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과 분노를 표현해야 상처는 치료된다

추성권 2022. 11. 2.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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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를 겪으며, 이태원을 바라보며 우리가 해야될 진정한 위로와 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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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성권 기자]

2014년 4월 16일 아침, 서울에서 혼자 유학중인 고등학생 큰 딸이 수학여행을 가는 날이었다. 수학여행 목적지는 제주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기 2주 전 큰 딸이 다니고 있는 고등학교에서 수학여행 교통편이 여러 형편상 배에서 비행기로 바뀌었단 내용의 가정 통신문을 받았다. 당시 큰 딸은 엄마 아빠 품을 떠나 서울에 있는 예술고등학교에 유학 중이었다.

그리고 2주 후 아침, 약에 취해(나는 복합부위통증 증후군(CRPS) 환자로 마약성 진통제 등을 복용하고 있었다) 비몽사몽 잠들어 있는 나에게 노모가 놀란 목소리로 전화를 하셨다. "야야 큰일 났다. 제주도 가는 배가 뒤집혔단다. 오늘 선유(큰 딸) 제주도 수학여행 가는날 아니냐? 확인좀 해봐라." 순간 내 머릿 속에서 비행기로 간다는 통신문 내용은 사라졌고,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떨리는 손으로 TV를 켰다. 보여지는 화면은 비스듬히 누워있는 세월호의 모습과 헤드라인 뉴스...

숨을 몰아쉬고 출근해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선유..." 아내는 크게 동요하지 않은 목소리다. "응. 왜?" "오늘 수학여행 간다고 안 그랬어?" "가지. 뉴스봤구나? 선유는 비행기로 간다고 그랬잖아." 그 짧은 시간은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두려웠고, 지금도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시간이다.
 
 1일 오후 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국화와 메모가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다.
ⓒ 이희훈
 
그리고 8년 6개월 후. 지난 10월 29일 토요일 저녁,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시간에 뉴스를 접하고 걱정이 되어 큰딸(선유)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카톡을 남겼다. 읽지를 않았다. 8년 전 그날 트라우마로 남았던 상흔이 그대로 찢어져 피가 솟구치는 듯했다. 아내도, 동생도 눈물이 글썽거리고 전화에서 손을 뗄 수 없었다.

잠시 후 큰딸에게서 카톡이 왔다. '친구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친구들과 함께 장례식장 조문가요' 또 한 번의 두려움과 또 한 번의 안도 그리고 몰려오는 회한과 자괴감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까지 무겁게 나를 짖누른다.

"가만히 있으라." "잊지 않겠습니다." 이 두 줄의 문장은 현재를 살아가며 그 때를 기억하는 대한민국 국민에게 지울 수 없는 아픔일 것이다. 하지만 이 말들은 또 다시 우리 사회를 덮쳤고 더 크게, 더 깊게 우리의 가슴을 난도질 하기 시작 한다.

여전히 책임자가 없다. 여전히 막말이 쏟아지고 비난이 퍼부어 진다. 오히려 8년 전보다 더 잔인하게, 더 치밀하게 권력과 힘을 이용해 희생자와 유가족, 아니 자기편이 아닌 전 국민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으로 난도질을 한다. 

그리고 권력의 정점에 있는 자들은 자기들 맘대로 애도기간과 애도 방법을 정해놓고 애도만 하라고 겁박한다. 사람이 이렇게 큰 일을 당하면 온갖 감정이 다 생긴다. 그런데 애도라는 슬픈 감정만 허용하겠다니... 어찌 사람의 감정을 하나만 표현하라고 하는 걸까?

슬픔은 분노를 동반하고 후회와 고통, 상처 그리고 무서운 집단 트라우마와 우울증을 유발한다. 그 어떤 감정도 억눌려서는 안 된다. 자유롭게, 자연스럽게 남김없이 뱉어내야 후유증이 없다.

희생자와 유가족의 고통을 누가 다 알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애도하고 슬픔을 같이 하는 거다. 그리고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반드시 분노도 같이 표현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성적 분노와 감정적 분노 모두 다 함께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집단 우울증과 집단트라우마의 또 다른 피해자가 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20대 30대의 자살 희생자들이 2017년대비 2021년 최대 폭으로 상승했다. 대한민국의 사회가 이 지경까지 와 있는 여러 요인이 있겠으나 지금 이태원 참사를 보면서, 과거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그리고 코로나 시간을 지나면서 간과해서는 안될 분명한 요인 중 하나는 이런 사회적 참사에서 비롯된 트라우마가 집단 우울증 유발 요인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올바른 대처는 충분히 슬퍼하고 충분히 분노하며 책임소재를 반드시 묻고 책임을 지게 하고 재발 방지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분노하지 말라고 종용하는 세력은 국민들을 정신질환에 걸리게 하는, 그야말로 암덩어리와 같은 존재이다.

슬퍼 하시라! 위로 하시라! 서로를 꼭껴안고 쓰다듬어 주시라! 그리고 분노 하시라! 이것이 우리를 낫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자 지금 할 일이다. 

* 삼가 희생자들의 명복과 부상자들의 회복을 빌며, 유가족들에게 깊은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상처받은 모든 대한민국 시민들에게 같은 위로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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