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물' 아소 다로의 격에 맞지 않는 방한... 왜?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기자]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15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강제징용(강제동원) 협의를 가속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아소 다로 자민당 부총재가 2일 한국을 방문한다고 1일 자 <산케이신문>이 보도했다(관련 기사: 아소 일 자민당 부총재, 오늘 방한 "윤 대통령과 면담 조율" http://omn.kr/21fwb).
제목이 '[단독] 자민 아소 다로 씨 2일 방한, 대통령과 회담(<独自〉自民・麻生太郎氏が2日に訪韓 大統領と会談へ)'인 이 기사는 여러 명의 자민당 관계자들을 인용해 "아소 씨는 윤씨와 함께 이른바 징용공 문제에 관해 논의하고, 압류된 일본 기업 자산의 현금화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일본 측의 입장을 거듭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보도했다.
▲ 2020년 9월 16일 일본 도쿄의 총리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아소 다로 일본 재무상 겸 부총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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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히 이례적"
그런데 방한 목적이 강제징용 논의라고 하지만, 아소 다로 부총재가 실무 협의를 위해 방문한다고 보기는 당연히 힘들다. 그가 이 문제로 한국에 오는 것 자체가 그렇게 자연스럽지 않다.
<산케이신문>보다 2시간 반 뒤에 나온 <도쿄신문> 기사 '자민당 아소 부총재 2일 방한, 징용공 둘러싸고 윤씨와 회담 조정(自民党の麻生副総裁、2日に訪韓 徴用工巡り尹氏と会談調整)'은 복수의 정부 및 자민당 관계자를 인용해 이번 방한 사실을 보도하면서 "당 중진인 아소 씨가 방한해서 정부 간의 현안 해결을 향한 역할을 짊어지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라고 평했다.
아소 다로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보다 13년 빠른 1940년에 출생했다. 일제 침략전쟁 중에 출생했기 때문에, 할아버지 기업인 아소탄광이 한국인 약 8천 명을 강제징용해 노예노동을 시킬 당시에 유년 시절을 보냈다. 33세 때인 1973년부터 6년 동안은 아소그룹의 핵심 사업체인 아소시멘트 사장을 역임했다. 전범기업과 인연이 깊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아소 다로는 기시다 자민당 총재보다 직급이 낮지만, 나이도 많을 뿐 아니라 경력도 훨씬 많다. 아소시멘트 사장을 그만둔 1979년부터 국회의원선거에서 14선을 기록한 아소는 경제기획청 장관(1998년),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정책위 의장, 2001~2003), 외무대신(2005~2007), 총리 겸 자민당 총재(2008~2009), 부총리 겸 재무대신(2012~2021) 등을 역임했다.
여기다가 아베 신조 피격 당시 국회의원 49명을 보유한 제3파벌의 리더다. 당시 기시다파는 아소파보다 다섯 명 적었다. 소수파 리더인 기시다 총리는 아소파의 협력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기시다가 아소에게 한국에 가서 구체적 협의를 하라고 심부름을 시킬 처지에 있지는 않다. 일본 언론들은 그가 징용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방한한다고 하지만, 구체적인 협상을 염두에 두고 오는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렇다고 그가 대략적인 가이드라인을 논의할 목적으로 방한한다고도 볼 수 없다.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입장이 공식 정리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 문제에 관한 두 정부의 가이드라인은 정해져 있는 듯하다.
지금까지의 행보로 봤을 때 윤 정부 역시 기시다 내각과 마찬가지로 '전범기업의 한국 자산이 법원 강제집행을 통해 현금화돼서는 안 된다'는 데에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현금화는 절대 안 된다는 점에 관한 한 두 정부의 기본 태도는 같다고 볼 수 있다.
미쓰비시 및 일본제철 자산의 현금화 문제는 한국 사법부 소관이지만, 한·일 두 정부는 한국 사법부의 독립적 판단을 견제하고 있다. 우리 대법원 역시 방침을 명확하게 표명하지 않고 두 정부의 직·간접적 압력하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윤 정부는 전범기업의 불법행위 책임을 한국이 대신 부담하는 묘안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압류된 자산이 현금화되지 않도록 하되 전범기업이 어느 정도로 성의 표시를 하도록 할지 고민하는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 언론들은 아소 다로가 현금화는 안 된다는 뜻을 재차 강조하기 위해 방한한다고 하지만, 윤 정부 역시 이미 그런 인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방한 목적이 현금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라고는 볼 수 없다. 구체적인 실무 협상을 위한 방한도 아니고 '현금화는 안 된다'는 가이드라인을 정하기 위한 방한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82세의 아소 다로 부총재가 격에 맞지 않게 방한하는 것은 한국에 관한 입장을 정리하기 전에 외무성 차원이 아닌 자민당 차원에서 윤 정부의 의지를 재확인하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 동해, 한미일 대잠전훈련 한미일 대잠전 훈련에 참여한 전력들이 9월 30일 동해 공해상에서 기동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 앞쪽부터 미국 원자력 추진 잠수함 아나폴리스함, 미국 원자력 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함, 한국 구축함 문무대왕함, 일본 해상자위대 신형 준이지스급 구축함 아사히함, 미국 이지스 구축함 벤폴드함, 미국 유도미사일순양함 챈슬러스빌함. [일본 방위성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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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 군사협력 가속화
윤 정부가 확실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민당 부총재가 윤 정부의 의지를 재확인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번 방한의 또 다른 목적인 한·일 군사협력 혹은 한·미·일 군사협력과 관계가 있다.
기시다 내각과 자민당은 한·일 현안이 어떻게든 빨리 봉합돼 북한·중국 견제를 위한 삼국 협력이 본격 가동되기를 희망하는 백악관의 의중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일본 자신도 북한과 중국의 군사적 팽창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윤 정부가 징용에 관한 결정을 내리기 전인데도 한·미·일 군사협력 가속화에 착수할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일본 입장에서는 징용에 관한 윤 정부의 최종 방침을 확인한 뒤에 한국군과 자위대의 군사협력을 강화하는 게 최선책이다. 만약 한국군과 자위대의 군사협력이 지금보다 발전된 단계로 들어선 이후에 한국 대법원이 현금화 결정을 내리게 되면, 기시다 내각은 일본 관점에서 '외교 참사' 같은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그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아소 다로를 보내 윤 대통령의 의지를 재차 확인하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피해자들을 어떻게 설득하고 어떤 명목으로 금전을 지급할지는 한국 정부의 소관인데다가 한국 여론동향에 따라 향후 상황이 가변적이기 때문에 기시다 내각이 이 부분에 대한 예측을 토대로 한국에 관한 입장을 정리하는 것은 성급하다.
따라서 지금은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외교 참사'를 예방하기 위해 윤 정부가 현금화를 확실히 막아줄지 확실히 해두는 것이 일본 입장에서는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탄도미사일 및 방사포를 연이어 발사하는 북한의 군사행동이 강제징용에 관한 일본의 입장을 이처럼 다급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기시다 총리 입장에서는 자파 인사가 아닌 당 원로가 한국 방문을 통해 내린 결론을 기초로 향후 방침을 정한다면 정치적 부담을 덜 수도 있다. 윤 대통령을 만난 아소 다로의 느낌과 판단이 자민당의 입장 정리에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에, 기시다 총리로서는 향후 있을지 모를 '외교 참사'로 인한 부담도 어느 정도는 덜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아소 다로에게 어떤 답을 줬는지는 아소가 돌아간 뒤에 일본 정부와 자민당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G20 정상회담장에서 기시다 총리가 윤 대통령을 어떻게 대하는지 등으로 대략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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