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가사사용인 적용 배제한 퇴직급여법 제3조 단서 합헌"

최석진 2022. 11. 2.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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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대심판정../김현민 기자 kimhyun81@

[아시아경제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조리나 청소, 간병, 육아 등 가사 업무를 담당하는 가사사용인을 퇴직급여 지급 대상에서 제외한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퇴직급여법) 조항은 합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올해 6월부터 시행된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가사근로자법)에 따라 가사서비스 제공기관과 근로계약을 체결한 가사근로자는 퇴직급여법이나 최저임금법 등 근로관계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문제는 이번 사례처럼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을 거치지 않고 이용자에게 직접 고용돼 가사서비스를 제공한 가사사용인의 경우인데, 헌재는 이용자나 이용자 가족의 사생활이 침해될 우려가 있고, 국가의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는 점, 이용자가 감당하기 어려운 경제적·행정적 부담으로 인해 가사사용인 이용이 위축될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 합리적인 차별이라고 결론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가사사용인 A씨가 '가구 내 고용활동'을 법 적용대상에서 배제한 퇴직급여법 제3조 단서가 자신의 평등권과 재산권,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해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7대 2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고 2일 밝혔다.

퇴직급여법 제3조(적용범위)는 '이 법은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한다. 다만, 동거하는 친족만을 사용하는 사업 및 가구 내 고용활동에는 적용하지 아니한다'는 조항이다.

이번 사건에서는 가사사용인에 대한 퇴직급여법 적용을 배제한 '가구 내 고용활동' 부분이 심판대상이 됐다.

A씨는 2014년 5월 21일부터 2018년 3월 4일까지 약 4년간 서모씨의 집에서 가사사용인으로 근무하다가 퇴직했다.

A씨는 퇴직 후 서씨를 상대로 퇴직급여법에 따른 퇴직금과 그에 대한 지연이자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2018년 9월 1심에서 패소했다. 서씨가 A씨를 고용한 것은 '가구 내 고용활동'에 해당돼 애초부터 퇴직급여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A씨는 항소하면서 문제의 조항(퇴직급여법 제3조 단서)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지만 2019년 9월 2심 재판부는 A씨의 항소를 기각하면서 동시에 A씨의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도 함께 기각했다.

결국 A씨는 두달 뒤 헌법재판소에 심판대상조항의 위헌성을 따져봐달라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며 A씨는 문제의 조항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가사노동에 종사하는 사람과 그 외의 사람을 차별해 청구인의 평등권을 침해하고 ▲청구인의 퇴직금 청구권을 부인함으로써 재산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며 ▲아직까지 가사노동은 주로 여성에 의해 이뤄지고 있는데 해당 조항은 가사노동에 대해 퇴직급여제도의 적용을 배제하고 있으므로 '여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으며, 고용·임금 및 근로조건에 있어서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한 헌법 제32조 4항에 반한다고 주장했다.

헌재는 A씨의 나머지 주장은 모두 배척하고 평등원칙 위반 여부만을 심판했다.

먼저 헌재는 퇴직금채권은 법령이 정한 요건이 충족됐을 때 비로소 재산권적 성격이 인정될 수 있는데 가사사용인의 경우 법령이 정한 퇴직급여의 요건 자체가 결여돼 있기 때문에 재산권 제한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봤다.

또 행복추구권은 국가에게 적극적으로 어떤 급부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국가권력의 간섭 없이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포괄적인 의미의 자유권이기 때문에 A씨가 심판대상조항 때문에 퇴직급여를 받지 못했다고 해도 그 자체로 행복추구권이 제한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마지막으로 헌재는 "헌법 제32조 4항이 고용·임금 및 근로조건에 있어서 여성에 대한 부당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지만 여성만이 가구 내 고용활동에 종사하는 것이 아니고, 가사사용인 중 여성근로자가 많다고 하더라도 이는 심판대상조항에 의해 초래되는 법적 효과라고 볼 수 없다"며 헌법 제32조 4항 위반 여부도 심판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한편 평등원칙 위반과 관련 헌재는 "심판대상조항이 가사사용인을 일반 근로자와 달리 퇴직급여법의 적용범위에서 배제하고 있다 하더라도 합리적 이유가 있는 차별로서 평등원칙에 위배되지 아니한다"며 합헌 결정했다.

7명의 헌법재판관은 ▲가구 내 고용활동에 대해 다른 사업장과 동일하게 퇴직급여법을 적용할 경우 이용자 및 이용자 가족의 사생활을 침해할 우려가 있음은 물론 국가의 관리·감독이 제대로 이뤄지기도 어려운 점 ▲퇴직급여법을 가사사용인의 경우에도 전면 적용한다면 가사사용인 이용자가 감당하기 어려운 경제적·행정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점 ▲가사근로자법이 제정·시행돼 가사사용인이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을 통해 가사근로자법과 근로 관계 법령을 적용받을 것인지, 직접 이용자와 고용계약을 맺는 대신 가사근로자법과 근로 관계 법령의 적용을 받지 않을 것인지 선택할 수 있게 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반면 이석태·김기영 재판관 등 2명은 헌법불합치 의견을 냈다.

이들 재판관은 "가구 내 고용활동 분야는 여성의 비중이 압도적인 여성 집중 직종이므로 엄격한 심사척도를 적용해 비례성 원칙에 따른 심사를 해야 한다"며 "심판대상조항은 근로 내지 고용의 영역에 있어서 특별히 남녀평등을 요구하는 헌법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으로서 목적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고용활동 종료 후 임금의 성질을 갖는 퇴직금의 청구를 인정하는 것은 공간 또는 시간적으로 '가구 내'의 사생활과 무관하므로, 심판대상조항에 의한 차별대우가 가정의 사생활 보호를 위한 적합한 수단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심판대상조항은 평등원칙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다만 두 사람은 단순 위헌 결정을 했을 때 여성의 고용환경이 더 악화되는 위헌적 상태가 초래될 가능성을 고려해 국회가 법률을 개정할 때까지 현행 법조항의 잠정적용을 명하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 관계자는 "이번 결정은 가사사용인에 대한 퇴직급여법 적용 배제가 일반 근로자와 비교해 평등원칙에 반하는지에 대해 헌재가 처음으로 판단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근로기준법은 제정 당시부터 현재까지 가사사용인 내지 가구 내 고용활동을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그에 따라 퇴직급여법,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고용보험법, 최저임금법 등 다른 근로 관계 법령 역시 가사사용인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2021년 6월 15일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가사근로자법)이 제정돼 올해 6월 16일부터 시행되면서 고용노동부 장관으로부터 인증받은 가사서비스 제공기관과 근로계약을 체결한 가사근로자는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퇴직급여법 등 근로 관계 법령의 적용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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