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핵잠·전투기 아랑곳않고 쐈다…北 휴전 이후 초유의 도발
남북이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사이에 두고 미사일을 주고받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북한이 2일 아침 NLL 남쪽 해상에 탄도미사일을 쏘며 도발하자, F-15K 등 공군 전투기들이 출격해 공대지 미사일 3발로 응수하면서다.
이번 사태는 F-35 스텔스 전투기 등 한ㆍ미 군용기 240여대가 동원된 연합공중훈련(비질런트 스톰·Vigilant Storm)이 한창인 가운데 일어났다. 사실상 영해나 다름없는 NLL 이남 해상에 대한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휴전 이후 처음이다.
이 때문에 군 당국도 대응 강도를 높여 NLL 이북 공해상으로 첫 실사격을 했다. 군 당국은 이날 북한의 추가 도발 움직임이 포착돼 군 경계태세를 2급으로 올리는 등 총력 감시에 들어간 상태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은 열 곳의 각기 다른 장소에서 동시다발로 미사일 도발에 나섰다. 오전 6시 51분쯤 평안북도 정주와 피현 일대에서 서해상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SRBM) 4발을 쏜 뒤, 오전 8시 51분부터 강원도 원산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SRBM 3발을 또 발사했다.
이어 곧바로 오전 9시 12분부터 오후 1시 55분까지 다시 함경남도 낙원·정평·신포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평안남도 온천·화진리와 황해남도 과일 일대에서 서해상으로 SRBM과 지대공 미사일 등 10여발을 섞어 쐈다.
이와 별도로 이날 오후 1시 27분부터 북측 강원도 고성군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NLL 이북 해상완충구역에 100여발의 포사격을 한 것으로도 포착됐다. 이에 대해 군 당국은 "명백한 9·19 남북 군사합의 위반"이라고 밝혔다.
이후로도 북한은 이날 동·서해로 미사일 발사를 계속 했다. 합참에 따르면 오후 4시 30분쯤부터 40여분간 함경남도 선덕·신포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평안남도 과일·온천 일대에서 서해상으로 지대공 미사일로 추정되는 미사일 6발을 추가로 쐈다. 군 소식통은 "이날 낮에 미사일을 총 25발 정도 발사한 것 같다"며 "평소와 다르게 오늘 지대공 미사일 발사 수가 많은 것은 연합공중훈련을 의식해서인 것 같다"고 말했다.
울릉도에 '공습경보' 발령
특히 북한이 동해로 쏜 미사일 중 한 발이 울릉도 방향으로 발사되면서 한때 울릉군 전역에 공습경보가 발령됐다. 군 관계자는 “(울릉도에 대한 공습경보는) 확인해봐야겠으나 기억하기로는 과거에 없었다”고 밝혔다. 군은 이날 오후 2시에 공습경보를 해제하고 경계경보로 경계수위를 낮췄다. 경계경보는 오후 10시에 해제됐다.
한ㆍ미 군 당국은 울릉도를 향해 쏜 미사일이 NLL 이남 26㎞ 해상에 떨어진 것으로 파악했다. 강원도 속초에서 동쪽으로 57㎞, 울릉도에선 서북쪽으로 167㎞ 떨어진 곳이다. 사실상 속초 앞바다나 다름없는 해상을 목표로 삼아 보란 듯이 미사일을 발사한 것이다. 동해로 쏜 나머지 두 발은 NLL을 넘진 않았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영해(12해리)는 아니지만, 관세ㆍ재정ㆍ출입국관리 등 국가 통제권이 미치는 접속수역(contiguous zoneㆍ24해리) 바로 앞에 미사일을 쐈다는 점에서 도발 수위를 극대화했다”며 “앞으로 이같은 도발이 반복될 수 있는데, 항공기는 물론 상선ㆍ어선이 지나갈 수 있는 곳이란 점에서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이 미사일은 약 20㎞ 고도로 약 190㎞를 비행한 것으로 탐지됐다. 이와 관련, 미사일 전문가인 권용수 전 국방대 교수는 "과거 사례와 비교해볼 때 변칙 궤도로 비행하면서 정밀 타격이 가능한 KN-23(북한판 이스칸데르) 미사일일 수 있다"며 "북한이 전술핵 탑재가 가능하다고 밝힌 미사일인 만큼 핵무력을 과시하기 위한 발사로 보인다"고 말했다.
속초서 평양 타격…'슬램-ER' 발사
군 당국은 즉각 맞대응에 나섰다. 공군의 F-15KㆍKF-16 전투기들이 출격해 이날 오전 11시 10분쯤부터 1시간 이내에 슬램(SLAM)-ER 등 공대지 미사일 3발을 NLL을 넘겨 발사했다. 이와 관련, 군 관계자는 “북한 미사일 낙탄 지역과 상응한 거리의 공해상에 정밀 사격했다”고 말했다.
사거리가 280㎞에 이르는 슬램-ER은 장거리 정밀 타격이 가능하다. 속초 상공에서 쏴도 평양의 지휘부나 군사시설을 공격할 수 있는 무기인 만큼 “북한 도발에 대한 강력한 경고”라는 풀이가 나온다.
그럼에도 북한이 도발을 자제할지는 불투명하다. 북한은 F-35B 스텔스 전투기 등 미군기 100여대가 국내에서 훈련 중이고, 미 해군의 핵 추진 잠수함인 키 웨스트함(SSN 722)이 현재 부산에 정박 중인 상황에서도 과거와 달리 NLL까지 넘기며 미사일을 쏘는 도발을 감행했다.
북한은 지난 9월 말에도 핵 추진 항공모함과 핵잠수함을 동원한 한ㆍ미 연합훈련, 한ㆍ미ㆍ일 대잠수함전 훈련이 실시된 동해상으로 잇따라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같은 북한의 도발 양상은 그간의 모습과 달라진 것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심각한 도발”이라며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를 갖고 담판에 나선다는 절대 목표를 향해 돌진하겠다는 메시지로, 그만큼 전술핵 능력을 자신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부실한 미사일방어 체계
북한이 상시 도발하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정부와 군 당국은 대응에 고심하고 있다. 이와 관련, 공군은 2일부터 북한 탄도미사일 공격에 대응한 요격미사일 실사격 훈련에 나섰다. 2일엔 패트리엇(PAC-2) 2개 포대와 천궁 4개 포대가 사격훈련을 했고, 오는 9일엔 지난해 전력화한 천궁-Ⅱ(최대 요격고도 15㎞)를 처음 실사격할 예정이다.
이들 요격미사일과 PAC-3는 현재 ‘한국형 3축 체계’ 중 한국형 미사일 방어(KAMD)의 핵심 무기 체계다. 장거리 요격미사일(L-SAM)과 ‘한국형 아이언돔’으로 불리는 장사정포 요격 체계(LAMD)는 각각 2024년과 2029년까지 개발할 예정이다.
다만, 북한의 미사일이 다종화ㆍ첨단화된 상황에서 이같은 방어 체계가 얼마나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당장 눈앞의 위기에 대응할 수 없다는 뜻이다.
권용수 전 교수는 “지역방어(area defense) 수준의 종말단계 다층방어 개념인 현재의 KAMD 전략으로는 섞어 쏘기와 같은 북한의 전방위 복합 위협에 대응할 수 없다”며 “군 당국이 이같은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전략적인 마인드 없이 접근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동시다발적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전구방어(theater defense)가 가능하도록 동맹국과의 적극적인 협력 등 전략적인 대응이 요구된다”고 했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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