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랜드 덮친데 신종자본증권 리스크…금융당국 "흥국생명, 합리적 선택"(종합)
2009년 우리은행 이후 13년만 첫 신종자본증권 미행사
금융당국 "흥국생명 콜옵션 인지"
[아시아경제 지연진 기자] ]흥국생명이 이달 9일 예정된 5억달러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에 대해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결정, 강원도 레고랜드 사태로 인해 위축된 투자심리가 더욱 악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흥국생명은 2017년 발행한 5억달러 규모의 달러화 신종자본증권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했다. 콜옵션 행사 기일은 오는 9일이다.
신종자본증권은 금융사들이 자기자본비율(BIS) 규제를 맞추기 위해 발행하는 영구채다. 보통 5년 정도 후에 발행사가 이 채권을 되사주기로 하는 콜옵션 조건이 붙는다. 이번 흥국생명의 콜옵션 미행사는 2009년 우리은행 후순위채 이후 13년 만에 발생한 국내 금융기관의 신종자본증권 조기 상환이 불발된 경우로, 신종자본증권의 투자리스크인 연장리스크가 현실화했다는 평가다.
흥국생명은 당초 달러화 신종자본증권 발행으로 상환 자금을 마련하려고 했지만, 레고랜드 사태로 인해 조달시장 환경이 급속도로 악화하면서 자금 마련에 차질이 생기자 기존 물량의 미상환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성종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조기상환 미실시가 디폴트를 의미하지는 않지만, 평판리스크를 키우는 요인"이라며 "첫 번째 콜옵션 행사기일을 실질적 만기로 인식했던 투자자들의 신뢰가 낮아질 수 있다"고 전했다. 2009년 우리은행 이후 지금까지 국내 금융기관들은 모두 최초 콜옵션 행사기일에 조기상환을 실시했다는 점에서 채권 가격 하락과 향후 투자수요가 위축될 수 있다고 최 연구원은 덧붙였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흥국생명이 신종자본증권을 조기상환하지 않은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었다고 반박했다. 금융위는 이날 배포한 자료를 통해 "금융위·기재부·금감원 등은 흥국생명의 신종자본증권 조기상환권 행사와 관련한 일정·계획 등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으며, 지속적으로 소통했다"면서 "흥국생명은 조기상환권 미행사에 따른 영향과 조기상환을 위한 자금상황 및 해외채권 차환 발행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었고, 채권발행 당시의 당사자간 약정대로 조건을 협의·조정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흥국생명은 올해 6월 말 기준 지급여력(RBC)비율이 157.8%로 생명보험사 중 낮은 수준이다. RBC 비율은 보험사의 재정건전성을 보여주는 지표로, 일시에 보험금 지급 요청이 들어왔을 때 보험계약자에게 지급할 수 있는 비율이다. 보험업법상 100%를 넘겨야 한다. 권고는 150% 이상이다.
다만 이 회사가 보험업계에서 양호한 지위인데 점진적인 수익성 개선을 감안해 신용 위기 발생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업계는 보고 있다. 금융위도 "흥국생명의 수익성 등 경영실적은 양호하며, 계약자에 대한 보험금 지급 등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회사"라며 "따라서, 흥국생명 자체의 채무불이행은 문제되지는 않는 상황이며 기관투자자들과 지속 소통 중"이라고 전했다.
다만 증권업계에선 국내 기업들이 발행한 외화채권(KP)의 약세를 더욱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외화채권의 신용위험을 평가하는 KP 신용 스프레드의 경우 강원도의 레고랜드 조성을 위한 자산유동화기업어음(CP)에 대한 디폴트를 선언한 이후 채권 투자심리가 위축된데다, 기업들의 실적 우려로 인해 확대되는 모습을 보였다. 내년 예정된 KP 만기는 250억달러로 올해보다 22% 증가한 수준이다. 달러채의 차환 우려가 높다는 이야기다. 최 연구원은 "국내외 투자자의 KP 투자 수요 위축을 감안할 때 당분간 KP는 기조적 약세를 나타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보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김주현 금융위원회장은 전날 5대금융지주 회장을 만나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유동성 공급을 요청, 시중은행들이 95조원의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같은 날 대형 은행과 증권사, 캐피탈 등 대표들을 불러 모아 정부가 발표한 시장안정화대책과 관련한 협조를 당부했다.
지연진 기자 gy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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