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인간의 항변' 펴내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평전]

김삼웅 2022. 11. 2.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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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평전 20] 한승헌은 내로라하는 문인ㆍ학자 못지 않는 글쟁이다.

[김삼웅 기자]

 한승헌 변호사
ⓒ 자료사진
 
  한승헌은 내로라하는 문인ㆍ학자 못지 않는 글쟁이다.

법조의 경계를 넘어 각 분야에 걸쳐 쓰는 그의 글은 신선하며 서늘하고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일반적으로 법률가(법조인)의 글은 건조한 것으로 알려진 데 비해 그의 문장은 대단히 부드럽고 문학적이고 유머스럽기도 하다. 해서 '글맛'이 독특하다. 

그는 1972년 5월 <법과 인간의 항변>이란 책을 출간했다. 시집 <인간귀향>, 수필집 <검사의 체온>, 시집 <노숙>에 이은 네 번째 저서이다. 그간 발표한 논설ㆍ시론ㆍ수필 등을 모았다. 

서문의 제목이 <갈망과 몸부림의 여울목에서>이다.

"어처구니없는 좌절, 분해해도 소용없는 역사를 앓으며 부질없이 고지(稿紙)의 칸을 메꾸어 왔다. 납덩이 같은 침묵이 외계에 가득찰수록 필부의 초라한 밀실 안에선 갈망의 농도가 짙어진다."는 대목에서 당시 심란했던 심사의 일단이 읽힌다. 

검사를 그만두고 시국변호사로 입지하여 법원 안팎에 응축된 권력의 행태와 부딪히면서 겪은 '갈망과 몸부림'이었다.

"자유와 권력, 법률과 인간 - 그것들 사이에 교차되는 무한한 갈등은 우리로서 차마 감당키 어려운 상황을 강요하고 있다." - 이런 상황이 갈수록 더 강화되어가는 한국적 정치ㆍ사법 풍토에서 그는 힘겨운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이 책은 1. 법과 법조의 풍토, 2. 문학과 법의 갈등, 3. 법 의식과 인간소외, 4. 자유언론의 시련, 5. 갈망의 창변으로 나뉘어 60여 편이 실렸다. 한승헌 초기의 사유와 신념, 현실관 등을 살피게 한다. <'사'자 직업>이란 수필은 짧은 자전 격이다. 젊은 시절 아나운서(사), 교사가 되고자 했다가 낙방하고, 검사에 이어 변호사가 되어 '사' 자와 얽힌 사연을 코믹하게 적었다. 

정해진 궤에 따라 검사를 하다가 변호사로 전업한 이제, 나와 '사' 자 붙은 직업과의 묘한 인연을 생각해 보게 된다. 내가 지망했던 교사나 아나운사(정확히는 아나운서라지만)가 그렇고 전직인 검사가 그런가 하면 지금의 변호사가 그렇다. 

모두 '사' 자로 끝나는 이름을 가진 직업, 우연이라기엔 너무 기이하다. 비단 '사' 자 만이 공통인자가 아니다. 여러 사람이 듣는 것을 전제 삼아서 발성하여 정오(正誤)의 룰과 설득에 능해야 하는 점에서도 공통된 면이 있다.

그러니까 지금의 변호사 생활에도 때로는 교사다운 때로는 아나운서다운 요소가 아울러 작용해야 될 적이 많다. 실인즉 제3지망의 직업이긴 해도 '이왕 들어선 바엔' 하고 지금의 생활을 후회해 본 적은 없다. 그저 힘에 겨워서 탈이다. (주석 3)

이 책에는 3인의 짧은 '독후감'이 뒷 표지에 실렸다.

이것은 이른바 신변잡기풍의 수필이 아니요 현학이 풍기는 논설집도 아니다. 지적인 메스로 현실을 해부하고 저항하고 저미는 심도 높은 에세이집이다. - 김소운(수필가)

미망으로 얼룩진 우리 현대사의 '현장증언'을 듣는 것 같아 숙연해진다. 비리와 무법 앞에 인간을 변호하는 저자의 육성은 이 시대를 함께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되어야 할 것이다. - 법정(스님)

저자의 음성은 신념에 차 있고 유창한 문장을 타고 전개되는 논리는 현상을 고착시키려는 힘으로서의 권력에 대한 명석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ㅡ 김병익(문학평론가)

<지적(知的) 편식>이란 수필의 앞 대목이다.

불온학생으로 지목받던 K의 하숙방에 수사기관 사람이 찾아왔다. 먼저 책꽂이를 두리번거리던 그는 대뜸 한 권의 책을 뽑아냈다. 막스웨이버 사회학 책이었다. 

"이거 막스ㆍ레닌의 유물론 아니야?"
수사관의 말투가 기세를 올린다.
"아닙니다. 막스웨버가 어째서 칼 맑스란 말입니까? 전혀 다른 사람인데요."
"뭐? 내가 모를 줄 알고? 좌우간 이 책은 압수해 간다."

K는 어이가 없었다. 선무당이 무엇을 잡는다고 '막스'를 '맑스'로 단정한 그 사람은 기어이 책을 가지고 가서 밀린 서류와 함께 검찰에 넘겼다. 맑스ㆍ레닌을 신봉하는 용공사상의 소유자라는 의견을 붙여서…….

이것을 받아본 검사, 하도 기가 막혀서 허허 웃고 책을 돌려주었다는 이야기다. 
이런 에피소드를 그저 무식에서 빚어진 웃음거리라고 보아 넘길 수만도 없는 곳에 우리 쓴 (辛)의 맛의 이중성이 있다. 이 삽화는 어떤 의미에서 오늘날 우리의 지적 위기를 상징하는 슬픈 단면이기도 하다. (주석 4)

주석
3> 한승헌, <법과 인간의 항변>, 384~385쪽, 범우사, 1978.
4> 앞의 책, 1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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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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