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허무하게 사라진 영혼들을 애도하며

2022. 11. 2.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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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는 공동체성을 회복하고 신께 감사드리는 감사제의 역할을 했었다.

"10만명이 모였다." "100만명이 모였다."가 축제 성공의 기준이 된다.

'보랏빛 소가 온다'로 유명한 세스 고딘은 마케팅을 "세상을 돕는 너그러운 행위"라고 했고, '마케팅의 대부' 필립 코틀러도 최근 저서에서 연달아 진정성, 영혼, 공감의 마케팅을 말했는데 요즘 축제는 너그럽지도 않고 솔이 보이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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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축제는 공동체성을 회복하고 신께 감사드리는 감사제의 역할을 했었다. 어떤 축제는 액막이용 기능도 했다. 고대 켈트족이 했던 핼러윈 축제가 그런 축제다. 그들은 귀신을 퇴치하는 가면을 썼다. 축제는 사람이 모인다. 감정이 고조된다. 그래서 권력자들은 정치적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사육제가 그랬다. 거기엔 일시적 전복과 광란도 용인된다. 그런 축제가 상업적으로 변질했다.

현대의 축제는 대다수가 지방자치단체가 주최하는 관광 마케팅이거나 상인 단체들이 대목을 노리는 마케팅 수단이 됐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정체성을 확인하는 축제인 핼러윈 데이는 연인들의 대목인 밸런타인데이와 함께 ‘데이 마케팅’의 전형이다. "10만명이 모였다." "100만명이 모였다."가 축제 성공의 기준이 된다. 한국만 그런 것도 아니다. 일본 시부야도 마찬가지다. 여기 축제의 솔(soul)은 없다. ‘보랏빛 소가 온다’로 유명한 세스 고딘은 마케팅을 "세상을 돕는 너그러운 행위"라고 했고, ‘마케팅의 대부’ 필립 코틀러도 최근 저서에서 연달아 진정성, 영혼, 공감의 마케팅을 말했는데 요즘 축제는 너그럽지도 않고 솔이 보이지도 않는다. 공동체나 감사보다 규모와 숫자, 목적성을 너무 추구하기 때문이다. 종교성이 빠진 축제는 이벤트고 데이 마케팅이다.

코로나19가 풀린 가을 축제는 인산인해였고 숫자 좋아하는 이들은 ‘역대 최고로 성공한’이라는 수식어를 달았다. 축제객들도 코로나19 후에 찾아온 이벤트를 보복하듯이 찾았다. 나도 몇 군데 가보았다. 정말 사람들이 많았다. 무서울 정도로 말이다. 사람이 그 정도로 많으면 종교성도 없고 개인의 오롯한 시간과 공간은 훼손되기 마련이다. 그들을 몇 개 보고 나니 문득 숲속의 음악회 같은 작은 축제가 보고 싶어졌다.

전남 곡성에 가면 읍에서 10㎞ 떨어진 곳에 조그만 강섬이 있다. 비 갠 후 맑은 달이라는 뜻에서 그곳 사람들은 제월(霽月)섬이라 불렀다. 한자 제(霽)는 비가 갠 모양을 뜻하는데 마음이 개고 맑아진다는 뜻도 있다. 도로 진입로에 작은 표시판 하나만 달랑 있다. 축제 기획자가 얼마나 홍보 욕망을 눌러 참았는지 알 수 있다. 두세 명씩 사람들이 보인다. 섬으로 들어가는 다리 위는 햇빛을 품은 채 재잘대며 달리는 귀요미 물소리로 가득하다. 축제는 프랑스, 쿠바, 헝가리 등에서 온 해외 작가와 국내 작가들이 만든 작은 설치물과 미니 공연, 생명을 위로하고 자연에 용서를 비는 퍼포먼스가 다다. 일주일간 하지만 하루 2~3시간만 한다. 남은 시간은 쉰다. 설치물은 섬에서 난 나무, 억새, 흙 등 자연 재료를 이용해서 썩으면 그대로 제월섬 흙으로 돌아간다. 쉬며 걸으며 소곤거리는 어른들, 강아지처럼 뛰노는 아이들, 손을 휘저어 하늘을 가리키고 주문으로 세상의 악을 정화하려는 예술의 몸짓들. 내 마음에 흙탕물과 먼지가 가라앉았다. 어이없는 리더들, 무능한 국회, 무너지는 경제, 빅 브러더들의 전쟁 짓, 흔들리는 청년과 살해당하는 이란의 여성들, 삶 본연의 고통도 가라앉았다.

숫자를 쫓는 축제, 영혼을 달래는 축제, 이 둘이 내 마음에 보인다. 무엇이 축제일까! 10월의 마지막 날 아침, 이태원 핼러윈 데이 참사 소식을 들었다. 외국 작가들이 "믿을 수가 없어(incredible)"라고 한다. 그날 축제는 진혼의 굿으로 시작했다. 끝은 북소리로 맺었다. 지금은 혼월(混月)의 시간. 그러나 북소리 울리고 비 갠 뒤 맑은 달을 상상한다. 세상을 돕는 너그러운 행위들이 모이면 그달이 안 올 리 없다. 그달이 오기도 전 허무하게 사라진 영혼들을 애도한다.

황인선 마케터 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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