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손흥민 발굴이 꿈"...분데스리가 볼프스부르크를 움직이는 한국 남자

피주영 2022. 11. 2.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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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데스리가 볼프스부르크 사업개발본부장 이경엽. 사진 피주영

"코로나19 탓에 4년 만의 한국 방문인데, 고향처럼 편안하네요. 한국인 피는 못 속이나 봐요.(웃음)"

1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만난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 볼프스부르크의 이경엽(47) 사업개발본부장은 웃으며 말했다. 볼프스부르크는 최근 한 한국 단체의 초청을 받아 방한해 경기도 파주에 유소년 캠프(10월 29일~3일)를 차렸다. 독일 자동차회사 폭스바겐이 모기업인 볼프스부르크 구단이 한국을 찾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직접 구단 유소년 코치진을 이끌고 온 재독교포 이 본부장은 "오래전부터 한국과 독일의 가교 구실을 하고 싶었는데, 한국에서 제안을 받고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번 캠프를 계기로 양국 축구 발전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미하엘 메스케 대표이사에 이어 500명의 직원을 이끄는 구단의 넘버2다. 사업개발을 비롯해 디지털,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브랜드 매니지먼트 등 4개 부서를 총괄한다. 그의 지시에 따르는 직속 스태프만 30명이다. 이 본부장은 "하루에 수십 차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위치라서 스트레스도 적지 않다. 하지만 내가 유럽에서도 빅리그로 불리는 분데스리가 구단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면 자다가도 힘이 솟는다"라고 말했다.

DFB 시절 이경엽. 현재 독일 성인 대표팀 주축 선수 대부분이 그의 손을 거쳤다. 사진 이경엽

이 본부장은 독일 축구계에서 알아주는 인재다. 독일축구협회(DFB)에서 유스팀총괄부장과 연령대별 대표팀 단장을 맡아 2019년까지, 10년간 근무했다. 현재 독일 성인 대표팀의 주축인 요슈아키미히, 세르주나브리(이상 바이에른 뮌헨) 등 대부분을 그가 발굴하고 수퍼 스타로 키웠다. 그는 DFB에 근무하며 한국 연령별 대표팀의 독일 전지훈련을 주선하기도 했다. 현재 직장인 볼프스부르크는 2020년 러브콜을 받고 입사했다. 이 본부장은 "DFB에선 10년 이상의 장기 계획을 세웠다. 큰 무대 경험도 많았다"면서 "볼프스부르크는 한 시즌 또는 매 경기 새로운 전략과 계획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내 능력을 좀 더 효과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무대"라고 설명했다.

이경엽은 1975년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파독 광부, 어머니는 파독 간호사였다. 축구는 6세 때 헤르타 베를린 유스팀에서 시작했다. 1m72㎝로 큰 체구는 아니었지만, 스피드가 남달랐다. 덕분에 20세였던 1995년 베를린 프로 2군 팀(3부)에 승격했다. 그러나 1부의 벽은 높았다. 부상도 겹쳤다. 결국 그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그해 은퇴했다. 이 본부장은 "현대 축구에선 스피드를 장점으로 인정하지만, 내가 뛰던 1990년대는 덩치가 크고 힘 좋은 선수들의 전성시대였다"고 설명했다. 목표를 잃고 방황하던 이경엽은 부모의 권유로 이듬해 베를린자유대에 입학해 경영학을 공부했다. 2002년엔 포츠담대 경영대학원에 진학했다. 3년 뒤엔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경엽 본부장의 꿈은 볼프스부르크에서 뛸 제2의 손흥민을 발굴하는 것이다. AFP=연합뉴스

이경엽은 "부모님이 공부만큼은 한국 스타일로 빡빡하게 시켰다. 덕분에 축구 행정가의 길이 열렸다"며 웃었다. 다시 축구와 인연을 맺은 건 2006년 독일월드컵 때다. 당시 이경엽은 현지의 한 컨설팅회사에서 일했는데, 휴가를 내고 한국 대표팀의 연락관을 맡았다. 선수 출신인 데다 영어, 독일어, 한국어가 능통한 그는 돋보였다. 그를 눈여겨본 DFB는 이후 입사를 제안했다. 이 본부장은 "한국 축구 덕분에 내가 다시 축구계에 돌아올 수 있었다. 한국과 독일이 맞붙으면 나도 모르게 한국을 응원하더라. 한국 축구를 위한 일이라면 언제든 발 벗고 나서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이 본부장은 '제2의 손흥민(토트넘)' '제2의 구자철(제주 유나이티드)' 등 볼프스부르크 1군에 한국 선수가 뛰는 모습을 보는 게 꿈이다. 손흥민은 2009년 함부르크(독일) 유스팀에서 시작해 세계적인 공격수가 됐다. 구자철은 2013년 볼프스부르크에 입단하며 유럽 성인 무대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한국 선수들이 독일 무대를 보다 쉽게 두드릴 방법을 고민한다. 유소년 팀에 '한국인 쿼터'를 만들어 기회를 열어줄 방법을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루빨리 손흥민, 구자철을 이을 차세대 한국 선수가 볼프스부르크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볐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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