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일해도 퇴직금 못 받는 가사도우미…헌재 판단은? [그법알]
[그법알 사건번호 105] 아이 돌보고 환자 간호하는 ‘이모님’…퇴직금 받을 수 있을까
지난 2014년부터 4년간 한 집에서 입주 가사도우미로 일한 A씨는 퇴직하면서 고용주에게 퇴직금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거절을 당했고, 소송까지 냈죠. 고용주 측은 퇴직급여법상 가사도우미에게 퇴직금을 줄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제3조는 “가구 내 고용 활동에는 이 법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보고 있습니다. 애당초 가사도우미에 대해서는 근로기준법도 적용되지 않고 있기도 하고요.
지난해에야 가사근로자법이 생겨서 퇴직금이나 최저임금 등을 뒤늦게 보장하고 있긴 합니다. 그런데 이 법은 가사서비스 제공 기관과 근로 계약을 체결한 가사도우미만 ‘가사근로자’로 인정합니다. 결국 중간 업체를 거치지 않은 가사도우미의 경우 여전히 퇴직금조차 받을 수 없는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 것이죠.
A씨 측은 헌법재판소로 향했습니다. 퇴직급여법이 ‘가구 내 고용 활동’에 대해서는 퇴직금 지급 등을 보장하지 않고 있는 점을 문제 삼은 겁니다. 평등권과 재산권,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죠. 또 우리 헌법 제32조 제4항은 '여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으며, 고용, 임금 및 근로조건에 있어서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한 점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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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 의견은?
먼저 헌법재판관 7명의 다수 의견부터 살펴보시죠.
헌재는 가사 노동이 가정이라는 사적 공간 안에서 이뤄지는 점을 주목했습니다. 사용자에게 강제성을 부여하는 퇴직급여법을, 가정이라는 사적 공간에 집어넣게 되면 결국 국가가 개별 가정을 감독하는 상황이 된다는 겁니다.
퇴직급여법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사업장에 출입해 조사도 할 수 있고, 사용자로부터 서류나 보고를 받을 수 있습니다. 각종 적립금과 부담금을 납부하는 등의 의무가 부과되고, 이를 어기면 처벌 역시 가능합니다.
헌재는 “이용자와 이용자 가족의 사생활을 침해할 우려가 있음은 물론 가사의 사생활적 특성으로 인해 국가의 관리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기도 어렵다”고 짚었습니다. 가사도우미는 개별 가정에서 산발적으로 일하고 있어서 국가가 실태조차 파악하기 어렵다는데,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퇴직급여법을 잘 지켜지고 있는지 감독하려면 행정인력 등을 증원하는 등 막대한 행정비용이 요구되기도 하고요.
게다가 노무관리 비용 등 이용자 가족이 부담해야 할 돈이 많아지는데, 현실적으로 이걸 다 부담할 수 있는 가정이 얼마나 될지도 고민할 지점입니다. 병간호 등 돌봄 수요가 큰 고령 이용자나 취약 계층의 경우 부담이 더 커지겠지요.
가사근로자법이 새로 생긴 점도 헌재는 고려했습니다. 중간 업체를 끼고 가사근로자법의 보호를 받을 것인지, 아니면 이용자와 직접 계약을 맺고 근로관계 법령의 적용을 받지 않을 것인지는 개인이 선택할 문제라는 겁니다. 평등원칙에 위배된다고는 보기 어렵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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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 의견은?
반면 이석태·김기영 재판관은 퇴직급여법이 가사도우미를 보장하지 않는 것에는 남녀 차별적 성격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두 재판관은 “가구 내 고용 활동에 대해 근로관계 법령이 적용되지 않는 것의 기저에는, 가사란 당연히 여성이 도맡아 하는 일이고 급여를 지급해야 하는 공식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던 전통적 고정관념이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또 “가사노동은 애초부터 ‘노동’이 아니거나 보호 가치가 미미하다는 성차별적 고정관념의 영향이 존재했다”면서, 이것이 “사회 구조적·심리적으로 가구 내 고용 활동 분야는 여성 집중 직종이 되게 만든 주요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실제로 통계청은 가사육아도우미 중 98.4%를 여성으로 집계하고 있다고 하죠.
두 재판관은 여기서 더 나아갔습니다. “종사자 중 절대다수가 여성인 가구 내 고용 활동 분야에 근로관계 법령이 적용되지 않는 차별적 현실은 다시 가사노동에 관한 전통적인 고정관념을 고착화·영속화하는데 기여하게 된다”면서요. 결국 ‘여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으며, 고용, 임금 및 근로조건에 있어서 부당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한 우리 헌법에 어긋난다는 겁니다.
1953년에 생긴 근로기준법과 2011년에 전부 개정된 퇴직급여법은 엄연히 달라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법률에 성차별적 규정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입법자의 차별의도보다는 성별에 대한 무의식(Gender Blindness)과 당시의 사회적 의식에 의한 경우가 많다”면서요. 1953년 근로기준법이 제정될 때에는 당시 성별에 대한 무의식이 컸겠지만, 2011년 퇴직급여법이 전부 개정될 때에는 이미 여성의 노동환경이나 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상당히 바뀌었다는 거죠.
그러면서 두 재판관은 퇴직금 제도의 의미를 들여다봤습니다. 근로자의 노후나 실업 기간을 보장하는 기능이 있는 만큼, 가사도우미도 이를 누릴 권리가 있다는 겁니다. “대체로 낮은 급여, 언제 그만둘지 모르는 불안정한 고용상태, 휴식이나 식사시간 등이 보장되지 않는 열악한 조건”이라면서요. 중간 업체를 낄 경우 회원 수수료 부담도 있다고 덧붙였죠. 이들을 사회안전망 안으로 들여야 한다는 겁니다.
퇴직급여법을 적용하면 정부가 가정이라는 사적 공간을 침해할 수 있다는 다수 의견에 대해서는 이렇게 반박했습니다. 퇴직금은 노동관계가 종료된 이후에 법적 문제로 대두하는 것이니, ‘가구 내’ 사생활과 별 상관이 없다는 겁니다.
다만 두 재판관은 위헌보다는 헌법불합치 의견을 냈습니다. 당장 퇴직급여법 적용으로 가사서비스 이용비용이 상승하면,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직장맘’ 등 또 다른 여성의 부담이 커져 경력단절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만일 퇴직급여법이 가사도우미들에게 적용될 때 발생할 부정적인 효과를 예방하기 위해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7명의 다수 의견으로 법 조항은 합헌 결정이 나긴 했지만, 가사 육아 도우미들을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에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듯합니다.
이미선 재판관은 법정 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에서 “가사도우미들이 가지는 특수성을 이유로 모든 근로관계 법령의 적용 범위에서 일률적으로 배제되고 있다”며 “노동 사각지대에 남게 됐다”고 짚었습니다. 그러면서 “법령별로 구체적으로 검토해서, 이들의 근로조건과 근로 환경을 보호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입법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라고 제언했습니다.
■ 그법알
「 ‘그 법’을 콕 집어 알려드립니다. 어려워서 다가가기 힘든 법률 세상을 우리 생활 주변의 사건 이야기로 알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함께 고민해 볼만한 법적 쟁점과 사회 변화로 달라지는 새로운 법률 해석도 발 빠르게 전달하겠습니다.
」
오효정 기자 oh.hyo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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