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서열 1위 “끔찍한 대가 치를 것” 미국 겨냥 핵위협
북한은 2일 ‘9·19 남북 군사합의’를 어기고 탄도미사일과 지대공미사일 발사, 포 사격 등 전방위 도발에 나서기에 앞서 “끔찍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북한군 서열 1위인 박정천 노동당 비서는 이날 0시쯤 공개된 담화에서 “미국과 남조선이 겁도 없이 우리에 대한 무력 사용을 기도한다면 공화국 무력의 특수한 수단들은 부과된 자기의 전략적 사명을 지체없이 실행할 것”이라며 “미국과 남조선은 가공할 사건에 직면하고 사상 가장 끔찍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가 언급한 ‘특수한 수단’과 ‘가공할 사건’은 핵 도발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박정천은 북한 권력 핵심인 당 정치국 상무위원 6명에 속한다. 당국은 그가 북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도 맡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북한에서 ‘김정은 일가’를 제외하고 군 관련 인사가 오를 수 있는 최고 직책으로, 북한의 도발 시간표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직접 위협 목전까지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박정천의 담화는 사실상 김 위원장의 경고로 봐야 한다”며 “특히 지난달 총참모부 대변인 발표와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 이어 나온, 이번까지 경고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내부적으로 대형 도발의 수순을 밟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이 과거에는 탄도미사일 발사나 포 사격 위주로 대응했는데, 이제는 핵 카드를 꺼내 흔들면서 핵 공격 위협을 가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대미·대남 핵 공격 위협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담화가 나온 시간에도 주목한다. 북한은 이번 담화를 이례적으로 2일 0시쯤 발표했다. 미국 워싱턴 기준으로는 1일 오전 11시여서 미국을 겨냥한 담화란 분석이 나온다.
실제 박정천의 담화는 미 국방부가 지난주 내놓은 핵태세검토보고서(NPR)에 대한 비난으로 채워져 있다. 그는 “미 국방성은 우리 공화국의 ‘정권 종말’을 핵전략의 주요 목표로 정책화했다”며 “(남측) 국방부 장관과 합동참모본부 의장을 비롯한 군부 호전광들도 우리가 핵을 사용하는 경우 정권을 전멸시켜야 한다는 헷뜬(허튼) 망발을 늘어놓았다”고 비난했다. 미국이 “정권 종말”을 언급한 것에 대해 북한은 ‘최고 존엄’인 김정은에 대한 모독으로 받아들이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는 “중대 도발의 명분 쌓기에 나선 북한은 이번 담화에 이어 조만간 김여정이 나서 공개 비난 성명 등 ‘말폭탄’을 쏟아낼 가능성이 크다”며 “특히 아직 조 바이든 대통령이나 미국 당국자에 대해서는 실명 비난을 자제하고 있는 북한이 실질 협상 대상이 될 미국에 대한 발언 수위를 어떻게 가져갈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도발이 ‘이태원 참사’에 따른 한국의 국가 애도 기간에 나왔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한국 여론을 의식해 최소한의 선을 넘지 않았던 도발 패턴이 깨졌다는 의미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평소라면 북한이 대남 상황을 살펴보면서 여론을 고려해 자제할 법한데 그러질 않았다”며 “지속적인 긴장 조성을 통한 담판용 핵 능력 확보라는 목표 완수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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