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규홍 PD “‘나는 솔로’, 사랑 통해 사람 보죠” [쿠키인터뷰]
온갖 연애·데이팅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 자극적인 설정이나 획기적인 시도 없이 고정 시청층을 탄탄히 모은 프로그램이 있다. 지난해 첫 방송 이후 10기까지 레전드를 경신했다는 반응이 매회 나왔다. ENA PLAY와 SBS플러스가 공동 제작한 ‘나는 솔로’ 이야기다.
‘나는 솔로’는 서비스 중인 OTT 플랫폼마다 시청순위 상위권에 이름 올렸다. 지난달 26일 방영한 돌싱 특집 마지막 회는 채널 합산 시청률 4.7%(닐슨코리아 전국 유료가구 집계)로 자체 최고 성적을 냈다. 한국 갤럽이 매월 발표하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프로그램’,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이 매주 조사하는 ‘비드라마 TV 화제성’ 순위에서도 꾸준히 상위권을 기록 중이다. 시청자 사이에선 ‘도파민을 활성화시키는 방송’, ‘연애 프로가 아닌 인문학 보고서’, ‘온갖 인간 군상을 볼 수 있는 프로그램’ 등 폭발적인 반응이 나온다.
“사랑을 통해 사람을 본다는 생각으로 만듭니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그 마음은 변함없죠.” 지난 1일 서울 목동 촌장엔터테인먼트 사무실에서 만난 남규홍 PD는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 남규홍 PD는 연애 데이팅 프로그램의 대가다. SBS ‘짝’을 시작으로 NQQ·디스커버리 채널 코리아 ‘스트레인저’를 거쳐 현재 ‘나는 솔로’를 연출 중이다. 그가 제작하는 프로그램엔 억지가 없다. 잘되면 결국 본다는 자신감 하나로 뚝심 있게 자신만의 연애 프로그램을 만든다. 남규홍 PD에게 ‘나는 솔로’ 제작 과정 전반에 관한 이야기부터 최근 화제가 된 10기의 비화를 들어봤다.
Q. ‘나는 솔로’는 최근 유행 중인 연애 프로그램과 분명히 다릅니다. 혹자는 ‘나는 솔로’로 인간을 공부한다고 할 정도예요. 이같은 반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부정할 생각 없습니다. 보는 사람의 평가가 정확합니다. ‘나는 솔로’는 데이팅 프로그램이지만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조명합니다. ‘짝’도, ‘나는 솔로’도 마찬가지예요. 늘 사랑을 통해 사람을 보려 합니다.”
Q. 출연진이 보여주는 날것에 가까운 모습이 ‘나는 솔로’의 인기 비결로 꼽힙니다. 출연진을 뽑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애써서 찾지 않습니다. 그런 분들이 우연히 다채롭게 모여든 거죠. 살다 보면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을 방송에 담은 것뿐이에요. 시청자들이 평가하고 분석하며 여러 이야기를 만든 덕이 큽니다. 저희 출연진이 특별히 이상한 건 아니에요. 보통 사람이 가진 모습을 잘 드러낸 거예요. 최근에는 섭외 없이 신청자들로만 출연진을 꾸리고 있습니다. 자발적으로 신청한 만큼 더 적극적으로, 진실하게 임해요. 이번 10기 출연진도 100% 신청자들로만 이뤄졌습니다.”
Q. 출연진의 본모습을 끌어내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별 거 없습니다. 방송이다 보니 상황을 압축해서 보여주곤 합니다. 느슨한 장면도 그런 과정을 거치면 밀도가 생겨요. 감정도 자연히 압축돼 담기죠. 출연진 역시 정해진 기간과 한정된 공간에서 각자 목표대로 전진하다 보니 불필요한 행동보단 진짜 감정만을 보여줘요. 상황에 집중하는 거죠. 출연하면 자연스레 그렇게 됩니다. 제작진은 전혀 개입하지 않아요. 저희는 대본 자체가 아예 없습니다. 너무 날것 같은 건 추후에 농도를 조절하죠.”
Q. 대본이 전혀 없다는 점이 흥미롭네요. 제작에 어려움은 없나요.
“전혀요. 오랫동안 그렇게 제작해왔습니다. 정해진 공식대로 가지 않으려 해요. 축구나 야구를 생각해보세요. 규칙이라는 큰 틀을 마련하면 제작진과 출연진은 경기에 몰두하듯 최선을 다해 임할 뿐입니다. 게임은 버튼을 누르는 대로 작동하지만 사람이 뛰는 스포츠는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아요. 살아있는 생물 같은 거죠. ‘나는 솔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략적인 촬영 구성안을 토대로, 매 순간 발생하는 감정에 따라 변화합니다. 축구 경기가 상황에 맞춰 전술을 바꾸듯이요. 데이트 선택 주체를 어느 쪽에 줄지도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10기에 나온 힐링 데이트 시간도 격해진 감정을 식히기 위해 즉석에서 정했습니다.”
Q. MC들의 호흡 역시 ‘나는 솔로’의 관전 포인트로 꼽힙니다. 특히나 데프콘은 빼어난 입담으로 분위기를 환기하고 웃음을 주곤 하죠.
“세 분 모두 내공과 실력을 갖춘 분들입니다. 세세한 대본을 줄 필요도 없어요. 영상을 보며 본인이 느낀 점을 표현하는 게 가장 중요하거든요. 데프콘씨는 MC로서 신의 경지에 다다른 분이에요. 데프콘 없는 ‘나는 솔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제작발표회 때도 말했지만, 데프콘씨는 제게 지금도 여전히 원빈입니다.”
Q. MC들의 반응이 가장 뜨거웠던 기수가 있었나요?
“늘 재밌어합니다. 그중에서도 꼽자면 9기와 이번 돌싱 특집을 더욱더 열렬히 본 것 같아요.”
Q. 편집 방향을 잡는 기준이 궁금합니다.
“연애감정을 중요하게 보여주려 합니다. 10기에서 김치찌개로 싸우는 모습도 상호 감정에 중요하게 작용한 내용이라 편집 없이 그대로 담았습니다. 남녀 사이에 발생하는 감정을 감안해 전체 스토리에 반영하려 해요. 개인 서사처럼 특정 부분에 치우치려 하진 않습니다. 한 쪽으로 쏠리면 왜곡이나 허점이 생기거든요. 편집은 늘 공정하고 정직하게 진행해야 합니다. 하나의 조각품을 만든다고 생각하며 편집하고 있습니다.”
Q. 출연진 전원이 일반인인 만큼 신경 쓸 부분이 여럿 있을 것 같아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늘 생각합니다. 제작진이 욕심을 부리면 선을 넘어요. 그러면 자연히 출연자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너무 몸을 사리면 프로그램이 무뎌져요. 적정선을 지키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보편타당한 일반 상식선에서 편집점을 잡습니다.”
Q. 시대가 달라지며 사람들이 연애 프로그램에 임하는 태도도 달라졌습니다. 예컨대 과거엔 출연진이 대체로 자신의 마음을 확정해 마지막까지 구애를 벌였다면, ‘나는 솔로’에선 최종 선택 자체를 포기하는 이들도 적지 않아요. 10년 동안 연애 프로그램을 제작한 만큼 변화상을 어떻게 느낄지 궁금합니다.
“사회 분위기에 따라 당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언제부턴가 구애 활동 자체가 조심스러워졌잖아요. 과거엔 길거리에서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번호를 물어보는 게 자연스러웠지만, 이제는 조심해야 할 행동이죠. 마음을 마냥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최종 선택을 보류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변화라 생각합니다.”
Q. 매 회 화면이 전환될 때마다 상황에 맞는 명언이 나오는 게 인상 깊어요. 어떤 과정을 통해 탄생한 말들인가요?
“화면에 빈 공간이 있으면 제가 적당히 씁니다. 단순합니다. 필요하면 쓰는 거고, 불필요하면 안 씁니다. 따로 메모해놓지도 않고 즉각 씁니다. 이왕이면 멋있게. 싸구려로 쓸 순 없으니까.”
Q. ‘나는 솔로’는 그 자체가 장르라는 반응이 있습니다. 꾸준히 인기를 얻는 이유를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재밌게 잘 만들어서죠. 재미없으면 안 봅니다. 재미있으면 어디서 방송하든 귀신같이 찾아봅니다. ‘나는 솔로’는 굉장히 정직한 프로그램이에요. 우리 사회는 은연중에 정직이란 가치를 갈구하고 있어요. 그런 만큼 제작진으로서도 출연진이 자기감정에 충실히 행동하는 모습을 꼭 담으려 해요. 저희는 기계적으로 만들지 않아요. 매번 뼈를 깎는 정성으로 제작합니다.”
Q. 시청자들이 10기에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평소 연애 프로그램을 즐겨보지 않는 시청자도 관심을 가질 정도죠. 제작자로서 특히나 추천하고 싶은 기수가 있나요?
“추천 안 해도 됩니다. 잘되면 알아서 다 찾아봅니다. 잘 만들면 통할 수밖에 없잖아요. 재밌게 본 사람들이 입소문을 내는 게 가장 강력한 홍보입니다. ‘나는 솔로’가 갑자기 인기를 얻는 것보다는 야금야금 개미처럼 전진하길 바랍니다. 적당한 속도로 타오르게끔 조절하려 해요. 이번에 방송한 10기 돌싱 특집이 뜨거웠으니 다시 속도감을 찾을 때예요. 그리고나서 또 한 번 뜨겁게 타올라야죠.”
Q. 출연을 망설이는 사람에게 ‘나는 솔로’의 강점을 홍보해주세요.
“제작진에게 신뢰가 있다면 출연하세요. 못 믿겠으면 출연 안 해도 됩니다. 제작진이 매사 완벽할 순 없겠지만 이것만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저희가 추구하는 정신은 언제나 변함없습니다. 언제나 진실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정직하고 공정하게 만듭니다. 제작진을 100% 믿어준다면 후회 없을 겁니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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