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그 후, 지하철의 사람들이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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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도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사람들이 우르르 타기 시작했다.
"지하철 타는데 오늘 누가 계속 뒤에서 미는 거야. 그래서 밀지 마세요! 하니까 동시에 주위 사람들 다 멈춤... 진짜로..."
"어제오늘 체감상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달라졌다. 평소라면 꽉꽉 눌러 탔을 텐데 다들 조심하는 게 느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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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혜림 기자]
▲ 10월 6일 오전 서울 1호선 서울역에서 승객들이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다. |
ⓒ 연합뉴스 |
그중 9호선 동작역은 마치 '신문지 게임' 같았다. 지금 이 지하철을 안 타면 영영 탈락인 것처럼, 그 좁은 공간에 너나 할 것 없이 발부터 들이민다. 한시가 급한 현대인들에겐 다음 지하철을 기다릴 10분의 여유조차 없는 걸까.
이날도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사람들이 우르르 타기 시작했다. 숨을 편히 내쉴 만한 틈새는 순식간에 모두 메워졌다. 유독 체구가 왜소한 편인 나. 가슴을 짓누르는 주위의 묵직한 압박에 저절로 '억' 하고 신음이 났다. 간신히 얼굴만 빼꼼 내놓은 채 입으로 얕은 숨을 몰아쉬고 있던 때였다.
지하철 문 앞쪽에서 어떤 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만 타세요!", "다음 열차 타세요!", "앞 사람 밀지 마세요!" 한 명이 아니었다. 두세 명은 되는 듯한 목소리였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늘 당연하게 여기며 견뎌 왔던 출퇴근 지옥철.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로 하여금 순간 '당연한 게 아닌 것'이 되었다.
물론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서도 문 앞에서 아슬아슬 버티던 이들은 있었다. 다만 나는 지하철 안 공기의 흐름이 조금 바뀌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틈도 없이 붐비던 인파, 곳곳에서 들리던 신음 소리. 어느 누구도 말하지 않았지만, 우린 분명 똑같은 일을 떠올리고 있었을 것이다.
▲ 지하철 지하철 안 사람들 |
ⓒ 픽사베이 |
"OOOO역 환승 구간 계단 퇴근 시간에 내리는 사람 타는 사람 뒤엉켜서 헬(지옥)인데 오늘은 계단에 사람들이 일정 간격 두고 서서 기다리면서 올라가는 거임..."
"지하철 타는데 오늘 누가 계속 뒤에서 미는 거야. 그래서 밀지 마세요! 하니까 동시에 주위 사람들 다 멈춤... 진짜로..."
"어제오늘 체감상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달라졌다. 평소라면 꽉꽉 눌러 탔을 텐데 다들 조심하는 게 느껴짐."
나만 느꼈던 변화는 아니었다. 트위터 등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었던 사람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아직 미약하나, 국민 대다수가 이태원 참사 이후로 일상 속 안전을 민감하게 감지하고 있는 듯했다.
어쩌면 전 국민이 참사 트라우마를 갖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언제 어디서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 나 역시 별안간 사고를 당할 수 있다는 공포. 지하철뿐만 아니다. 사람이 몰리는 그 어떤 곳이든 우린 늘 긴장하며 경각심을 갖게 될 것이다.
이젠 그 어떤 국민도 힘없이 떠나보내선 안 된다.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참사라면 결코 재현되어선 안 된다. 우리 모두에겐 안전할 권리가 있다. 집에 무사히 귀가해 사랑하는 사람들의 품에 안길 권리 말이다.
국민의 안전할 권리는 국가와 정부가 나서서 지켜야 한다. 다만, 우리 일상 속에서 서로의 안전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다.
사람이 붐비는 지하철은 미련 없이 보내주고 다음 열차를 탈 것. 에스컬레이터나 엘레베이터 앞 등 좁은 공간에선 한 줄로 서서 질서 있게 기다릴 것. 사람이 붐비는 상황에 처하더라도 주위를 살펴 불편하거나 위태로워 보이는 사람은 없는지 파악할 것.
우린 안전할 수 있다. 바꿔 나갈 수 있다. 느리지만 천천히, 서툴지만 반듯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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