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늦게 술 마시니..." 택시 기사의 막말,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이태원 압사 참사]
[윤일희 기자]
딸애가 씩씩거리며 들어섰다. 늦은 귀가로 택시를 타게 되었는데, 택시에서 봉변을 당한 모양이었다. 내용은 이랬다.
택시 문을 닫고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택시 기사가 반말로 묻더란다. "아가씨 술 마셨어?" 술 주정을 한 것도 아니고 인사불성이 된 것도 아닌데, 술을 마셨건 말 건은 기사가 물을 이유가 없었다. 얼떨결에 안 마셨다고 했더니 술 냄새가 나는 것 같다며 궁시렁대더란다. 술은 마시지 않았고 기사의 무례가 '빡쳤지만', 말끝을 잡고 상대하다 보면 실랑이가 길어질 것 같아 꾹 참았단다. 그런데 이후 펼치는 말이 점입가경이더란다.
"여자애들이 밤늦게 술 마시고 다니니까 사고가 나잖아. (...) 왜 보상을 해준다는 거야?"
택시 기사는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의 옷차림까지 들먹이며 막말을 쏟아냈다고 했다. 딸애는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어 대거리를 한 모양이었고, 하차하느라 미처 다 쏟아내지 못한 분노 때문에 씩씩댔던 것이다.
SNS를 하지 않는 나로서는 '이태원 참사'를 두고 무슨 해괴망측하고 천벌받을 가십들이 오가는지 모르지만, 이 택시 기사의 망언만 보더라도 가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참사에 대한 택시 기사의 조롱과 혐오는 사실인 것이 하나도 없다. 흉흉한 지라시를 듣고 사실인 양 떠벌리고 가짜 뉴스를 재생산까지 하고 있으니 한숨이 나왔다.
이번 참사 희생자에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을 보고 충격이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장미혜 연구위원이 2015년 <젠더리뷰>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1991년 방글라데시에서 있었던 사이클론의 피해로 총 14만의 사망자가 발생했는데, 이 중 90%가 여성이었다. 2004년 동아시아 쓰나미에서도 희생자의 67%가 여성이었다. 국내의 경우 사회를 절망에 빠뜨린 세월호 참사에서도 여성의 사망 비율이 더 높았다.
이처럼 여성들의 재난 피해가 더 큰 것은 남성들에 비해 정보 전달이 늦은 정보 체계 불평등과 안전한 장소로 이동할 능력이 떨어지는 생물학적 차이와 젠더 불평등 때문이다.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가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도 그들이 가진 취약성에 기인한다. 정부가 재난 관리 정책에 성인지 관점을 견지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여성 피해가 많았던 것을 두고 그들이 술을 마셔서라거나 방탕해서라고 여성 혐오를 조장하는 것은 비윤리적이고 부적절하다.
이태원은 역사적으로도 여성에게 통한의 공간이다. 미군 용산 기지가 있던 인근 이태원에 미군 기지촌이 형성되었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여성들이 생계를 위해 이곳에 모여들었다. 소위 미군 '위안부'로 불리던 기지촌 여성들도 있었는데, 이들 중엔 억울하게 죽은 여성들이 많았다. 이들이 당한 참담한 인권침해는 지난 9월 29일 대법원 판결에서 인정받은 바 있다(미군 기지촌 '위안부' 여성들의 국가 대상 손해배상 청구소송).
이태원은 기지촌이 사라지고 외국인이 밀집하면서 나름대로의 문화를 형성하기 시작하며 젊은이들의 '핫플'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핼러윈데이에 아무런 감흥이 없지만, 젊은이들은 다를 수 있다. 20대 초반인 내 딸만 하더라도 유치원 때부터 핼러윈데이를 유희적으로 즐겼다. 핼러윈데이에 큰 의미를 부여해서가 아니라, 그러니까 근본 없는 외국 문화에 물들어서가 아니라, 어릴 때부터 유희적으로 익숙하다는 뜻이다. 그저 하루, 버거운 삶을 내려놓고 한바탕 놀고자 모여드는 것일 텐데 그게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축제를 즐기는 일에 여자와 남자의 구별이 있을 리 없으며, 분장과 코스튬을 왜 문제적인 옷차림으로 취급하는가. 이 날조엔 여성 혐오가 매우 짙게 배어 있다. '여자가 어딜 밤에 밖에 쏘다니냐'는 협박은 유구히 이어져오는 여성 억압이다.
'여자가... 밤에... 술 마시고... 복장이 영...'은 여성이 (성)범죄를 당했을 때 어김없이 반복되는 레토릭이다. (성)범죄를 당한 것도 참사에 목숨을 잃는 것도 모두 이들이 '밤에 술 마시고 이상한 옷을 입었기 때문'이 아니다. 희생도 억울하고 슬프기 짝이 없는데 여기서 여성 혐오가 왜 나온단 말인가?
택시 기사에게 봉변을 당하기 하루 전 딸애는 학교에 희생자가 두 명이나 있다는 소식을 전하며 침울해했다. 놀다 죽은 것을 왜 '국가 애도'를 하냐고 수군대는 사람들의 비아냥이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나는 목숨은 다 소중하다고 대답했다. 놀다 죽든 일하다 죽든 이런 불행이 없어야 하지만, 놀다 죽었든 일하다 죽었든 억울한 희생이라는 목숨의 가치는 달라질 것이 없기 때문이다. 억울한 죽음을 두고 논공행상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국가' 애도에 찜찜한 구석이 없는 건 아니다. 참사가 나자 즉각 '국가' 애도를 선포한 건 '닥치고 애도' 하라는 침묵을 강요하는 경찰국가의 면모가 스쳤기 때문이다. 정작 시민을 보호해야 하는 경찰은 당일 참사에 무엇을 했단 말인가.
10만으로 추산되는 사람들이 몰려들 것을 예상하지 못하고 현장에 택도 없는 경찰을 배치했다. 게다가 속속 밝혀지고 있는 진실은 참사가 있기 몇 시간 전부터 경찰 출동을 요청하는 신고가 빗발쳤지만 경찰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막을 수 있었던 재난을 막지 못했다면 책임은 국가에 있지 그곳에 있었던 희생자들에게 있지 않다.
참사 이후 드러나는 희생자의 사연들에 가슴이 시린다. 희생자 중 내가 아는 사람은 없지만 너무 슬프고 안타깝다. 희생자 유족들의 태산 같은 비통은 말할 것도 없고, 참사 현장에 있던 사람들과 현장에 있지는 않았지만 이런저런 사연으로 희생자와 연관 있는 사람들도 트라우마에 시달릴 수 있다. 모두 아플 수 있다.
나만 해도 세월호 참사 이후 크건 작건 배를 타지 못한다. 참사 유족도, 참사 현장에 있던 것도 아니지만, 나는 나의 징후가 세월호의 고통에 연관되어 있음을 안다. 많은 이들이 오랫동안 세월호 참사를 앓았듯 이태원 참사도 그럴 것이다. 아무 말이나 내뱉어 상처를 들쑤시지 않는 건 애도의 우선 원칙이다. 또한 참사 조사를 지켜보며 어디에 피해 책임의 과녁을 놓아야 할지 판단하고 비판하는 것 역시 애도의 방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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