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골프 결산] 화려한 돈잔치에도 '갈라파고스 리그' 우려
54홀·단체전·샷건 도입했지만 시청률은 되레 곤두박질
[아시아경제 이서희 기자] 세계 남자 골프 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킨 LIV 골프 인비테이셔널 시리즈가 지난달 말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팀 챔피언십을 끝으로 첫 시즌을 마쳤다.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라는 막강한 돈줄을 등에 업고 출범한 LIV 골프는 숱한 화제를 뿌리며 미국 프로골프(PGA)투어와 곳곳에서 충돌했다.
다만 여전히 LIV를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머지않아 PGA를 대체할 것이란 의견과 리그 자체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동시에 나온다. LIV 골프 첫 시즌을 결산하고 내년 시즌을 전망해 본다.
'돈' 챙겼지만 '랭킹' 잃었다
‘3576만달러(약 504억원).’ 전 세계랭킹 1위 출신의 더스틴 존슨(미국)이 LIV 골프로 이적한 후 4개월간 벌어들인 상금이다. 그가 2008년부터 이적 직전까지 15시즌 동안 벌어들인 상금 7489만 달러의 절반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개인전 1승, 단체전 2승 등 각 대회 성적으로만 1763만 달러의 상금을 챙겼다. 여기에 시즌 전체기록 1위로 보너스 1800만달러를 받았다. LIV 이적 당시 거론된 이적료 1억 5000만달러까지 더한다면 그가 LIV 이적 첫해 벌어들인 돈은 어림잡아 2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역대급' 우승상금은 PGA 투어의 핵심 선수를 LIV 골프로 끌어오는 원동력이었다. LIV 골프가 올해 8개 대회를 통해 풀어낸 총상금은 2억5500만달러에 달한다. 대회 수는 47개 대회를 치르는 PGA투어의 6분의 1 수준이지만 총상금은 PGA투어(4억2180만 달러)의 절반을 넘는 셈이다.
돈의 힘은 컸다. 더스틴 존슨, 브라이슨 디섐보, 팻 퍼레즈는 물론 세계랭킹 2위(이적 당시 기준)였던 캐머런 스미스까지 잇따라 LIV 골프에 합류했다. 이들은 LIV 골프 이적만으로 적게는 수천만 달러에서, 많게는 1억달러가 넘는 계약금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역대급 우승상금을 선택한 선수들에겐 대가도 따랐다. 사흘간 54홀을 치르는 LIV 골프에서는 우승하더라도 세계랭킹 포인트가 주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LIV 무대에서 좋은 활약을 펼쳐도 랭킹은 계속해서 떨어지는 구조다. 이 때문에 LIV 소속 선수가 주요 메이저 대회 출전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DP 월드투어, 아시안투어 등에 출전하며 따로 세계랭킹을 관리해야 한다. 혹은 메이저 대회 출전을 아예 포기해야 한다.
실제로 올해 LIV 골프로 이적한 선수들이 세계 랭킹은 급전직하했다. 전 남자골프 세계랭킹 1위인 더스틴 존슨의 순위는 10월 30일 기준 31위까지 떨어졌다. 필 미컬슨은 연초 71위에서 최근 155위까지 떨어져 마스터스 토너먼트, 디 오픈 챔피언십 등의 참가 가능성이 희박해진 상태다.
이는 성장 중인 젊은 골퍼들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다. 자칫 '돈'만 좇다가 디 오픈 챔피언십, 마스터스 토너먼트 등 세계 최고의 무대를 밟아 보지도 못할 수 있어서다. LIV 골프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갈라파고스 투어'로 전락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LIV 골프는 중동·북아프리카 투어인 MENA투어와 손잡고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MENA투어와 제휴를 맺고 모든 LIV 골프 소속 선수들을 MENA투어 회원으로 등록하는 방안이다. MENA투어는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골프 투어로 영국왕립골프협회(R&A), 아랍골프연맹과 제휴돼 있어 2016년부터 세계랭킹 포인트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투어의 인지도와 대회 난이도에 따라 차등 부여되는 세계랭킹 포인트의 특성상 MENA투어에서 얻을 수 있는 포인트는 PGA투어와 DP 월드투어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들만의 잔치'에 흥미 뚝…줄어든 관중에 방송사들도 외면
LIV 골프는 48명의 선수가 컷 탈락 없이 3라운드 54홀을 소화하는 방식으로 치러진다. 2라운드가 끝난 후 전체 인원의 절반 정도가 컷 탈락하고, 4일간 4라운드(72홀)를 소화하는 PGA 투어와 다르다. 여기에 전 홀에서 동시에 출발하는 샷건 방식으로 전체 경기 시간도 줄였다. 선수들에겐 매력적일 수도 있는 조건이다.
하지만 이런 요소가 오히려 LIV 골프의 흥행에 마이너스 요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기존의 PGA 투어처럼 컷 탈락의 압박이 없는 데다 최하위권도 상금을 챙겨갈 수 있는 탓에 ‘막판 뒤집기’ 등 짜릿한 장면이 연출될 가능성이 작다. ‘소속 선수들끼리의 잔치’라는 비판도 따른다.
선수 상당수가 전성기를 지난 40대라는 점에서 은퇴를 앞둔 고령 선수가 모이는 투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LIV 골프는 PGA 투어보다 체력 소모가 적고 경기 진행이 빠르다. 커리어보단 가족과 함께하는 '워라밸'을 바라는 선수들에게 제격이다. 이를 두고 로리 매킬로이는 “40대가 넘어 LIV 골프에 출전하는 선수들이 많다. 대부분 전성기가 지난 선수들"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젊은 선수들을 향해 "너무 편한 길을 선택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일침을 가했다.
이는 중계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 LIV 시리즈는 유튜브 등 제한된 채널을 통해서만 중계되고 있다. LIV 골프 측이 ESPN, CBS, NBC, 폭스 등의 유력 방송사에 접근해 계약을 타진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최근엔 LIV 골프가 애플과 아마존에 접근해 방송권 양도를 제안했으나 이들 기업도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갤러리들의 관심도 낮아지고 있다. 보스턴, 시카고, 베드민스터의 파이널 라운드에는 약 60만 명 이상의 관객이 모였으나 이후에 개최된 대회에서는 급격히 관객 수가 줄었다. 지난 10월 열린 방콕 대회의 관객 규모는 시카고의 3분의 1, 보스턴의 5분의 1 수준이었다.
반면 PGA 투어는 최근 CBS, NBC, ESPN+와 9년 계약을 체결하며 2030년까지 중계 계약을 끝냈다. 계약으로 인한 수익금은 연간 약 7억 달러로 알려졌다. 미 방송계는 계약 기간 동안 PGA투어의 중계 가치가 약 6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LIV 측은 이런 흥행 실패에도 내년 시즌에는 오히려 PGA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겠다고 선전포고했다. 경기 수와 상금 규모를 확대하고 더 많은 톱랭커 선수들도 추가 영입한다는 방침이다.
일단 올해 8개였던 대회 수는 내년 14개로 대폭 확대된다. 14개 대회의 총상금은 4억500만달러(약 5761억원)로 올해 2억2500만달러의 두배로 는다.
대회 개최 국가도 확대될 전망이다. 앞서 LIV 골프는 “내년엔 북미와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호주, 중동 및 유럽 전역으로 확대해 나가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9개 대회는 미국에서, 5개 대회는 다른 국가서 개최된다. 올해 열린 8개 대회는 미국에서 5개, 영국과 태국,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각 1개씩 열렸다.
여기에 톱 랭커도 추가 영입한다는 복안이다. 코슬라 사장은 이날 “새해 추가 선수 영입에 대한 발표가 있을 것”이라 밝혔다. 이후 BBC는 LIV 골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세계랭킹(OWGR) 15위 이내 선수가 최소 2명에서 최대 4명까지 LIV 시리즈로 이적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PGA 측의 대응도 만만치 않다. 앞서 지난 8월 PGA는 2022~2023시즌 일정을 발표하면서 주요 8개 대회의 총상금을 1500만달러에서 2500만달러로 1000만달러 인상하기로 했다. 여기에 1억4500만달러의 보너스 상금도 책정했다. 이 중 7500만달러는 페덱스컵 포인트에 따라 지급하고 별도로 상위 10명의 선수에게는 2000만달러를 나눠준다. 나머지 5000만달러는 '선수 영향력 프로그램'이라는 평가 시스템을 통해 분배할 계획이다.
대부분 전문가는 현재 스코티 셰플러, 로리 매킬로이 등 대부분의 톱랭커나 타이거 우즈처럼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인물들이 PGA를 확고하게 지지하는 한 LIV 골프가 세계 골프계의 판도를 뒤집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이서희 기자 daw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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