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채권 자금경색' 쪼그라든 발행…대기업도 자금조달 '비상'·주관실적 '역성장'
[아시아경제 이선애 기자] 대폭적인 금리 인상과 레고랜드 사태 후폭풍으로 채권 시장의 자금경색이 악화일로다. 회사채 순발행액이 급감하면서 전체 채권 시장의 순발행액이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기업들의 자금조달 차질이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채권 발행이 감소하면서 증권사의 채권주관 실적 역시 올해 역성장할 가능성이 커졌다.
3일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지난달 채권 시장 순발행액이 -1082억원을 기록했다. 상환액(55조2764억원)이 발행액(55조1682억원)보다 더 많았다는 의미다. 이는 지난 6월에 이어 두번째 마이너스다. 월별 채권순발행 추이를 살펴보면 ▲1월 27조4834억원 ▲2월 21조4289억원 ▲3월 18조9410억원 ▲4월 17조6215억원 ▲5월 23조8140억원 ▲6월 -12조4005억원 ▲7월 17조7769억원 ▲8월 15조6195억원 ▲9월 5조8719억원이다. 지난달은 6월의 경우와는 상황이 다르다. 당시 정부가 부채 관리 차원에서 국채 발행을 줄인 영향이 컸다. 그러나 지난달의 경우 기업들의 회사채 순발행액이 급감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10월 한 달간 회사채 순발행액은 -4조8379억원으로 집계됐다. 발행액(3조6921억원)보다 상환액(8조5300억원)이 배 이상이나 됐다. 직전달까지만 해도 순발행액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상환액이 더 많지는 않았다. 지난 2개월 연속 순발행액은 6000억원 수준을 유지했다. 올해 회사채 순발행액이 마이너스 전환한 건 지난 5월(-6111억원), 7월(-2481억원) 두차례였는데, 순상환이 5조원 가까이 되는 건 이례적이다. 2006년 이후 가장 큰 순상환액이다.
자금조달 차질을 겪는 기업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금리인상과 레고랜드발 부동산프로젝트파이낸싱(PF) 여파에 의해 채권 시장에 위기감이 확산되며 채권 발행이 잘되지 않았다. 설령 발행했다고 해도 목표했던 수요예측 모집 금액을 채우지 못하고 미매각이 잇달아 나왔다. 더불어 발행 및 모집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금리가 너무 높아 기업의 조달비용이 크게 증가, 어려움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것으로 관측된다. 실제 대기업 계열사들마저 연 7%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는 등 힘겨운 자금 확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삼성중공업이 지난달 28일 사모사채 300억원치를 연 7.05% 금리로 발행했다. 코리아세븐도 지난달 31일 사모사채 200억원어치를 연 7.08%에 발행했다. SK렌터카는 지난달 20일 공모 회사채로 1000억원을 조달했는데, 조달금리는 연 6.11~6.29%로 결정됐다. 지난달 21일과 28일에는 각각 사모사채 100억원어치를 연 6.95%, 7%로 발행했다.
회사채 금리 상승으로 기업들이 자금조달을 위해 은행으로 달려가면서 은행채 발행은 9월에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올해 들어 지난달 말까지 은행채 발행액이 175조3990억원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150조1723억원보다 17% 증가했다. 벌써 지난해 연간 발행액(183조2123억원)의 96%까지 차지했다. 9월 은행채 순발행액도 7조4600억원을 기록해 올 들어 최고치를 기록했다. 다만 10월에는 순발행액이 2600억원으로 감소했다. 당국이 은행채 발행을 최소화하기 위해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규제 비율 상향조정 조치를 6개월 미루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은행채 발행량이 늘면, 수급 불균형으로 채권금리를 끌어올려 대출금리가 오르는 등 시장 불안이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잡기 위해서다.
다만 당분간 은행채 발행 최소화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회사채의 소외 현상은 이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금융당국이 유동성을 지원하고 있지만 금리와 투자심리 냉각 등으로 회사채 시장이 기지개를 켜기까지는 시간이 상당 부분 소요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민지희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이달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빅스텝(한번에 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이 단행되는 경우 자금 경색 우려가 다시 불거질 수 있으며 당국의 지원 조치로 안정을 찾았던 채권 시장 변동성은 재차 높아질 위험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채권발행 시장에 대한 우려가 높은 상황 속에 증권사들의 채권주관 실적도 역성장할 가능성이 대두됐다. 올 들어 증권사 채권주관 실적은 10월까지 총 128조8518억원을 기록했다. 채권 시장의 위축으로 인해 상위 주관사마저도 지난해 연간실적보다 절반 수준이거나 이하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선애 기자 lsa@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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