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통로가 막혔다…기업들 투자는 커녕 인력 감축설까지
한국도 연달아 금리인상 불가피...기업들 초비상
[아시아경제 박선미 기자, 성기호 기자, 정동훈 기자, 문채석 기자, 최서윤 기자, 김평화 기자] 미국이 네 차례 연속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으면서, 오는 24일 최소 0.25%포인트 이상의 기준금리 인상이 불가피해진 한국은 기업의 투자축소, 감원, 도산 등 후폭풍이 예고되고 있다. 기업을 키우려면 투자 확대가 절실하지만 생산량을 바쳐줄 만한 수요도 여의찮은데다 금리 인상에 환율상승까지 겹쳐 국내외 어디에서도 예전처럼 적은 비용으로 돈을 빌리는 게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3일 산업계에 따르면 기업들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원·달러 환율 상승,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부담 상승 압력이 더 가중될 것으로 전망되자 속속 긴축재정을 시도하며 ‘최대한 버티기’ 준비에 나서고 있다. 기업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가장 많이 선택한 방법은 투자 축소다.
유동성이 그나마 넉넉한 편인 현대자동차의 경우 올해 투자 계획을 연초 제시한 9조2000억원에서 8조9000억원으로 축소하며 우선 자금 확보에 주력하기로 했다. 수입차 업계도 "현재 금리가 계속해서 높아지면서 본사로부터 긴축 재정 지시가 내려진 상황"이라며 "홍보비와 운영비 등을 모두 축소 시키며 이 시기를 넘기 위해 다들 고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반도체업계는 내년 상당 규모 투자 축소로 수급 균형을 앞당기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SK하이닉스는 웨이퍼 캐파 투자를 최소화하고 공정 전환 투자도 일부 지연할 계획이다. 내년 설비투자는 올해 대비 50% 이상 감축을 검토하고 있다. 이는 금융위기였던 2008년 업계 설비투자 절감률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항공업계는 도산 직전 상황까지 갔던 이스타항공 사태의 재발을 우려하고 있다. 이미 코로나19를 겪으며 재무구조가 크게 악화한 상황에서 환율 상승으로 인한 달러 부채 부담 상승, 항공유 비용 부담 상승 등 악재가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진에어는 지난달 31일 620억 규모의 영구채를 발행하며 자금조달에 나섰다.
제주항공의 모기업인 AK홀딩스는 1097억원을 출자해 제주항공의 유상증자에 참여하기로 했다. 제주항공은 3200억원 가량의 유상증자를 추진하고 있지만, 환손실 우려와 금리 인상 등으로 유상증자 규모가 1000억원 가량 줄어들며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자본잠식 위험에 시달리고 있다. 6월말 기준 아시아나항공의 자본 총계는 2046억원이지만, 상환해야 할 채권은 1조1500억원에 달한다. 특히 원·달러 환율 급등과 금리 상승으로 부담해야 할 이자 비용이 늘어난 것도 고민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이스타항공처럼 문제가 확 터지는 곳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도는 상황"이라며 "코로나19 전보다 항공사가 더 늘어난 상태에서 내년에는 경기가 완전히 침체라고 하니까 더 불안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화학업계도 금리 추가 인상에 대한 자금조달 부담, 환율 상승으로 인한 달러 기반 부채 증가 등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라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환율 상승은 제조 기반 수출기업에는 단기적으로는 이득이 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전반적인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함께 자산, 부채, 자금 조달 등에 복합적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결국엔 부정적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경제 불확실성이 워낙 커진 터라 내년도 비상 경영계획을 제대로 세우기도 어렵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지금처럼 불확실성이 큰 시기에는 경영계획 확정이라는 게 사실 의미가 없다"며 "신규 투자를 아예 중단할 수는 없지만 우선순위를 두고 신중히 나서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경제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성장은커녕 생존 준비에 나서고 있는 터라 투자축소, 감원, 도산 등의 발생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통화 당국의) 금리 인상 폭이 커 최근엔 신용도가 높은 기업들조차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고 있어 금융 당국이 채권시장안정기금 등을 투입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며 "현재 국제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크고 경기가 어렵기 때문에 기업이 부채를 이용한 선제적이고 과감한 투자에 유의하고 생존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에 도달한 것은 분명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기업의 규모와 관계없이 투자 축소, 감원 바람이 어느 정도 지속될 것으로 보이고, 이것이 놀라운 상황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허정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도 "우량기업이 많은 수출제조업 분야에서까지 한계기업이 늘어나는 등 우려할만한 시기"라며 "수출제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국가 경제 전체가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선미 기자 psm82@asiae.co.kr
성기호 기자 kihoyeyo@asiae.co.kr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최서윤 기자 sychoi@asiae.co.kr
김평화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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