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서 독립 ‘신의 한 수’…MRO 혁신 선봉 ‘서브원’
-창립 20주년 맞은 ‘서브원’
고객사 1300여개, 협력사 2만8000여개, 취급 상품 수만 100만여종.
일반 대형마트와 비교해도 약 10배 이상 많은 수준이다.
MRO 전문 업체 서브원 얘기다.
MRO란 기업 운영 자재를 뜻한다. 사무실로 예로 들면 사무실에 쓰는 책상, 의자는 물론 공장 소모품인 베어링, 볼트부터 연구실 실험, 측정 장비까지 모두 조달해주는 업체를 뜻한다.
서브원이 더 대단한 건 사업 규모다. 서브원은 올해 창사 이래 최대 매출인 5조5000억원(2021년 4조9800억원)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일반인에게는 덜 알려졌지만 국내는 물론 아시아 1위 MRO 업체다.
▶서브원 어떤 회사
▷LG 계열사서 공정위 이슈로 독립
애초 서브원은 LG그룹의 MRO 사업 계열사였다. 그런데 정부가 대기업 계열 MRO 회사는 대주주 일감 몰아주기 소지가 높다며 매각하도록 법적으로 못 박았다. 매물로 나온 서브원은 2019년 운용사 어피너티PE가 인수하면서 독립했다. 이후 서브원은 LG그룹 이외 회사까지 영업 대상 업체를 늘렸다. 그 결과 LG그룹에서 독립한 후 매출 규모가 30% 이상 커졌다.
이런 배경에는 경영진 역할이 컸다.
2018년까지 OB맥주에서 수석부사장으로 굵직한 성과를 냈던 김동철 대표가 2019년 서브원의 최고운영책임자(COO)에 발탁됐고 2020년 대표이사 사장을 맡았다. 김 대표는 지난 20여년간 축적해온 방대한 데이터 자산에 MRO업 미래는 물론 서브원의 미래 생존 경쟁력이 달렸다고 판단했다. 2021년부터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을 이끌 전담부서를 구축하고 글로벌 컨설팅사 베인앤컴퍼니 출신 디지털 전환 프로젝트 경험이 풍부한 김상완 상무를 직접 영입해 최고디지털책임자(CDO)로서 전권을 맡기면서 회사는 또 한 번 도약했다.
▶MRO 회사가 왜 디지털 전환?
▷구매 솔루션 제공 회사 ‘업의 본질’ 바꿔
예전 MRO 회사는 각 기업 총무팀이 물건을 주문하면 갖다 주는 형태가 일반적이었다. 일종의 구매대행이다. 올해 20주년을 맞은 서브원은 이 같은 구매 대행 서비스로는 미래가 없다고 봤다. 대신 ‘고객에게 구매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로 ‘업의 본질’을 재정의했다.
기업 고객이 물품만 주문하기 전에 서브원이 먼저 고객이 속한 산업군에서 필요한 물건, 그것도 가격과 품질에서 가장 최적화된 상품을 선제적으로 추천해주는 쪽으로 사업 모델을 추가했다.
예를 들어 A기업이 산하 연구소를 만들려고 한다. 서브원은 B기업 연구소에 시약, 초자류, 측정·분석 장비 등 실험 전문 상품을 납품한 경험을 바탕으로 연구소에 원스톱으로 비교 구매할 수 있게 추천해주는 식이다.
기업 고객이 온라인 쇼핑몰 구매처럼 가격, 스펙을 비교할 수 있는 플랫폼도 구축했다. 최근 선보인 MRO 산업 자재 유통 전문몰인 ‘서브원스토어’다. 서브원스토어는 700여만개 상품 중 시장가격, 거래량, 고객 선호도 등 빅데이터 분석을 토대로 엄선한 대표 상품 8만 가지로 압축해 제공한다. R&D 전문몰(G-lab), 포장재 전문몰 ‘패커원’ 등 전문 상품 코너도 운영, 편리성을 더했다.
▶서브원이 2차전지 사업도?
▷뜨는 산업군에는 과감히 투자
서브원은 신성장동력을 위해 2차전지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얼핏 ‘모르는 분야에 뛰어든 것 아니냐’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서브원이 이 같은 신사업에 발을 걸치게 된 것은 고객 덕분이다. 일반적으로 고객사가 공장을 세우면 MRO 업체는 공정, 설비, 생산 계획에 따라 수만여 가지 원부자재를 준비한다. 서브원은 특히 전기차 배터리 공장 구축, 제조에 있어 각 공정마다 필요한 각종 부자재, 소모성 자재들을 납품했다. 그러다 보니 선제적으로 공급 관리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고 그 와중에 배터리 사업에 직접 뛰어들어도 괜찮겠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
회사 관계자는 “갈수록 불안정해지는 글로벌 공급망 환경에서 안정적인 구매 파트너로 인정받아 현재 글로벌 선도 전기차 배터리 회사의 유럽, 미국 공장에 파트너로 진출해 있다”고 소개했다.
▶해외 사업도 순항
▷중국 법인 매출이 전체 26%
서브원이 매출 5조원 이상 달성하게 된 배경에는 해외 진출 역시 한몫한다. 2005년부터 중국을 시작으로 해외 진출에도 적극 나서 아시아(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미주, 유럽(폴란드, 헝가리)에 법인을 운영 중이다.
특히 2021년 기준 중국 법인 매출은 서브원 전체 연간 매출(2021년 기준 5조원)의 26%(1조3000억여원)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커졌다. 중국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은 물론 세계 1위 초콜릿 식품 기업 마즈(MARS), 존슨앤존슨, 3M 등 글로벌 기업, 중국 현지 기업 등 450여개 고객사를 확보하고 있다. 올해 9월에는 중국의 산업재 MRO 물류 전문 기업 진순심(JSX)과 조인트벤처 설립을 발표해 업계 주목을 받았다. 진순심은 중국 최대 민영 택배물류 회사인 순펑(SF)의 자회사다. 회사 관계자는 “글로벌, 현지 기업도 적극 공략해 글로벌 MRO 톱플레이어로 입지를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 김동철 서브원 대표
“5년 내 7조 매출, 글로벌 톱플레이어 목표”
Q LG그룹 계열사서 독립 후 어떻게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고 발전시켰나.
A 지금의 서브원은 단순 구매대행 서비스 기업이 아니라 글로벌 구매 솔루션 기업으로의 전환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기 위한 디지털 전환 작업은 필수며 전문성과 가격 경쟁력 확보도 중요하다. 상품 전문성 확보를 위해 포장, R&D, 사무용품 등 주요 상품을 카테고리 킬러 콘셉트로 확장하고 있다. 산업 전문성 확보를 위해서는 전기차 배터리, 자동차, 화학, 바이오 산업의 공정 관련 영업 역량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5년 내 7조원 매출, 글로벌 톱플레이어가 목표다.
Q 서브원 디지털 전환의 가시적인 성과는 언제 나타날 것으로 보는가.
A 거래하는 협력사가 3만여개에 이르고, 다루는 연간 상품 수만 100만여건이 넘어간다. 데이터 질을 높이고 적재적소에 활용해낼 줄 알아야만 가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라 판단했다. 이는 단순히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찾아주는 것을 넘어 가격 경쟁력 있는 상품을 다양한 고객 산업군별로 선제적으로 추천하고 제안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서브원스토어’가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Q CEO 부임 후 서브원만의 기업 문화 혁신에 매우 공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안다.
A 기존 구매대행업이라는 평판을 넘어서기 위해 스스로 먼저 업을 재정의해야만 한다. 현재 국제공인구매공급관리전문가(CPSM) 자격 보유자가 340여명으로 업계 최다다. 임직원이 구매 컨설턴트 전문가로 성장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업무의 질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일례로 지난 4년간 고객 상담 채널, 구매, 영업 관리 부문 등에서 대표적인 100여가지 단순 반복 비율 업무 관련 RPA(로봇프로세스자동화)를 도입해 연간 4만시간 이상 단순 반복 업무를 절감했다. 연공서열을 타파한 승진 체계,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 체제 도입, 수평적인 조직문화 구축, 사내 스타트업 공모전과 같은 도전하는 문화도 지속적으로 장려해나가고 있다.
Q 공급망 대란이 여전하다. 기업들의 ESG 경영도 갈수록 강화되고 있는데.
A 원자재 관련해서는 거래 위험 분산을 중요하게 본다. 지난해부터 발생 가능성이 예상되는 원자재 관련 위험 요소를 전부 정리했다. 제품과 지역별로 위험 정도를 분류하고 각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지 비상계획(Contingency Plan)을 수립했다. 거래 기업과 분야, 활동 지역이 다양해질수록 위험 분산 역량도 커지기 때문에 고객 확대와 글로벌 확장이 중요하다. ESG도 중요하다. 일례로 향후 2~3년 내 중국에서 ESG 등의 이유로 조달이 어려운 품목이 나올 수 있어 대체할 곳을 찾고 있다.
[박수호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81호 (2022.10.26~2022.11.0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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