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너무 사랑했다"…이태원서 숨진 러시아인 4명의 사연

한지혜 2022. 11. 2.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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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압사 참사에서 숨진 크리스티나 가르데르(26). 사진 모스콥스키 콤소몰레츠


‘이태원 참사’로 숨진 러시아 여성 4명의 안타까운 사연이 전해졌다. 한국 방문의 목적은 각자 달랐지만, 누구보다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은 같았다.

1일(현지시간) 러시아 일간 모스콥스키 콤소몰레츠(MK)에 따르면 이번 참사로 숨진 러시아 여성 4명 중 한 명인 크리스티나 가르데르(26)는 시베리아 케메로보주 노보쿠즈네츠크 출신으로 2013년부터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2주 동안 한국으로 직접 여행을 다녀왔다. 이후 한국에 대한 관심이 커져 한국에서의 유학까지 다짐했다고 한다.

유학비 마련을 위해 여러 일을 하며 돈을 모은 크리스티나는 2년여 전 서울로 오며 유학생의 삶을 꿈꿔왔다. 그의 가족은 “한국 여행을 다녀온 크리스티나는 (한국을) 너무나 마음에 들어 했다”며 “한국어를 완벽하게 배우길 원했고 서울로 간 뒤 대학에 입학했다”고 말했다.

대학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크리스티나는 지난 29일 한국의 핼러윈이 궁금해 친구들과 이태원을 찾았다가 참사를 당했다. 천식 환자인 크리스티나에겐 사람들이 한꺼번에 넘어지면서 발생한 사고 상황이 더욱 치명적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동행한 친구 역시 부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들은 크리스티나의 시신을 한국에서 화장한 뒤 유골을 담은 상자를 러시아로 가져와 장례를 치를 예정이다. 그의 자매인 발레리아는 크리스티나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전하기 위해 조만간 한국을 방문한다.

2일 오전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 분향소를 찾은 조문객들이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참사로 숨진 또 다른 러시아인인 연해주 출신 율리아나 박(25)도 한국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지난 7월 SNS를 통해 “1년 전 한국어도,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른 채 한국으로 왔다. 그냥 여기서 살고 싶었다. 이런 결정은 위험하고 즉흥적이었다. 지금 나는 내가 자랑스럽다”며 한국에 남다른 애정을 남기기도 했다.

율리아나는 한국에 있는 러시아 학교에 취업해 유치원에서 영어도 가르쳤다고 한다. 다만 연해주에서 홀로 지내는 어머니가 걱정돼 언젠가는 다시 러시아로 돌아올 생각이었지만 이번 사고로 의식을 잃은 채 병원에 옮겨진 그는 끝내 숨지고 말았다.

연해주 출신으로 지난 2018년부터 서울에서 지낸 또 다른 사망자 옥사나 김도 참사 발생 당시 이태원을 방문했다가 목숨을 잃었다. 동행한 친구는 “나와 다른 친구는 안전한 곳으로 몸을 피했지만, 옥사나는 그러지 못했다”며 “사고 당시엔 옥사나가 압사의 중심에 있었고 비틀거리며 넘어졌다고 들었다”고 했다. 그의 친구들은 옥사나의 사망 소식 후 고향으로 데려오기 위해 모금 활동을 벌였으며, 필요한 금액을 마련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31일 누리하우스 백아람 대표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모금 포스팅. 사진 페이스북 캡처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의 다리아 트베르도클렙(21)도 이태원 참사로 목숨을 잃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주립대 학생인 다리아는 성균관대의 가을학기 교환학생으로 선발돼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2일까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이 집계한 사고 사망자는 총 156명이다. 이중 외국인은 26명으로 이란 5명, 중국 4명, 러시아 4명, 미국 2명, 일본 2명, 프랑스·호주·노르웨이·오스트리아·베트남·태국·카자흐스탄·우즈벡·스리랑카 각 1명이다.

정부는 이번 참사로 사망한 외국인들에 대해서도 내국인과 마찬가지로 위로금 2000만원, 장례비 최대 1500만원을 지급하기로 했다.

한지혜 기자 han.jeeh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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