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누가 정치적으로 이용하나

이현파 2022. 11. 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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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추모의 유통 기간 정해 놓은 윤 정부..."밀어" 외친 남자 찾기? 유병언 주범몰기 생각나

[이현파 기자]

 1일 오후 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국화와 메모가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다.
ⓒ 이희훈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에 국무위원들과 방문해 헌화하고 있다.
ⓒ 이희훈
 
이태원 참사를 접한 10월 29일의 밤, 나는 심한 무력감에 휩싸였다. 희생자 대다수가 놀이 문화를 좋아하는 20대였다. 나와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고 있을, 동 세대 사람들이었다. 처음에는 애도의 마음이 우선하기를 바랐다. 그 어떤 세력도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재난을 도구로 삼아, '나'를 드러내고 싶어 하는 사람을 경계했다. 하지만 사건이 진행될수록, '세상에 정치적이지 않은 일은 없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이 말은 고등학교 때 인터뷰를 위해 만난 한 소설가가 나와 친구들에게 한 말이다.

그의 말대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철저히 정치적이었으니까. 이태원 참사 직후 정부는 10월 30일부터 11월 5일까지를 국가 애도 기간으로 지정했다. 참사 희생자에게 위로금 2000만 원과 장례비 최대 1500만 원을 지급하기로 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정부는 참사가 발생한 용산구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고, 용산구는 오는 12월 31일까지를 구 차원의 애도기간으로 선언한 뒤 관내 행사나 단체활동 등을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발빠르게 합동 분향소가 설치되었고, 7일 간 조기가 게양된다. 검은 리본이 공공기관과 학교에 배부되었다. 나는 이 선포가 매우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애도는 시민이 각자의 방식으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아티스트가 자신의 의지로 공연을 취소하는 것은 자유지만, 국가가 공연과 행사의 취소를 권고할 당위는 없다. 국가의 몫은 관제 애도가 아니라 다른 곳에 있다.

국가가 앞장서서 추모의 유통 기한을 정해놓았다. 이 지점에서 이 사건을 최대한 탈정치적인 것으로 치환하고자 하는 정부의 의도가 읽힌다. 물론 대통령이나 서울시장이 모든 재난을 막을 수 없다. 하지만 행정부의 수반이라면 참사 앞에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고개를 숙여야 한다. 그 다음에 안전한 대한민국을 약속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지도자에게 늘 요구하는 책임의 가치다. 지난 대통령들이 제주4.3 사건, 5.18 광주민주화운동처럼 수십 년 전의 과거사에 사과하는 것도 이 가치와 무관하지 않다. 최근 윤석열정부의 모습을 보며 이런 의문이 들었다. 국가 애도 기간을 지정하기에 앞서, 국가는 책임을 다했는가?

미안하다고 말하는 어른이 없다
 
 시민들이 1일 오후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에서 희생자들의 안타까운 죽음에 슬퍼하고 있다.
ⓒ 유성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다"라는 말도 했다. 하지만 상인과 시민들은 핼러윈 전부터 여러 차례 특별한 수준의 관리를 건의했다. 참사가 벌어진 당일에도 시민들의 다급한 신고가 이어졌다. 경찰 인력이 배치되어 시민들의 통행을 통제했다면 양상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참사 발생 18시간이 지나, "주최자가 없으니 축제가 아닌 현상"이라는 발언을 했다. 축제가 아니었으니, 당국에서 관리할 의무가 없었다는 것이다. 모두가 책임을 지지 않고자 한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당시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국가안보실은 재난 컨트롤 타워가 아니다"라고 말했던 순간과 다르지 않다.

한편 정부가 10월 30일 중대본 회의에서 피해자 대신 '사망자', '사상자' 등의 용어를 사용하도록 권고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MBC의 단독 보도 이후,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가해자나 책임 부분이 분명한 경우에는 희생자, 피해자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이번 사고는 확인되지 않은 부분이 많아 중립적인 용어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11월 1일 진행된 한덕수 국무총리의 외신 기자 간담회에서도 이태원 참사는 '이태원 사고(Itaewon Incident)'로 정의되었다. 참사의 의미를 최대한 축소하고자 한 듯한 언어 선택이었다. 심지어 이날 한덕수 총리는 통역에 문제가 생기자, 이에 대해 농담을 하기도 했다. 150명이 넘게 사망한 압사 사태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자리였으며, 장관과 구청장이 구설에 오른 발언을 사과한 당일 벌어진 일이었다. 

세월호 참사 때와 닮은 지금 상황
 
 1일 오후 '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국화와 메모가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주변을 가득 메웠다.
ⓒ 이희훈
 
워싱턴포스트, BBC, CNN 등 외신은 일제히 "경찰 당국의 안전 관리가 부재했으며, 막을 수 있는 참사였다"라고 일제히 지적한다. 미국 블룸버그 통신에 실린 칼럼 <핼러윈 참사는 아주 인기 없는 지도자에 대한 시험이다>에서는 이태원 참사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대응을 박근혜 정부의 세월호 참사 대응과 비교하기도 했다. 그러고보니 참사 당시 '밀어! 밀어!'를 외친 남성들, 그리고 상점 문을 걸어잠근 사람을 발본색원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 역시, 세월호 참사 이후 유병언 일가를 주범으로 몰던 풍경을 닮았다.

수많은 언어와 불신이 나부끼는 동안, 윤석열 대통령은 11월 5일까지 '도어스테핑(출근길 문답)'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국민들이 가장 많은 대답을 듣고 싶어할 때, 스스로 마이크 뒤로 숨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국가 애도 기간은 말보다는 고개를 숙이는 애도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는 대통령의 의중을 설명했다. 그러나 그 말은 틀렸다. 위정자들은 고개를 숙이면서도, 시민의 물음에 응당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말을 하기 위해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대통령이 누구였든, 집권 세력이 누구였든 이 기준은 변하지 않는다.  

지금은 '글씨 없는 검은색 리본'을 착용하라는 공문을 보낼 때가 아니다. '우리가 미안하다'라며 고개를 숙이는 어른을 보고 싶다.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어른들의 추모는 공허하다. 때로는 탈정치적인 시도가 철저히 정치적이다. 지금 이 순간, 참사를 가장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이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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