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국 밀어붙이더니 역풍…여당서 '이상민 책임론' 커진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와 관련해 ‘경찰 지휘 주무장관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책임 추궁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여권 내에서 커지고 있다. 사고 4시간 전 부터 이미 “압사”, “구조”를 요청한 ‘112 신고 녹취록’이 공개된 것이 계기였다. 윤희근 경찰청장의 경질은 이미 여권 내에서 기정사실화됐고, 참사 직후 “경찰·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지난달 31일)는 발언으로 논란을 촉발시킨 이 장관 역시 방어하기 힘들다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2일 국민의힘의 여러 인사들이 ‘이상민 책임론’을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당권주자인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112신고 녹취록을 보면 조금도 변명할 여지가 없다”며 “윤희근 경찰청장은 즉시 경질하고 사고 수습 후 이상민 행안부장관은 자진 사퇴해야 한다”고 적었다. 비윤(비윤석열)계인 유승민 전 의원이 전날 이 장관의 “당장 파면”을 주장한 데 이어, 인수위원장을 지낸 안 의원까지 이 장관의 거취 정리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원외 당권주자로 분류되는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도 이날 라디오에 나와 “이상민 장관이 너무 법적인 판단, 법적인 이야기를 했다. 매우 부적절했다”면서 “뒤늦게나마 사과한 점은 다행이지만 국민들이 보기에는 공감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중앙일보 통화에서 “우리 당 분위기가 어제(1일) 112 신고 녹취록 공개를 기점으로 확 바뀌었다”며 “아무래도 이 장관이 옷을 벗어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경찰 출신인 권은희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책임자들이 변명하고 회피하고, 심지어 일선 현장 경찰관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며 “당연히 행안부 장관과 경찰청장이 본인들의 거취에 대해 판단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문제는 빨라야 한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비대위 등 당·정 핵심부는 ‘선(先)수습-후(後)사퇴’쪽에 무게를 두고 책임 소재를 보다 면밀히 따져보겠다는 기류다. 이상민 책임론을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이들의 태도와는 거리가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이 장관의 경질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누가, 얼마나, 무슨 잘못을 했는지 철저한 감찰과 수사 진행상황을 지켜볼 것”이라면서 “정무적 책임 또한 사실관계를 기반으로 판단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도 연일 중앙일보에 "당장 누구를 경질한다고 할 단계는 아니다. 일단 사고 수습과 원인 규명 뒤 문책 범위를 봐야 한다"는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수뇌부도 이날 “네 번이나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의 현장 판단이 왜 잘못됐는지, 기동대 병력 충원 등 충분한 현장 조치가 왜 취해지지 않았는지 그 원인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그리고 응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정진석 비대위원장), "추모 기간이 끝나면 철저한 원인 조사와 상응하는 책임추궁, 그에 따른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주호영 원내대표)고 했다. 다만 대통령실 핵심부 기류와 마찬가지로 이상민 장관의 이름을 공개적으로 꺼내거나 적시하지 않았다.
여권 일각에선 "이 장관이 윤 대통령의 충암고·서울법대 후배이자 최측근이라는 변수 때문에 여권 핵심부는 이 문제를 다루는 데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래서 실제로 윤 대통령이 이 장관을 경질할지에 대해선 “가까운 사람을 잘 내치지 않는 대통령 인사 스타일상 경질 가능성이 크지 않을 것"(전직 의원)이라는 관측부터 “향후 더 커질 정권 책임론 역풍을 고려하면 이 장관 사퇴선에서 마무리할 수 밖에 없을 것”(초선 의원)이란 전망까지 다양한 분석이 제기된다.
이 장관이 이날 이태원 사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 불참한 대신 윤석열 대통령의 세 번째 희생자 합동분향소 조문에 동행한 걸 두고도 여러 해석이 나왔다.
다만 여권내부와 정치권엔 “이 장관이 경찰의 집단 반대에도 불구하고 행안부 내 경찰국 신설을 밀어붙였던 것은 분명한 부담”(경찰 출신 변호사)이란 지적은 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중앙일보 통화에서 “이번 사고 때 행안부 장관이 용산경찰서장, 서울경찰청장, 경찰청장을 모두 지휘했다”면서 “시행령 개정으로 과거보다 행안부 장관의 책임이 커졌고 경찰청장이 혼자 책임지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심새롬·박태인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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