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태원 문화 참사! 더 이상 톨레랑스 남용은 안 된다!

2022. 11. 2.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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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주(사랑의병원 원장· 변혁한국 의장)


튀르키예의 수도 이스탄불, 보스포러스 브리지와 흑해의 빛나는 물결이 내려다보이는 탁심 언덕의 아침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런데 이른 아침 이곳을 산책하다가 이태원 참사라는 참담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번 참사에 관련된 가족들의 마음을 다 헤아릴 길 없지만, 여기에 공동의 책임을 느끼며 비통한 심정인 것은 모든 부모의 마음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과연 기성세대는 이들의 피와 고귀한 목숨값에 대해 깨끗한가.

오래전 상영된 ‘데블스 에드버킷’이라는 영화에서 뉴욕 로펌의 소유주이자 사탄으로 등장한 알 파치노는 ‘인간의 허영심은 내 기호품이지’라는 유명한 대사를 남겼다. 젊은이들에게 호기심과 허영심을 자극하는 것은 사람을 타락시킬 때 어둠의 영이 가장 즐기는 술책이라는 뜻이다. 좋은 것을 널리 알리는 선의의 광고도 있지만, 오직 돈만 벌기 위해 나쁜 것을 퍼트리는 광고도 있다. 인간의 헛된 욕구와 허영심을 자극해 인간의 궁극적 운명을 파국으로 몰고 가는 광고가 얼마나 많은가. 이제 문화적 타락으로 이끄는 수많은 이벤트와 이에 편승한 상업주의에 대한 전면적 제재가 절실해지는 상황이다.

물론 차세대에게 타락한 외래 문화를 부추기는 상업주의에 대한 국가적 검증이 필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더이상 무분별한 관용에 대해 제재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이다. 관용이란 프랑스어로 ‘톨레랑스(tolerance)’라고 하는데 다른 사람의 사상이나 행동에 대한 관용을 말한다.

나는 월드컵 때 ‘붉은 악마’라는 명칭을 쓰는 것부터 영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 좋은 명칭을 놔두고 하필 붉은 악마인가. 여기서 스포츠 상업주의, 문화적 상업주의의 단면을 보았다. 이태원은 국제적인 자랑거리이고 문화적 상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태원의 밤’은 더이상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 왜 젊은이들을 밤새 광란으로 이끌고 여기에 술과 마약과 변태 섹스로 연결되는 문화적 참사를 방치하는가.

기성세대의 침묵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사회의 보편적 가치를 지켜내지 못하는 보수 세력의 무기력함에도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나 이번 문화 참사의 책임은 진보 세력의 야심에 있다. 청소년이나 젊은이들을 표로 계산하는 간악함을 간과해선 안 된다. 여론 조사를 악용해 잘못된 가치를 다수의 의견으로 탈바꿈하는 파렴치한 정치꾼들이 얼마나 많은가. 자기 자녀라면 어떤 부모가 광란의 밤이나 동성애를 허용하겠는가.

무분별한 관용으로 마약이나 향정신성 의약품 남용이 보편화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동성애 등 전통 파괴의 극단적 외래문화가 차별금지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고 불건강한 섹스 문화와 파티 문화, 청소년들에게도 퍼지는 무서운 게임 중독, 미디어를 장악한 귀신 문화, 다양한 자살 문화, 널리 퍼지는 타투 문화, 여기에 편승한 핼러윈 등 불건전한 축제 문화 등 물밀 듯 밀려오는 외래 문화에 대한 사회적 검증과 제재가 필요한 시점이다.

마침 산책했던 공원에서 1948년 공포된 UN 인권헌장 기념비가 있었다. 이 비문에는 ‘모든 사람은 의견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이 권리는 간섭 없이 의견을 보유할 수 있는 자유를 포함하며, 분야와 관계없이 어떤 매체를 통해서든 정보와 아이디어를 찾고, 받고 전달할 수 있는 자유를 포함한다’라고 돼있다. 다음세대에게 바른 길을 보여주고 자녀를 어둠의 세력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의사 표현을 당당히 할 수 없는 나라, 사실상 언론의 자유가 막혀 있는 상황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문제는 지난 5년간은 물론 진보 세력이 집권할 때마다 이러한 표현의 자유가 침해돼 왔다는 사실이다. 반대할 수 없고 할 말을 할 수 없는 분위기는 또 다른 독재가 아니겠는가. 그 대표적 사례이자 전형적인 법안이 차별금지법이다. 특히 차별금지법의 법정신은 톨레랑스다. 문제는 이 관용이 또다른 많은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고 사회적, 도덕적 보편성을 뒤흔드는 상황에서 이 톨레랑스의 남용이 더는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렇게 많은 국민이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잘못된 법안의 입법을 국론 분열을 무릅쓰고 몰아붙이는 저의는 무엇인가. 그것은 다음세대를 영적, 도덕적 타락으로 보호하려는 데 있지 않고 톨레랑스를 내세우며 그들의 표를 얻기 위함이 아닌가.

한번은 파리 드골공항에 내린 적이 있었다. 짐을 찾는데 한 한국분이 금연 표시 바로 옆에서 흡연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의를 제기했더니 대뜸 ‘아 파리에 처음이시군요. 여기서 금연 표시는 참고 사항일 뿐입니다’라고 반문했다. 이때 나는 톨레랑스의 악용을 파악하며 속으로 탄식을 했다. 남의 자유, 남의 행복을 침해하면서 관용을 주장할 수 있는가. 톨레랑스의 한계를 분명히 보았고 여기에서 비롯된 사회·문화적 파행을 예측할 수 있었다. 이번 문화 참사의 내적인 요인은 ‘톨레랑스의 남용’에 있음을 법과 정책 입안자들은 뼈저리게 느껴야 할 것이다.

물론 지금은 불확실성의 시대이고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고 미래를 열어주는 비전 제시가 절실한 상황이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문화가 경박성을 띠면 국가가 망한다’는 논리를 증명하기 위해 수십 개의 문명을 연구한 적이 있다. 이 이론의 특이한 점 중의 하나는 젊은 세대들이 ‘해외 근무와 도전정신을 선호하면 국가가 융성해지고 해외 근무를 싫어하고 향락에 빠져 있고 해외여행만 선호하면 국가가 쇠락의 길을 걷는다’는 내용이다. 젊은이들에게 에너지를 바르게 발산할 수 있는 출구가 필요하다. 물론 잘못된 출구는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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