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카카오 ‘통 큰’ 보상의 함정
#1. “(카카오가) 전례 없는 보상을 하면 무료 유료를 다 떠나 더 많이 보상할수록, 기업 이미지가 더 상승할 것이고 카카오에 더 많은 복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청래 의원이 김범수 창업자에게)
#2. “카카오T 앱에 가입한 시민에 3~5회 무료 호출서비스 기회주고 기업 이미지 제고하는 게, 영업이익 내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류긍선 카카오모빌리티 대표에게)
#3. “업비트도 이왕이면 통 큰 보상을 해주는 게 어떤가.” (윤창현 의원이 이석우 두나무 대표에게)
지난달 24일 국회 국정감사의 장면들이다. 기업이 걱정돼 하는 충고인지, 4700만 카톡 사용자를 대신한 요구인지 모를 훈계들이 나왔다. 고양이 쥐 생각해주나 하는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국회 스스로 2년 전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안을 무산시켜 재난을 못 막은 데 대한 반성은 없었다.
이번에 ‘알고보니 카톡 무료 아니더라’는 사람들이 많다. 내 시간, 데이터, 관계, 소득 기반을 카카오에 많이 기댄 사람일수록 큰 피해를 입었다. 의원들은 “무료라서 간접 피해의 보상 범위를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김범수 창업자를 밀어붙인 끝에 “검토하겠다”는 답을 받아냈다. 그렇다고 보상 쿠폰 받고 끝낼 일은 아니다.
카카오를 더 혼내자는 게 아니다. 특정 기업 한 곳의 서비스에 이렇게까지 사회가 종속되는 상태의 지속, 이게 문제다. 메신저나 택시 호출 같은 시장에선 다른 경쟁자가 따라잡기 어려울 만큼 카카오는 시장을 장악했다. 문제는 그럴수록 소비자도 편하다는 것. 카톡 하나면 대한민국 누구와도 연결되고, 공공 서비스 이용에도 막힘이 없다. 독점이라 소비자도 더 편리해지는 패러독스. 빅테크 여럿을 배출한 미국에서 이미 수년 전에 이 모순을 디지털 경제의 독과점 양상으로 정의했고, 국내에서도 올해 초 공정거래위원회가 플랫폼의 경쟁제한 행위 심사 지침을 마련해놨었다.
정부나 국회가 챙길 일은 이런 데 있다. ‘카톡은 국가기반통신망이나 다름없다’며 안보 인프라 책임을 지우면 사회의 카톡 의존도는 더 높아질 수 있다. 그보다는 플랫폼 경제의 규칙을 안착시키는 게 디지털 재난 예방에 더 효과적이다. ‘자율규제’ 방침은 우아했지만, 지금 필요한 건 냉정한 심판이다. 시장의 시작과 끝을 구획하기 어렵고 규칙도 없는 마당에 기업들이 알아서 선 긋고 자제하길 바라는 건 무리. 정부든 국회든 더 근본적인 일들부터 챙기길 바란다. 그게 ‘통 큰 보상’ 약속을 받아내는 것보다 소비자에, 사회에 더 시급한 일 아닐까.
박수련 팩플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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