 향후 우리와 글로벌 금융시장에 미칠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그 어느때 보다도 높은 경계감을 유지하며 대응해 나가기로 했다"고 설명했을 뿐 이날 회의 후 추 부총리는 어떤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이 총재 역시 ‘한은의 최종금리 수준이 3.5% 이상 오를 수 있느냐’는 등의 기자들의 질문에 "죄송합니다"라고 할 뿐이었다. 평소 기자들의 질의에 성심껏 대답하던 이 총재의 ‘묵묵부답’은 그만큼 이달 금통위 결정의 어려움을 대변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통화정책 3대 딜레마= 빅스텝의 당위성에도 한은이 이를 고민하고 있는 첫번째 이유는 급속도로 냉각된 채권 시장 때문이다. 레고랜드 사태로 인한 투자심리 위축으로 자금 흐름이 경색되는 ‘돈맥경화’가 나타나면서 정부가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50조원+α 규모’로 확대하고 한은이 적격담보증권 확대,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에 나서는 등 해법을 내놓았지만 상황은 쉽사리 해소되지 않고 있다. 국내 채권시장에선 한은이 지난해 8월 이후 1년 이상 기준금리를 계속 인상하면서 돈줄이 말랐다는 아우성이 쏟아지고 있는데 한은의 입장에서는 추가 빅스텝이 부담스러울 수 있는 상황이다.

두번째는 빠르게 쌓이고 있는 가계·기업 부채다. 국제금융협회(IIF)의 세계 부채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 세계 35개 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한국이 102.2%로 가장 높았다. 조사 대상국 가운데 유일하게 가계 부채가 경제규모(GDP)를 웃돌았다. 기업 부채도 빠르게 늘고 있다. GDP 대비 한국 비금융 기업의 부채비율은 2분기 현재 117.9%로 홍콩(279.8%), 싱가포르(161.9%), 중국(157.1%)에 이어 네 번째로 높은데 1분기 7위에서 불과 3개월 만에 순위가 세 단계나 뛰었다. 채권시장 자금경색으로 기업의 은행 대출이 더 늘어나면 기업 부채발 금융위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번째는 내년 세계가 경기침체에 진입하면서 우리나라 성장속도도 둔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10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무역수지는 67억달러 적자로 집계됐다. 무역수지는 지난 4월부터 7개월 연속 적자를 이어갔는데 무역적자가 7개월째 지속된 건 1997년 5월 이후 약 25년 만이다. 10월 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한 금통위원은 "내년 세계경제가 침체 국면에 진입하면서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나라도 그 영향을 크게 받을 것"이라면서 "통화정책의 파급시차를 고려할 때 최근의 통화정책이 실물경제에 파급될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 중후반 국내경제 성장세가 크게 둔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물가와 환율, 1.00%포인트까지 벌어진 한미간 금리차이를 고려하면 11월 빅스텝을 밟아야 할 상황이지만 자금경색에 빠진 국내 금융과 세계 경기침체에 따른 성장 둔화를 감안할 때는 베이비스텝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라며 "지난달 금통위서 이창용 총재는 최종 금리를 3.5% 수준이라고 밝힌 바 있지만, 미 Fed의 최종 금리가 5% 수준으로 상향되는 상황에서 과거 발언을 회수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서소정 기자 ssj@asiae.co.kr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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