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건건]이태원 참사 역시 인재였다

고형광 2022. 11. 3.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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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인재(人災)였다.

156명의 사망자를 포함 총 300명이 넘는 사상자를 낸 이태원 참사는 정부의 부실 대응에서 비롯됐다는 정황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전화가 걸려온 장소는 정확히 참사가 발생한 이태원역 인근 해밀톤호텔 옆 그 골목이었다.

경찰이 초기의 위험 신호에 대처만 잘했어도 이태원 참사는 막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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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로 인한 국가애도기간이 이어지고 있는 3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일대에 마련된 추모공간에 시민들이 작성한 추모 메시지로 가득 메워져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참사 전 112신고 폭주 사실상 묵살

안전사고 우려 나왔는데 손놓은 당국

책임소재·재발방지 이번엔 제대로

역시 인재(人災)였다. 156명의 사망자를 포함 총 300명이 넘는 사상자를 낸 이태원 참사는 정부의 부실 대응에서 비롯됐다는 정황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대규모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견된 상황에서 안전 대책을 수립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사고 당일 현장 곳곳에서 경고음이 울렸음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다. 특히 참사가 일어나기 직전 시민들의 112신고가 잇따랐음에도 경찰이 사실상 이를 묵살한 행위가 모두를 경악케 한다.

경찰청이 공개한 112신고 녹취록을 보면 첫 신고는 사고 발생 약 4시간 전인 지난달 29일 오후 6시34분 접수됐다. 당시 신고자는 "사람들이 엉켜서 잘못하다 압사당할 것 같다. 경찰이 진입로에서 인원통제 등 조치를 해주셔야 할 것 같다"고 다급하게 전했다. 전화가 걸려온 장소는 정확히 참사가 발생한 이태원역 인근 해밀톤호텔 옆 그 골목이었다. 그러나 경찰은 ‘일반적 불편 신고’로 판단해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오후 8시 전후로는 사고를 우려하는 신고가 빗발쳤다. "사람들이 길바닥에 쓰러졌다"(8시 33분), "대형 사고 나기 일보 직전이다"(9시), "일방통행할 수 있게 통제해달라"(9시 7분) 등 구체적인 해결책도 제시했다. 11명의 각기 다른 신고자로부터 ‘압사’와 ‘통제’라는 단어가 각각 9번 되풀이될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었다. 사고 4분 전 접수된 마지막 신고엔 수화기 너머로 비명소리도 들렸다. 그런데도 경찰은 끝내 응답하지 않았다. 밤 10시 17분 마침내 소방이 출동했을 땐 이미 많은 시민들이 심정지 상태로 거리 여기저기에 누워 있었다.

앞서 참사 사흘 전인 지난달 26일 경찰과 용산구청, 상인단체 등이 모인 회의에서도 사회적 거리두기 없는 3년 만의 핼러윈 축제라 안전사고가 우려된다는 의견이 나왔다. 축제가 열리기 며칠 전 용산경찰서에서 안전사고를 우려하는 보고서를 상부에 올리기도 했다. 이처럼 누구라도 예견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신고된 축제가 아니라는 지극히 형식적인 이유로 관계당국이 일제히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이다. 재난안전의 주무부처 수장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사고 발생 초기 "소방과 경찰 인력을 미리 배치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경찰과 소방 인력 부족이 사고의 원인이었는지 의문이 든다" 등의 책임 회피식 발언까지 해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하지만 이번에 공개된 112 신고 녹취록은 정부의 대응과 주무 장관의 발언이 얼마나 안일하고 뻔뻔했는지 증언한다.

이번 참사의 책임은 국가에 있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경찰이 초기의 위험 신호에 대처만 잘했어도 이태원 참사는 막을 수 있었다.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또래들의 죽음을 목격했던 20~30대 청년들이 8년 뒤 서울 한복판에서 압사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과거의 참사에서 제대로된 반성을 하지 못하니 또 다른 참사를 낳은 것이다. 이번 만큼은 책임 소재를 명확히 짚어내고 실효성 있는 재발방지책을 수립해야 한다.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희생을 치러야 우리 사회가 정신을 차릴 것인가.

고형광 기자 kohk010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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