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쓰기에 중독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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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미 기자]
요즘 나는 이것에 중독되어 있다. 이것 때문에 밤을 새기도 하고, 밥을 굶기도 한다. 이것을 하는 동안은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다. 그것의 정체는 바로 글쓰기. 지인들을 만나 대화하며 "나 요즘 글쓰기에 빠져있어"라고 하면 다들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같은 질문을 하곤 한다. "게임도, 쇼핑도 아니고 그 재미없는 글쓰기?" 그렇다. 남들에겐 재미없는 글쓰기가 요즘 내겐 최대의 즐거움이다.
글쓰기를 원래부터 좋아한 건 아니었다. 엄마에게 등 떠밀려 꾸역꾸역 일기를 쓰던 초등학교 시절, 문화상품권을 타기 위한 목적으로 들썩이는 엉덩이를 꾹꾹 눌려가며 글을 써냈던 중학교 시절. 그 시절을 살던 나는, 대부분의 친구들처럼 글쓰기라는 말만 들으면 신물이 났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재미없던 글쓰기가 내 인생에 깊숙이 들어와 버렸다. 7월의 어느 주말, 첫째 아이를 데리고 세종에 있는 공룡키즈카페에 간 일이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도서관이 내 시선을 잡아끌었다. 은은한 조명이 비추어 따뜻한 색감의 도서관 내부. 홀린 듯 들어갔지만 정신없이 안을 휘젓고 다니는 아이 탓에 나는 잽싸게 눈앞의 책을 빼들었다. 무심코 몇 페이지를 넘기다 한 구절에서 내 시선이 멈췄다.
"읽지만 말고 기록해 보세요, 쓰다보면 인생이 조금 달라져 있을테니까요."
그 문장이 한동안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깊은 여운을 남겼다. 그 여운을 가슴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모두가 잠든 그날 밤, 휴대폰의 메모장을 열었다. 무엇을 쓸까 하는 고민에 두 엄지가 멈추었다. 주제도 마땅찮았고 글쓰기에 동기 부여가 필요했다. 무작정 네이버에 원고응모라는 주제로 검색을 했다. 맨 상단에 좋은생각 홈페이지가 보였다. 마침 특집을 응모 중이었고, 주제는 '작은성취'. 그 단어에 턱하니 숨이 막혔다. 나랑 맞지 않는 주제였다. 육아 중이었으니 성취하고 있는 게 없었다.
그러다 '작은'이라는 단어에 생각이 트였다. 내가 작게나마 하고 있는 일들을 떠올렸다. 거기서부터 두 엄지는 빠른 템포의 춤을 신나게 추기 시작했다. 단 10여분 만에 몰입하여 글을 완성해냈다. 오랜만에 느낀 성취감에 젖은 채 잠이 들어 구름 위를 걸어다니는 꿈을 꿨다.
다음날, 불어오는 바람결마저 다름을 느낀 채 어제 쓴 글을 차근차근 읽어보았다. 흰 셔츠의 얼룩처럼 고칠점들이 눈에 보였고, 냉장고에 붙어 있는 아들의 칭찬포도알판을 보며 제목도 생각해냈다. 몇 번을 다시 읽고 정원사가 된 양 글에 가위질을 하며 다듬었다. 마침내 나의 첫 글 '나의 소중한 칭찬 포도알'이 완성되었다. 버튼을 누름을 동시에 첫 작품이 세상 밖으로 나가는 순간, 두 아이의 출산 직후의 후련하고도 뭉클한 감정을 다시금 느꼈다.
며칠 후, 경주 여행 중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좋은 생각 편집부입니다"느낌이 왔다. 내 작품이 10월 특집에 실린다는 소식이었다. 내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아 겨우 손으로 두드려 집어넣었다. 얼마나 놀랬는지 그 다음 여행일정이 어땠는지 지금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일은 내 글쓰기에 큰 동력이 되었다. 육아하는 중간 짬나는 시간마다 책을 읽고 글을 써냈다. 그 결과 샘터의 행복일기 당선, 교사독후감 대회에서 대상을 얻는 쾌거를 누렸다.
상을 넘어 뭔가 새로운 도전이 필요했다. 그러다 책에서 본 <오마이뉴스>의 사는이야기란, 마침 에세이 형식의 기사라 허들이 낮은 편이라 생각했고, 그렇게 '인생은 쓰다, 빵은 달다'라는 첫 기사를 송고하기에 이르렀다. 내 글이 송고되고 시민기자라는 타이틀을 얻은 그날,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글쓰기에 특출난 재능이 없던 내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빠져서 하다보니 좋은 결과도 함께 따라왔다. 그 진심이 글에 묻어나서 다른 이에게도 그것이 눈에 보였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쓴 덕분에 실력이 차곡차곡 내 어딘가에 쌓여, 그 전보다 글쓰기가 한결 수월해진 탓도 있었다.
두 아이의 엄마로서 살아가는 내게 글쓰기는 영혼의 단짝이다. 아이들에게 시달리는 육아를 반복하다 번아웃이 올때마다, 폰 메모장은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품어주었다. 감정의 잔해를 두 엄지로 화면에 열심히 토해내면, 어느새 마음이 누그러져 '끙차' 한마디를 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글쓰기를 하며 다른 사람들의 삶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어떤 장소에 갔을 때 누군가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고 행동을 유심히 살피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내게 건네는 따뜻한 배려들을 마음에 새겨넣었다. 그것들을 글로 기록해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었다. 그리고 글로서 그들의 마음에 흘러들어가, 그 마음들을 따뜻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나를 위한 글쓰기에서 누군가를 위한 글쓰기를 하고 싶다는 결심을 했다.
누군가의 마음을 울리는 글을 위해, 독자가 아닌 작가의 마음으로 독서를 하게 되었다. 짬나는 시간마다 도서관에 가서 글쓰기에 관한 책을 잔뜩 대출해 읽었다. 유튜브로 작가들의 글쓰기 조언을 밥 먹듯이 숙지했다. 시간이 부족하니 그것들을 더 꼭꼭 씹어 삼켰다. 한 권의 책을 읽을 때마다, 마른 수건 짜내듯 생각을 쥐어짜내며 썼을 그들의 고통이 생생히 전해져오기도 했다. 전과 다르게 내 시선을 멈추게 하는 문장도 많았다. 그럴 땐 '이 표현은 어떻게 썼을까?' 샘나는 마음으로 작가의 뇌를 염탐하고픈 충동이 일기도 했다. 그 표현을 메모해두었다 내 글에 인용해보기도 했다. 그렇게 모인 표현들은 내 글의 좋은 재료가 되기도 했다.
사실 지금의 나는 좌절할 때가 더 많다. 잘쓴 글과 내 글을 비교하며 한 없이 초라해지고, 이길을 계속 할 수 있을 까 하는 의문이 하루에도 수백번 머릿속을 파고든다. 그때마다 나는 두 명의 독자를 떠올린다. <좋은 생각> 특집편 내 글을 읽고 깊은 공감과 함께 눈시울을 붉혔다는, 유미작가 1호 팬 10개월 도경이엄마, 샘터 행복일기에 자신을 주인공으로 쓴 내 글을 읽고, 일에 자부심을 갖게 된 동시에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가지게 되었다는 요가학원 매니저.
이 두 명의 독자를 마음에 품고 글이라는 운전대를 단단히 잡고 나아가다보면, 목적지에는 더 많은 독자들이 나를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지 않을까? 그 언젠가 힘들어 주저 앉은 누군가가, 벌떡 그 자리에서 일어나고, 타인에게 무관심했던 누군가가, 더 힘든 누군가에게 자신의 마음 한 켠 내어주며 허기진 마음도 채울 수 있는, 이런 선한영향력을 지닌 글을 목적지에서 기다릴 독자들을 위해 쓰고 싶다.
내 글을 읽고 따뜻한 가슴을 가진 이들이 세상에 넘쳐흘러, 우리 두 아이들이 마음껏 웃으며 살아갈 더 나은 세상을 기대해본다. 그것이 내가 글쓰기에 더욱 중독되어야 할 이유다. 쌔근쌔근 잠든 두 아이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며, 나는 오늘밤도 휴대폰 속 메모장을 활짝 열어본다. 내일 아침, 이 글을 읽게 될 누군가의 두 엄지도 뜨겁게 꿈틀거리기를 소망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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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글을 읽고 글쓰기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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