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바다 위 붉은 치마 두른 ‘산상의 호수’
전북 무주는 ‘무성할 무(茂)’에 ‘붉을 주(朱)’를 쓴다. 숲이 무성하고, 붉다는 의미다. 무주하면 가장 먼저 덕유산이 떠오르지만, ‘무성하게 붉은 곳’은 덕유산 북쪽 ‘붉은 치마를 두른 산’ 적상산(赤裳山)에 더 어울린다.
적상산은 덕유산 국립공원에 속해 있지만 능선이 맞닿아 있지 않아 홀로 서 있는 모양새다. 곳곳에 깎아지른 암벽을 품고 있어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정상이 해발 1034m여서 힘든 산행을 해야 할 것 같지만, 도로를 따라 해발 850m에 있는 안국사까지 승용차로 갈 수 있어 발품을 거의 팔지 않고도 ‘황송한’ 풍경을 맞이할 수 있다. 안국사에서 적상산 주봉인 향로봉과 기봉까지는 1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다.
북창마을에서 약 9㎞ 꼬불꼬불 산악도로를 오른다. 길가엔 붉은색 단풍나무와 샛노란 빛의 은행나무와 주황색 신갈나무 등이 어우러져 절정의 만산홍엽(滿山紅葉)이다. 구절양장 같은 길을 올라 ‘산상의 인공 호수’ 적상호에 닿는다. 무주 양수발전소 상부 저수지다. 이곳의 물을 산 아래 하부 저수지인 ‘무주호’로 보내 전기를 만든다. 전기가 남는 밤에 물을 퍼 올려 두었다가 전기수요가 많은 시간에 떨어뜨려 발전한다.
호수 주변을 붉은 단풍이 환상의 띠를 이룬다. 그 길 끝에 적상산전망대가 우뚝하다. 무주 양수발전소의 수압을 조절해주는 조압수조(調壓水槽)다. 계단을 둘러 꼭대기에 전망대를 마련했다. 수조 주위를 빙글빙글 돌아서 오른다. 전망대에 오르면 사방으로 파노라마 풍광이 펼쳐진다. 많은 산과 무주호 등을 새의 시선으로 내려다 볼 수 있다. 멀리 덕유산 향적봉도 시야에 들어온다. 이른 아침에 오르면 낮은 산봉우리들과 운해가 발아래 깔려 있는 ‘한 폭의 수채화’ 경치를 마주한다. ‘선계(仙界)’란 말이 저절로 나온다.
되돌아 나와 안국사로 오르는 길 입구에서 목조 건물을 만난다.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사고(史庫)다. 조선시대 임진왜란으로 전주 사고의 조선왕조실록만 남게 되자 실록을 다시 편찬해 한양 춘추관, 마니산, 태백산, 묘향산, 오대산에 보관했다. 이 가운데 묘향산은 멀고 외진 곳이어서 관리 소홀 등으로 분실 우려가 커지자 광해군 때 실록을 적상산으로 옮겼다. 일제강점기 때 적상산 사고의 실록이 이전되면서 빈 건물만 남아 있었다. 호수 중앙에 있던 사고는 소실돼 주춧돌만 남아 있었다.
안국사에서 등산로를 따라 20분 정도 산길을 걸으면 저절로 감탄사를 내게 하는 풍광을 펼쳐놓는 곳이 있다. 안렴대(按廉臺)다. 고려시대 거란이 공격하자 지방관직인 안렴사가 군사들을 이끌고 이곳에 진을 치고 막은 데서 이름을 얻었다. 층암절벽 위에 위치한 안렴대 주변은 아찔한 낭떠러지다. 쇠난간이 설치돼 있지만 오금을 저리게 한다. 아래로 통영대전고속도로와 19번 국도가 시원스럽게 달린다.
안국사 바로 앞은 적상산성이다. 고려시대 최영 장군이 공민왕에게 건의해 축조한 산성이라고 한다. 거란 침입 당시 인근 주민들이 화를 면한 곳이다. 산성을 따라 서문 부근에 이르면 절벽에 바위가 우뚝 솟아 있다. 최영 장군이 적상산을 오르다가 길이 막혀 장도(長刀)를 내리쳐 길을 내고 올라갔다는 전설이 서려 있는 ‘장도바위’다.
가볍게 걷기엔 무주 구천동 계곡도 좋다. 계곡의 비경을 가까이서 음미하도록 구천동어사길이 조성돼 있다. 어사 박문수가 암행어사 시절 오갔다는 사연을 담은 길이다. 월하탄 지나 탐방지원센터에 이르면 어사길의 본격적인 시작이다. 길은 계곡 물줄기와 나란히 지난다. 거친 숲길에는 나무데크를 놓았고, 탄성을 자아내는 절경 옆에 잠시 숨을 고를 쉼터를 마련했다.
인월담, 비파담, 다연대, 구월담, 금포탄, 안심대 등 구천동의 곡류, 폭포, 맑은 소(沼)가 숨바꼭질하듯 이어진다. 청아한 물소리도 함께 한다. 어사길의 예전 종착지인 안심대부터 백련사까지 새롭게 조성된 길은 다소 좁고 가파르다. 어사길로 오른 뒤 넓고 편안한 구천동 기존 탐방로로 내려오는 것도 방법이다.
발전소 터널 리모델링한 머루와인동굴
금강 물고기 어죽·매운탕·다슬기탕…
적상호로 가려면 통영대전고속도로 무주나들목에서 빠져 19번 국도를 타고 무주읍내를 지난 뒤 안국사 방향 727번 지방도를 타면 된다.
적상산의 서측 서창마을에서 등산을 해도 된다. 약 3.6㎞의 가파른 산길이다. 적상산 최고봉인 기봉(1034m)은 출입할 수 없다. 적상산 중턱에 위치한 무주 머루와인동굴은 무주 양수발전소 작업터널을 리모델링해 무주 특산물인 산머루 와인의 숙성·저장·판매한다.
구천동 관광특구에는 대규모 무료 주차장이 마련돼 있다. 어사길 입구에서 백련사까지는 4.9㎞로, 2시간 40분가량 걸린다.
무주의 먹거리로는 금강에서 잡은 물고기로 끓여낸 어죽이 꼽힌다. 민물고기매운탕과 다슬기탕도 별미다. 구천동관광특구에는 식당들이 많다. 숙소로 가족 등 여럿이 함께라면 무주리조트가 좋다. 어사길 입구에 덕유대야영장이 조성돼 있다.
무주=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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