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랑]“수술하면 환자가 너무 힘들 겁니다…”

기고자/이병욱 박사(대암클리닉 원장) 2022. 11. 3.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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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건의 수술을 하면서 재수술한 경우가 딱 한 번 있었습니다.

"수술하면 환자가 너무 힘들 겁니다.""그래도 여한이 안 남도록 수술을 해주세요."

수술하다 보면 환자의 상태가 어떤지 한 눈에 드러납니다.

모든 수술 앞에서 신중한 태도를 기하는 건, 환자의 생존과 삶의 질의 관점에서 결코 과한 것이 아니라는 걸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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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께 보내는 편지>
수천 건의 수술을 하면서 재수술한 경우가 딱 한 번 있었습니다. 애초에 제가 반대한 수술이었지요. 체력도 약하고 몸무게가 40kg도 채 되지 않는 75세의 할아버지 환자로, 저는 그 정도의 상황이면 하늘에 목숨을 맡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 아버지라도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제 아버지라면 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수술해서 1년을 더 살거나, 수술하지 않고 반년을 사는 것. 오래 사는 것과 삶의 질은 분명히 다릅니다. 단순히 오래 사는 데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건강관리를 잘 하면 100세까지 살 수도 있지만 아직은 75~85세가 평균 수명입니다. 그래서 노인 환자 수술을 할 때는 보다 신중해야 하고, 75세부터는 좀 더 신중을 기하는 편입니다.

“수술하면 환자가 너무 힘들 겁니다.”
“그래도 여한이 안 남도록 수술을 해주세요.”

그 당시 환자의 상태는 무척이나 좋지 않았습니다. 몸무게가 30kg 후반으로 너무 쇠약해서 수술할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들들은 수술대 위에서 돌아가시더라도 여한이 없도록 수술을 해달라고 졸랐습니다. 제가 수술해주지 않으면 다른 병원에 가서라도 수술할 거라는 보호자들의 말에 할 수 없이 저는 수술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어차피 할 수술이라면 제가 직접 하는 게 나을 성싶었기 때문입니다.

이병욱 박사의 작품, <훈민정음, 그 땀과 눈물> Acrylic on Canvas 2021​
수술하다 보면 환자의 상태가 어떤지 한 눈에 드러납니다. 개복을 하니 이미 장기들은 탄력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탄력이 떨어지면 수술 후에 유착이 잘 일어나고, 상처도 더디 아뭅니다. 겨우 봉합은 했지만 터질 가능성이 농후해 문합부(수술 때 절제 후 이은 부분)에 누공이 생길 수도 있었습니다. 저의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수술 첫날부터 많은 분비물을 쏟아내더니 급기야 이상 징후가 나타났습니다. 재수술한 다음에도 그 분은 한 달이나 더 입원해야만 했습니다.

수술이 능사가 아니라고 아무리 보호자를 말려도 꿈쩍 않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하지만 수술을 받을지 말지 결정하는 건 반드시 보호자가 아닌 환자의 입장에서 신중하게 고민하고 선택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수술하면 2년을 살고, 수술하지 않으면 1년을 산다고 가정했을 때 고민해야 할 건 수술 후의 삶의 질입니다. 단순히 몇 달을 더 사는 게 의미 있는 일인지, 환자에게 좋은 결정인지 고민해봐야 합니다. 수술 후에 더 힘들거나 아파할 것 같으면 안 하는 편이 낫습니다.

위의 보호자들처럼 수술을 결정할 때의 판단 기준이 결코 보호자들의 ‘여한’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수술은 인체의 균형을 인위적으로 완전히 깨어버리는 의료 행위이므로 그로 인한 득이 실보다 클 때 시행해야 합니다. 수술은 생각처럼 간단하지도 않고 마법도 아닙니다. 컨디션이 좋은 일반인에게도 힘든 일입니다.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든 암 환자에게는 수술의 후유증에서 벗어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치의가 수술이 꼭 필요하다고 판단한 게 아닌 상황에서, 최우선 선택으로 수술을 고려하시면 안 됩니다. 모든 수술 앞에서 신중한 태도를 기하는 건, 환자의 생존과 삶의 질의 관점에서 결코 과한 것이 아니라는 걸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오늘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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