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어민 강제북송 조사 각하한 인권위…법원, 조목조목 반박 왜 [그법알]
[그법알 사건번호 106] “탈북어민 강제북송 조사 적절치 않다” 인권위 각하, 그 후
문재인 대통령이 재임하던 2019년 11월 2일 한국 정부는 동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상에서 해군이 나포한 북한 선원 2명을 5일 만인 같은 달 7일 북한으로 추방합니다. 이들은 나포 이후 국가정보원 등의 합동 신문조사 과정에서 귀순(歸順) 의사를 밝혔지만, 다른 선원을 살해한 혐의가 발견돼 그 진정성을 인정받지 못하곤 추방 조처된 겁니다. 송환 당시 판문점에서 촬영된 사진·영상에는 이들이 강하게 저항하는 모습이 담겼습니다. 귀순 의사의 진정성 여부 판단은 젖혀두고라도, 적어도 귀북(歸北) 의사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정황이죠. 하지만 한국 정부의 결정으로 탈북어민 2명에 대한 북송이 이뤄집니다.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한변)은 추방 4일 만인 같은 달 11일 국가인권위원회에 ‘탈북어민 2명에 대한 한국 정부의 추방 결정은 헌법·유엔(UN)고문방지협약·북한이탈주민법 등에 반(反)하는 인권침해’라고 주장하며 이에 관해 문 전 대통령, 이낙연 전 국무총리, 정의용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 서훈 전 국정원장 등을 조사해달라는 진정서를 냅니다. 인권위는 이 사건에 대한 검토·조사에 착수, 진정 1년 12일 만인 2020년 11월 23일 ‘위원회가 조사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진정을 각하합니다.
인권위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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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해자들이 이미 북한으로 추방돼 이 사건 진정 관련 조사를 원하는지에 관한 피해자들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다.
·피해자들이 이미 북한으로 추방된 상황에서 사건 경위를 파악하는 데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비사법적 구제기관인 인권위의 조사 권한 한계상 정보접근에 있어 상당한 제약이 있다.
·피해자들에 대한 실질적인 권리 구제(송환중지 또는 원상회복, 손해배상 권고 등)가 애당초 가능하지 않아 ‘인권위가 실효적 역할을 하기 힘든 경우’에 해당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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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법률은
·인권위법 30조 1항 “(…)인권침해나 차별행위를 당한 사람(피해자) 또는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나 단체는 그 내용을 진정할 수 있다.”
·인권위법 32조 1항 7호 “진정이 위원회가 조사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인정되는 경우 그 진정을 각하할 수 있다.”
여기서 질문
·진정 사건에 대해 ‘인권위가 조사하는 게 적절치 않다’고 판단하는 건 인권위의 재량 아닌가요.
·북송된 어민들의 인권침해에 관한 의사를 확인할 길이 없는데, 그들에 대한 인권침해 여부 조사를 하는 게 정당한가요.
·북송된 어민들은 이미 추방됐는데, 인권위가 할 수 있는 구제 조치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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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판단은
1심 재판부인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부장 이상훈)는 지난 3월 10일 인권위의 각하 결정을 취소하며 한변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인권위는 불복해 항소했지만,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등법원 행정8-2부(부장 신종오·신용호·이완희)도 1심 판결을 인용하며 인권위의 항소를 기각했죠. 1, 2심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인권위의 각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인권위법 32조 1항 7호가 정한 각하 사유에 관해 “인권위가 발간한 인권위법 해설집을 통해 보더라도 포괄적인 판단 재량권이 부여된 것이어서 매우 신중하게 행사돼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며 신중한 적용을 강조했습니다. “다른 각하사유가 진정의 주체·내용·방식·이익 및 다른 기관과의 충돌 등 상당히 구체적으로 규정된 점을 고려하면, 적법하게 신청된 진정사건을 임의로 가려서 처리하는 것과 다름없는 재량이 인권위에 부여돼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죠.
그러면서 “32조 1항 7호의 각하사유는 ‘보다 직접적·효과적인 다른 구제수단이 법령상 보장돼 있는 경우’ 등 객관적 사유로 제한해 해석해야 한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며 “단순한 사실조사의 어려움이나 진정사건의 정치적 성격에 따른 판단의 곤란함 등을 이유로 진정을 각하하는 것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허용될 수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인권위가 과거 한국 정부의 이라크 전쟁 참전 결정,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서도 의견을 표명한 적이 있다는 점도 함께 꼬집었죠.
항소심 재판부는 탈북어민의 의사를 확인하는 건 이 진정사건 조사의 필수요건이 아니라는 점을 추가 지적했는데요. 재판부는 “인권침해에 가장 취약한 자(者)들은 진정 절차와 같은 인권보호제도에 호소할 수 없는 입장인 경우(당사자 실종·사망, 외부와 연락이 두절된 구금 상태 등)가 다수 있다. 그래서 인권위법은 피해자가 아닌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나 단체’도 인권침해·차별행위를 진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고, 진정시 피해자의 동의를 얻을 필요도 없다”며 “피해자들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다는 건 이 사건 진정을 각하할 사유에 해당한다고 봐선 안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만약 이 사건 피해자인 탈북어민이 “인권위 조사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북한 언론 등을 통해 밝힌다면 인권위법 32조 1항 3호에 따른 각하사유가 될 순 있습니다.
법원은 이 사건에 관해 인권위가 할 수 있는 실효적 역할이 적지 않다고 보기도 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진술을 청취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 인권위법은 인권위에 포괄적이고 강력한 사실 조사 권한을 부여하고 있고 관계 국가기관에 대해서도 원칙적으로 이에 협조해야 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며 “실제 이 사건과 관련해서도 진정의 본안 판단에 나아가기에 충분한 정도의 자료수집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도 “피해자들에 대한 송환중지 또는 원상회복 등의 권고가 가능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인권위는 인권침해의 유형, 판단 기준 및 그 예방 조치 등에 관한 지침의 제시 및 권고 등을 업무 범위로 하고 있다”며 “2008년 해상 표류 중이던 북한 선박에 있던 주민 22명 모두가 판문점을 통해 북송된 사건에 관해서도 인권위가 국정원장과 통일부 장관에게 구제조치 등 권고를 한 사실이 있는 점에 비춰 보면 ‘인권위가 실효적 역할을 하기 힘든 경우’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은 결국 검찰 수사와 향후 재판으로 밝혀질 것으로 보입니다. 인권위에 제기된 진정사건과 별개로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3부(부장 이준범)가 탈북어민 강제북송 과정에서 이뤄진 문재인 정부의 의사결정 과정이 적법했는지 수사 중이기 때문입니다. 수사팀은 지난 8월 대통령기록관 압수수색에 이어 지난달 19일엔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을 소환해 조사했습니다.
■ 그법알
「 ‘그 법’을 콕 집어 알려드립니다. 어려워서 다가가기 힘든 법률 세상을 우리 생활 주변의 사건 이야기로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함께 고민해 볼만한 법적 쟁점과 사회 변화로 달라지는 새로운 법률 해석도 발 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
」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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