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한 신고에도 '부실대응' 경찰… 국가배상 소송들 살펴보니
[아시아경제 김대현 기자]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경찰의 초동 대응이 부실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국가의 책임을 묻는 손해배상 소송이 잇따라 제기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원은 경찰공무원이 긴급구호 내지 보호조치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았다며 제기된 국가배상 소송들에서 ▲침해된 국민의 법익 또는 국민에게 발생한 손해가 어느 정도 심각하고 절박한 것인지 ▲경찰관이 현장 사정을 예견하고, 결과의 발생을 방지하기 위한 조처를 할 가능성이 있었는지 ▲피해자 측 노력으론 위험 방지·회피가 어려웠는지 등을 고려해 왔다.
경찰의 미흡한 112 신고 대응으로 국가배상 책임이 인정된 사례 중 하나는 2012년 '오원춘 사건'이다. 오원춘은 2012년 4월 수원에서 한 초등학교 앞을 지나가던 피해자를 납치해 살해했다. 피해자는 오원춘이 방심한 틈을 타 경기지방경찰청 생활안전과 112 통합센터에 신고했지만, 경찰 측이 이를 '부부싸움'으로 오인해 출동이 늦어지는 등 미흡한 초동 대처가 이뤄졌다. 유족 측은 국가에 3억6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 사건 2심은 "경찰이 일찍 수색했어도 생존 상태에서 구출될 수 있었다고 장담할 수 없다"며 국가의 배상책임을 2130만원으로 한정했다. 하지만 대법원2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112 신고센터 경찰관들이 출동 경찰관들에게 신고 내용과 심각성을 제대로 전달했다면, 피해자를 생존한 상태에서 구출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국가의 책임 범위를 넓혔다. 파기환송심은 이 같은 취지에 따라 유족 측에 총 7832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이 제대로된 조처 없이 현장을 떠난 경우도 배상 책임이 인정됐다. 2018년 3월23일 저녁 9시쯤 A씨는 강원도의 모 식당에서 혼자 반주를 하고 화장실에서 쓰러졌다. '술 취한 사람이 쓰러져 있다'는 신고에 출동한 인근 지구대 경찰관들은 A씨를 1층 주차장으로 데리고 나왔다. 이후 경찰관들은 A씨가 구체적인 주소를 알려주지 않자, '귀가하라'고 말한 채 떠났다.
이후 경찰관들은 ATM기 부스 안쪽으로 넘어진 A씨를 본 한 시민의 신고에 재차 현장으로 갔다. 경찰관들은 "어떤 내용인지 알고 있으니 귀가하셔도 된다"고 신고자에게 말했다. 또한 순찰차 창문을 내려 A씨에게 "괜찮아요?"라고 묻고 돌아갔다. 계속 쓰러져 있던 A씨는 이튿날 오전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외상성 두개골절 등으로 사망했다.
A씨의 배우자와 두 자녀 등 유족들은 "경찰이 막연한 판단으로, 구호·보호 조치 없이 A씨를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며 국가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재판장 김정곤 부장판사)는 국가가 유족 측에 총 1억여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경찰은 관계 법령으로 부여된 여러 권한을 적절히 행사함으로써, 범죄 수사뿐만 아니라 범죄의 예방 및 공공의 안녕과 질서유지를 위해 제반 상황에 대응한 필요한 조처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최초 출동 시 확인했다고 두 번째 출동 때 순찰차 안에서 창문만 내린 채 상태를 확인할 게 아니었다"며 경찰관들이 A씨의 건강상태 등을 살피고 경찰관서에 데려가는 등 적절한 보호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고 봤다.
아울러 "강원도는 3월 하순경에도 야간 기온이 상당히 낮아진다. 만취한 A씨에겐 혼자 힘만으로 방지하기 어려운 생명·신체에 대한 중대한 위험이 존재했다"며 "사고발생 위험을 예견한 일반인들로부터 두 차례나 신고를 받은 경찰관들로서도 신고내용 및 당시 상태 등을 통해 그 위험발생을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고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윤희근 경찰청장,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은 사과의 뜻을 밝혔다. 경찰청은 이날 관할 경찰서인 용산경찰서 서장을 대기발령했다.
전날 경찰청이 공개한 112 신고 녹취록엔 지난달 29일 사고 발생 4시간여 전부터 시민들이 신고를 통해 압사 우려를 자세히 설명하며 경찰 출동을 요구한 내용이 담겼다. 또한 경찰이 현장 인파를 적극적으로 통제하지 않은 사실도 드러났다.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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