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닮은 꼴 해외 압사 사례…책임자 처벌·법 개정 이뤄져

오규민 2022. 11. 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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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벌어진 '이태원 참사'에 관련해 향후 정부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각국 사례를 보면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책임자를 처벌하고 관련법을 개정하는 등 재발 방지에 힘쓴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은 압사 참사가 일어난 후 경찰 관계자들을 형사 처벌하거나 법을 개정했다.

이후 조사위는 2012년 참사 당일 경찰이 최소한의 저지선을 마련하지 않는 등 부실한 대응책을 내놓은 것을 밝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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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英 등 압사 ‘참사’ 있었어
책임 소재 분명히...공통점 드러나
진상조사 및 수사→처벌→재발 방지
순서로 '진실' 밝혀내
지난달 29일 벌어진 ‘이태원 참사’에 관련해 향후 정부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각국 사례를 보면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책임자를 처벌하고 관련법을 개정 하는 등 재발방지에 힘쓴 것으로 나타났다./김현민 기자 kimhyun81@

[아시아경제 오규민 기자] 지난달 29일 벌어진 ‘이태원 참사’에 관련해 향후 정부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각국 사례를 보면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책임자를 처벌하고 관련법을 개정하는 등 재발 방지에 힘쓴 것으로 나타났다.

日, 참사 직후 책임자 처벌과 법 개정 동시에

일본은 압사 참사가 일어난 후 경찰 관계자들을 형사 처벌하거나 법을 개정했다. 2001년 효고현 아키시시 인근 해안가에선 불꽃놀이 행사가 진행 중이었다. 이를 보러 온 수많은 관중이 좁은 보도교(인도교)를 지나가다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 10세 미만 어린이 9명을 비롯해 총 11명이 숨지고 258명이 다쳤다. 해당 보도교는 행사장과 인근 역을 잇는 다리로 길이는 100m지만 폭이 6m에 불과했다.

참사 후 효고현 경찰의 대응 등 당국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경찰은 폭주족 대책을 중시해 이에 대한 경비 요원을 292명 배치했지만, 혼잡 경비 대책에는 36명만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1년 전 같은 행사에서 5만5000명이 참석해 비슷한 사고가 일어나 부상자가 나왔지만, 경찰은 최대 약 20만명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했던 당시 행사에 이전과 동일한 경비계획서를 사용한 것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후 경찰 및 검찰의 수사를 통해 경찰관 1명과 경비회사 직원 1명, 시 공무원 3명이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기소됐고 유죄가 인정돼 금고형을 받기도 했다. 또 2005년 11월 일본 정부는 경비업법과 국가공안위원회 규칙 개정을 통해 인파가 몰리는 현장에서의 경비체계를 바꾸게 됐다.

일본은 압사 참사가 일어난 후 경찰 관계자들을 형사 처벌하거나 법을 개정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英, 23년이 지나 밝혀낸 진실...‘경찰의 부실 대응’

영국은 수십 년이 지나도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냈다. 1989년 4월 15일 영국 셰필드 힐스버러 경기장에서 리버풀과 노팅엄 포레스트의 경기가 예정돼있었다. 이날 축구 팬 96명이 압사하고 766명이 부상을 입는 참사가 일어났다. 시합을 보러온 수많은 팬이 몰린 가운데 경찰이 출입문을 추가로 개방했고 한꺼번에 문으로 사람이 쏟아져 들어가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 하지만 당시 경찰은 ‘일부 팬들이 술에 취해 입장권 없이 경기장 안으로 밀고 들어가면서 발생한 사고사’라고 발표해 논란이 됐다. 이후 유가족들은 20년 동안 재조사를 요구했다.

2009년 영국 정부는 힐스버러 독립조사위원회(Hillsborough independent Panel)를 구성해 힐스버러 참사를 조사할 권한을 부여했다. 변호사, 의사, 범죄학 전문가, 기자 등으로 구성된 조사위는 3년간 관련 서류를 모두 웹사이트에 공개하는 방식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이후 조사위는 2012년 참사 당일 경찰이 최소한의 저지선을 마련하지 않는 등 부실한 대응책을 내놓은 것을 밝혀냈다. 참사 후 23년이 지나 데이비드 캐머런 당시 영국 총리가 정부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영국은 수 십년이 지나도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오규민 기자 moh01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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