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거품주…공룡 IB·금융당국 ‘합작품’
-지금 공모 시장은 ‘불신 시대’
2020년 3월 코로나 바이러스의 본격 확산 이후 증시에 입성했던 공모 ‘대어’ 주가가 줄줄이 곤두박질치는 중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2020년 코로나 확산 이후 증시에 상장한 종목은 모두 186개다. 이 가운데 10월 26일 종가 기준 공모가를 밑도는 종목이 71%(132개)다. 이들 종목의 공모가 대비 평균 하락률은 40%를 훌쩍 웃돈다. 2020년 3월 이후 증시에 입성한 10개 종목 중 7개 주가가 공모가 대비 40% 이상 하락했다는 의미다. 앞으로 미국 기준금리 인상이 수차례 남았고 경기 침체가 본격화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낙폭은 더 깊어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조 단위 시가총액 공모주를 일컫는 ‘대어’의 성적표는 더욱 처참하다.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 등은 공모가 대비 60% 이상 하락했고 SK아이이테크놀로지(SK IET)도 50%대 하락률을 기록 중이다. 손실률은 공모가를 기준으로 한 것이므로 상장 이후 시장가를 기준으로 잡으면 낙폭은 훨씬 더 크다.
상황이 이렇자 투자자 시선은 상장 주관사단을 향한다. 시장 일각에서는 초대형 투자은행(IB)을 비롯한 주관사단의 평판 시장을 별도로 조성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초대형 IB, 공모가 거품 자초
▷밸류에이션 정당성 상실
기업공개(IPO)의 본질적인 기능은 상장 예정 기업 적정 가치가 얼마인지 찾아내는 가격 발견이다. 증시 상장을 원하는 기업은 가장 먼저 증권사 IB를 찾아 IPO를 노크한다. 전문 투자자를 찾아 ‘우리 기업이 얼마짜리인지 확인하자’는 것이다. 상장 주관 증권사가 자본 시장에서 맡은 임무는 막중하다. 증권사는 이들 기업가치를 산정하기 위해 상대비교법 등의 밸류에이션 기법을 동원한다. 비즈니스 모델, 산업의 유사성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동종 기업군을 추린 뒤 이를 잣대로 IPO 예정 기업가치를 매긴다. 물론 공모가를 IB들이 전적으로 정하는 것은 아니다. 공모주는 개인 투자자 청약에 앞서 기관 투자자를 대상으로 수요예측을 실시한다. 수요예측은 ‘전문 투자자 분들이 오셔서 적정한 가격인지 판단해주십시오’라고 묻는 과정으로 보면 된다. 수요예측에서 고평가된 공모가가 다소 교정되기도 하지만, 수요예측에 앞서 공모가의 상하단 범위를 정하므로 IB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작금의 ‘대어’ 공모주 폭락 사태에 비춰, 주관 증권사가 ‘적정 가치 발견’이 아니라 ‘덩치 키우기’에만 혈안이 됐다는 비판이 비등하다. 합리적인 밸류에이션(가치 평가)은 매수, 매도 등 시장을 작동하게끔 하는 의사 결정의 근간을 이룬다. 가령, 주가가 특정 수준까지 급락 혹은 급등하면 시장에서는 ‘내재 가치를 고려했을 때 이 정도 주가 하락 혹은 상승은 지나치다’는 인식이 확산한다. 즉, 투자 의사 결정을 내릴 때 바로미터로 작동하는 것이 밸류에이션이다. 그러나 밸류에이션 기능은 시장 참여자로부터 고른 정당성을 획득했을 때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카카오그룹주처럼 주가가 고점 대비 70~80% 가까이 하락해도 매수세가 붙지 않는 건 전체 시장 리스크를 감안해도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라며 “결국 IPO 당시 밸류에이션의 정당성을 상실했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고무줄’ 밸류에이션
▷계속 기업 전제 외면
애당초 제대로 된 ‘프라이싱’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은 상장 당시부터 불거졌다.
무엇보다 적절한 동종 기업이 선정됐는지부터 의구심이 제기됐다. 증권사에서 기업가치를 평가하는 산식은 업종마다 다르지만 카카오뱅크를 예로 들면 이렇다. 카카오뱅크는 금융 업종이므로 자기자본에 주가순자산비율(PBR)을 곱해 기업가치를 계산한다. 금융 업종은 투자자로부터 조달한 부채를 활용해 자기자본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용하는지가 기업가치의 핵심이므로 PBR 밸류에이션을 활용한다. 결국 PBR은 은행 순자산(자기자본)의 시장 가치를 보여주므로 자기자본이익률(ROE)과 상관관계가 높다. 자기자본과 ROE는 정해져 있으므로 유사 기업을 어떤 기업으로 구성해 PBR 배수를 적용하느냐에 따라 기업가치는 달라진다.
통상 동종 기업을 판별하려면 비즈니스 모델이 유사하다는 전제 아래 성장 단계가 비슷한지부터 재무구조가 순이익에 미치는 영향과 규제 환경까지 여러 요인을 두루 살핀다. 그럼에도 유사 기업 선별 기준에는 다분히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된다. 가령, 카카오뱅크의 비교 회사로는 미국 소매여신 플랫폼 로켓컴퍼니(Rocket Company), 브라질 금융 기술 회사 패그세구로(Pagseguro Digital), 러시아 디지털 은행 틴코프의 모회사 TCS그룹홀딩스, 스웨덴 디지털 금융 플랫폼 업체 노르드넷(Nordnet AB Publ) 등이 선정됐다. 대표 상장 주관사인 KB·CS증권은 이들 기업의 평균 PBR을 근거로 일정 수준 할인율을 적용한 뒤 카카오뱅크에는 PBR 3.3배를 부여했다. 그러나 이들 비교 기업의 ROE와 카카오뱅크는 비교 불가였다는 점에서 ‘PBR 3.3배’가 적정 배수였는지를 두고 지금도 논란이 드세다.
카카오뱅크 상장 당시 매도 리포트를 냈던 김인 BNK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4개 비교 기업의 2020년 평균 ROE는 30.7%로 평균 PBR 역시 7.3배로 프리미엄을 받았던 것”이라며 “당시 카카오뱅크 ROE는 4%였고 규제 강도가 높은 국내 금융업 특성상 향후에도 10%를 웃도는 ROE 달성은 매우 힘들 것이라는 점에서 3배를 웃도는 PBR 선정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헤지펀드 업계 관계자는 “시중은행의 소매금융 사업부 가치를 통상 5조원에서 6조원 사이로 본다”며 “냉정하게 말해, 카카오뱅크 역시 그 이상 가치를 부여하기는 힘든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두 번째 논란은 기업가치 산정의 근거가 되는 이익(주당순이익·EPS)의 적절성이다. 진단키트 회사 SD바이오센서를 예로 들자. 이 회사와 주관 증권사인 NH투자증권은 기업가치를 산정하면서 2020년 실적을 적용한 상대 가치 산출 방법을 택했다. 다시 말해, 2020년 실적을 근거로 EPS를 산출하고 여기에 동종 기업의 주가수익비율(PER) 배수를 곱해 기업가치를 매겼다. 문제는 이 회사의 2020년 실적이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었다는 데 있다. 2020년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최초 발견된 뒤 연중 내내 ‘팬데믹’이라 불릴 정도로 맹위를 떨쳤다.
기업가치를 산정할 때는 계속 기업을 전제로 이익의 지속 가능성을 따져보는 것이 기본이다. 이 회사는 2019년 매출 720억원, 영업이익 15억원에 불과했지만 코로나가 확산한 2020년 매출 1조6800억원, 영업이익 7300억원으로 급증했다. 최근에는 코로나 확진자 수 급감으로 검사 수요가 대폭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실제 이 회사의 올해 2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3481억원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12% 줄었다. 이 때문에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글로벌 이벤트가 발생했던 해의 당기순이익을 근거로 기업가치를 산출한 것은 이익의 지속 가능성을 지나치게 낙관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개인 투자자가 많이 참여하는 시장일수록 적정 공모가 형성이 매우 중요하다”며 “건전한 기업공개 시장 조성을 위해서는 공모가의 적정성, 투자자 보호를 위한 주관사 역할, 공모주의 장기 성과 등이 강화돼야 한다. 이를 위해 IPO 주관 업무에 대한 평판 시장을 별도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허수 잔뜩 낀 수요예측
▷가격 발견 기능 무력화
수요예측 또한 가격 발견 기능이 무력화됐다는 비판이 비등하다. 통계 몇 개만 봐도 대번에 알 수 있다. 가령, 지난해 상장한 공모주 수요예측에서 희망 공모가 상단에 베팅한 수량 비중은 대부분 90%를 웃돌았다. 메타버스 관련주였던 맥스트는 아예 공모가 상단을 웃도는 가격을 써낸 수량이 94%였다.
수요예측이 제 기능을 못한 원인은 여러 가지로 지목된다.
우선, ‘허수’ 기관 투자자 급증이다. 실제 카카오뱅크의 경우 수요예측에 참여한 기관 투자자 수가 1667곳, 수요예측 규모는 2700조원에 달했다. 이런 숫자를 보노라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2700조원이라는 수요예측 규모부터 의아하다. 국내 운용사 자산을 모두 합쳐도 2700조원에 턱없이 못 미친다. 이런 기현상은 유동성 랠리에 개인 투자자들이 달려들면서 공모주가 ‘따상’ 행진을 잇자 종합 운용사는 물론, 사모 전문 운용사와 벤처캐피털(VC), 소규모 자문사까지 수요예측에 달려든 결과다.
기관 투자자는 개인과 달리 수요예측 때 증거금을 내지 않는다. 주문을 넣은 뒤 배정받는 물량만큼만 입금한다. 개인 투자자 사이에서 공모주 투자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허수로라도 가격 불문 베팅한 뒤 1주라도 많이 받으려는 심산에서 이 같은 기현상이 빚어진 것이다.
실제 운용업계는 공모주 펀드를 제외하고는 수수료 수입이 신통찮다. 공모주 펀드 의존도는 사모 전문 운용사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사모 전문 운용사의 주력 상품은 헤지펀드지만 잇단 금융 사고로 투자자 신뢰를 잃었다. 은행, 증권사 등 주요 판매사에서 개인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헤지펀드 마케팅은 여전히 쉽지 않다. 이런 이유로 소규모 사모 전문 운용사는 공모주 펀드를 마케팅을 위한 일종의 ‘미끼 상품’으로 깔고 여기에서 번 수수료 수입으로 고정비를 충당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수요예측 중심을 잡아줄 주요 운용사의 존재감이 크게 떨어진 것도 주요 원인이다. 최근 수년간 미래에셋과 삼성자산, 한국투자신탁운용 등 국내 주요 자산운용사는 사실상 공모주 투자에서 손을 뗐다. 주식형 펀드 시장이 침체를 겪으면서 운용업계에서는 설정액 1조원 이상 ‘공룡 펀드’가 사라진 지 오래다. 이들 운용사는 지수 편입 등 ‘패시브 이벤트’ 가능성이 높은 종목에만 선별적으로 참여한다.
이런 이유로, 국내 대표 운용사들이 주식형 공모펀드가 아니라 패시브 상품인 ETF에만 주력하는 것을 달갑지 않게 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대형 운용사는 공모주 펀드를 주력으로 운용하거나 전담 인력을 두는 경우도 거의 없는 실정”이라며 “국내 대표 운용사답게 ETF뿐 아니라 다양한 액티브 상품을 발굴해 국내 증시 체질을 개선하는 데도 적극 나서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중심 잃은 금융당국
▷개인 늘리고 기관 물량 줄여
금융당국도 공모주 ‘거품’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당국의 오판은 크게 두 가지 대목에서 비롯됐다.
첫째는 2015년부터다. 당시 당국은 운용사 라이선스를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바꿨고 투자 자문사의 공모주 수요예측 참여를 허용했다. 이들이 수요예측에 불나방처럼 달려들면서 공모주 시장은 ‘가격 발견’ 보다는 ‘물량 확보’ 경쟁으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들끓는다. 주요 종합 운용사들이 공모주 시장에 등을 돌린 것도 이때를 즈음해서라는 게 금융투자업계 시각이다. 운용업계 관계자는 “공모주 시장이 ‘단타’ 놀이터로 전락하면서 가격 변동성이 극심해졌다”며 “공모가 밴드가 최저부터 상단 초과 등 극단적인 분포를 갖게 된 것도 당국의 실기 탓”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금융당국이 수요예측에서 기관 투자자 배정을 이전보다 줄이자 공모주 시장은 더욱 왜곡됐다는 진단이다. 금융당국은 2020년 11월 ‘IPO 공모주 일반청약자 참여 기회 확대 방안’을 발표하면서 기관 배정 물량을 줄이고 개인 배정 물량을 확대했다. 제도 변경으로 기관 투자자 배정은 60%에서 55%로 줄었다. 이 가운데 하이일드펀드 5%, 코스닥벤처펀드 30% 등을 빼고 나면 운용사, 연기금 등 일반 기관 투자자 몫은 20%에 불과했다. 이는 개인 투자자 배정 25%보다도 적다. 미국은 기관 투자자 위주로만 공모주 배정이 이뤄진다. 개인 투자자에게는 기본 배정 물량이 없다. 통상 개인 투자자가 미국 시장에서 공모주 매수를 원한다면 상장 당일 시초가에 매수해야 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당시 공모주 개인 투자자 확대 관련 공청회가 열렸을 때 운용업계에서는 수요예측의 가격 발견 기능이 더욱 저하될 것이라고 적극적으로 반대 의견을 냈으나 묵살됐다”고 귀띔했다. 사모 운용사 사장은 사견을 전제로 “우리 자본 시장은 펀드를 중심으로 발전을 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며 “개인 투자자의 직접 투자를 늘리는 방향은 장기적으로 증시의 가격 변동성만 키울 뿐”이라고 지적했다.
‘프라이싱’ 기능 무력화는 결국 공모주 변동성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미 국내 공모주 시장에서는 이 같은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신규 상장 기업의 공모가 대비 상장일 종가 수익률(2013년부터 2019년 3분기까지)은 같은 날 시장 수익률보다 평균 23% 높게 형성됐다. 반면, 2019년 기준 상장 후 1개월 누적 수익률은 시장 수익률 대비 평균 19%, 3개월 누적 수익률은 시장 수익률 대비 23% 낮았다. 즉, IPO의 가격 발견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기업가치 평가가 비효율적으로 이뤄진 결과라는 게 금융연구원 결론이다.
[배준희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81호 (2022.10.26~2022.11.0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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