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가면 이 장군을 만나야 합니다

김성호 2022. 11. 3.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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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대표 관광지 신숭겸 장군 유적지

[김성호 기자]

신숭겸: 용서하시오소서, 형님폐하. 형님폐하를 위해 목숨을 다할 수 있게 되어 이런 기쁨과 영광이 없사옵니다. 바라옵건대 부디 부디 대업을 이루시옵소서, 형님폐하.
 
(중략)
 
김락: 장군, 폐하께서 충분히 이곳을 빠져나가셨을 것이오.
신숭겸: 그러셨을 것이오. 이제 앞에는 길이 없소이다.
김락: 그렇소이다. 이제 갈 때가 된 것 같구려.
 
 
두 장수가 손을 맞잡은 뒤 함께 적진으로 돌진한다.
 
▲ 신숭겸 장군 유적지 입구
ⓒ 김성호
 
대구 공산이 팔공산이 된 연유

한국 사극 사상 최고의 작품을 꼽을 때 빠지지 않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KBS가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총 200부작 대하사극으로 방영한 <태조 왕건>입니다. 수많은 명장면을 낳은 이 작품에서도 오랫동안 회자되는 회차 몇이 있는데, 그중 빼놓을 수 없는 게 제160화 공산전투 편입니다.

드라마는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떠올리게 하는 캐릭터 설정으로, 왕건(최수종 분)과 신숭겸(김형일 분), 박술희(김학철 분)를 유비, 관우, 장비 세 형제와 같이 놓아 눈길을 끌었습니다. <삼국지연의>에서 관우의 죽음이 주요한 장면이듯이, <태조 왕건>에서도 신숭겸의 죽음은 좌중을 압도하는 감상을 남깁니다. 신숭겸의 죽음, 그 장면이 등장하는 게 바로 160화 공산전투 편입니다.

공산전투는 통일신라 말기 한반도 다음 천 년의 명운을 걸고 부닥친 두 세력 간 싸움이었습니다. 왕건의 고려와 견훤의 후백제로, 통일신라를 멸망시키고 올라오던 후백제군이 이를 막으려 내려오던 고려군과 맞닥뜨렸습니다. 전장은 대구였고, 그중에서도 오늘의 팔공산인 공산이 주요 무대였습니다. 팔공산의 이름부터가 고려의 여덟 무장이 숨진 공산이란 뜻이니, 이 한 번의 싸움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짐작할 만합니다.
 
▲ 신숭겸 장군 유적지 충렬비
ⓒ 김성호
 
왕의 옷을 입고 적진으로 뛰어든 장군

북방에서 내려온 왕건의 기마부대는 먼저 도착해있던 지방군 및 신라의 잔여병력과 합류해 후백제군을 압박해갑니다. 먼저 동화사의 승병들과 서전을 치른 뒤 진군하던 중 후백제의 정예병에게 기습을 받죠. 이후 밀고 밀리는 싸움을 벌이다가는 평지에서 적 매복에 당해 포위되기에 이릅니다.

1만을 훌쩍 넘는 대군이 와해되고 포위를 뚫을 가망도 사라진 상황에서 신숭겸과 김락이 나서 왕건을 설득합니다. 스스로 왕인 양 행동해 한고조 유방을 구한 기신의 고사대로, 왕의 복식을 하고 적의 관심을 끌겠다는 것이었죠.

평민의 복장을 한 왕건이 도주하는 동안 신숭겸과 김락 등은 얼마 남지 않은 기마를 추려 남측의 적진을 향해 돌진합니다. 돌진한 장수들은 끝내 전원 사망하지만 왕건은 몇 달에 걸친 도주 끝에 북방의 안전한 땅으로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훗날 후백제를 멸하고 후삼국을 통일한 왕건은 제 묫자리로 봐둔 춘천 땅을 신숭겸에게 내어주고, 그가 숨진 대구 땅엔 절을 세워 그 명복을 빌게 했습니다. 그 자리가 오늘까지 이어져 신숭겸 장군을 기념하는 유적지가 된 것입니다.
 
▲ 신숭겸 장군 유적지 순절단
ⓒ 김성호
 
대구 대표 관광지로 부족하지 않다

신숭겸 이래 평산 신씨는 재능 있는 인물을 여럿 배출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임진왜란 직전까지는 그래도 조선에서 제일가는 무재로 꼽혔던 신립, 임진왜란 당시 육전 최초 승전보를 올린 신각, 당대의 문사로 이름 높은 신흠 등이 모두 그 후손입니다. 특히 신흠은 지묘사 자리에 순절단을 쌓아서 장군의 정신을 기렸지요.

신숭겸 장군 유적지는 대구 외엔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나 점차 명성을 얻어가는 추세입니다. 그건 이곳에 심어둔 나이든 배롱나무가 화사한 꽃을 피우고 그 덕분에 사진을 찍기 좋은 명소로 알려진 덕입니다. 하지만 이 장소를 가만히 살펴보면 한반도 유적 가운데서는 찾기 어려울 만큼 잘 관리된 곳으로 매력도 충분합니다. 고려에서 제일가는 공신이자 대의를 위해 제 목숨을 바친 충절의 상징으로 그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요소가 그대로 보존돼 있는 덕입니다.

특히 대구 북쪽 팔공산을 찾는 관광객이라면 팔공산 케이블카나 동화사와 함께 신숭겸 장군 유적지를 찾아봄직 합니다. 지묘동이란 이름의 유래부터 유적지 안에 나붙은 설명을 찬찬히 헤아리며 잘 관리된 유적지 내부를 걷다보면 천 년도 더 된 한반도의 역사가 선연히 되살아날지도 모를 일입니다. 희생과 고마움의 표현과 미덕을 기릴 줄 아는 자세, 역사를 안다는 건 기억해 마땅한 것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신숭겸 장군 유적지 배롱나무 보호수
ⓒ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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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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