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전공하고 '씨앗'을 지키는 이 사람, 그 이유가

최미향 2022. 11. 2.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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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토종씨앗지킴이 유일순 대표

[최미향 기자]

▲ 토종씨앗지킴이 유일순_대표 .
ⓒ 최미향
1일, 서산에서 공예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면서 씨앗지킴이 여전사 유일순씨를 만났다. 사라지는 토종 씨앗에 대한 안타까움이 그녀를 지킴이 활동가로 만들었다고 했다.
 
- 씨앗을 지킨다는 것이 참 생소하다. 혹시 농촌이 고향이었나. 

"내 고향은 서산시 음암면 부장리 농촌 마을이다. 유년시절은 내게 추억이 많은데 특히 할머니와의 기억이 아직도 뇌리에 많이 남아있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며칠 전부터 어머니와 우리 형제들을 부르시더니 씨앗들이 보관되어 있던 바구니며 상자, 그것도 모자라 곳간 열쇠까지 내주셨다. 그리곤 낮잠을 주무시러 들어가시는게 마지막이 됐다.

귀하디 귀한 곳간 열쇠와 씨앗은 집안 큰 어르신의 보물이었는데 당신이 돌아가실 걸 알고 미리 주고 떠나신 걸까? 지금이야 돈만 주면 종묘시장에서 얼마든지 살 수 있는 씨앗, 이제는 할머니가 애지중지했던 씨앗들이 영혼 빠진 물건이 된 듯하여 씁쓸하다."

- 유년시절 특별히 기억나는 일들이 있는지.

"농촌의 일상은 늘 분주하다 보니 아이들에게도 농사일이 주어졌다. 지금은 달래 망을 깔고 심으니 예전처럼 일일이 손으로 주울 일은 없지만, 그때는 어린이들 손마저도 아쉬웠다. 달래 수확, 고구마·감자 캐기, 동부랑 녹두 따기, 깻대 털기 등등 정말 지겹고 따분한 일들이 산적해 있었다.

도망가다 혼나기 일쑤였던 그 시절, 하지만 농사일에 낫을 처음 사용하게 된 중학교 시절에는 벼 베는 것을 허락받고 논을 미로로 만들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목화밭에 들어가 영글지도 않은 목화 열매를 따 먹기도 했고, 콩 가지 꺾어 모닥불에 구워 먹으며 놀기도 했다. 이런 유년 시절의 생태 감성, 그때의 맛과 즐거움을 우리 아이들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컴퓨터가 친구이자 놀이인 요즘 아이들의 건조한 유년 시절이 안쓰럽다."
   
▲ 공예디자인을 전공한 유일순 대표 .
ⓒ 최미향
 
- 현재 씨앗을 이용하여 작품 활동을 하면서 토종씨앗지킴이 활동을 하고 있다. 계기가 있는지.

"농업에 종사하며 생물 다양성 보존 및 농촌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되면서 토종 씨앗 지킴이로 활동하게 됐다.

대학에서 미술(공예)을 전공하고 도시에서 관련 직장에 다니다 다시 농촌으로 돌아왔다. 도시에는 즐거움이 가득하지만 뭔가 모를 그리움 때문에 늘 고향이 그리웠다. 하지막 막상 농촌으로 돌아오니 전공을 살려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부득이 미술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됐다.

30대에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면서 토종씨앗 지킴이가 됐다. 식사시간이 힘들었다. 채소를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채소를 먹이기 위해 방방거렸고, 그러다 보니 공부를 하면서 채소소믈리에가 됐다. 다양한 채소와 과일을 접했는데, 특이한 외국 농산물은 직접 재배하며 자료를 찾고 기록을 해나갔다.

정말 소중한 우리의 씨앗들이 지역에서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과 인연이 됐다."

- 토종씨앗 지킴이를 하면서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을 것 같다. 이 일을 지속하는 이유는?

"처음에는 우려하는 사람도 많았다. '평생 땅과 함께 살아온 농부들도 농사를 접는 판국에 무슨 희망이 있다고 다시 오냐?' 하지만 개의치 않고 서산 토종 씨앗 지킴이로 사라져가는 텃밭 생물 다양성 보존과 가치 전달 활동이 시작됐다. 벌써 7년째다.

토종 씨앗은 오래전부터 우리 땅에서 나고 자란 제철 농산물의 종자를 뜻한다. 이것은 한번 멸종되면 많은 예산과 노력을 기울여도 다시 살릴 수 없다. 토종이 사라지면 그 씨앗과 식물을 먹고 살던 우리 민족의 음식 문화와 생물 다양성 또한 사라진다.

우리의 씨앗이 후대에 이어지기 위해서는 토종 씨앗이 사라지기 전에 지켜내고 보존하여 확산시키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게다가 지금 세계는 종자 전쟁 시대로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기후변화와 식량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토종 씨앗을 지키는 일이라 생각한다."
 
▲ 토종씨앗 .
ⓒ 최미향
 
- 그래도 많이 힘들었을 텐데 어떤가?

"많이 힘들었다. 우선 돈을 버는 직업이 아니라 돈을 쓰는 직업이었기에 경제적 어려움이 있었고, 그러다 보니 뜻이 좋아 함께하던 사람들도 경제활동을 위해 떠나게 됐다. 그래도 잘 버텨나갔다.

어느새 나의 일부가 되어 버린 토종씨앗. 이제는 가족들과 친구들, 부모님까지도 이해하고 응원해 준다. 함께하는 사람들도 다시 생겼다. 혼자서는 두려워 주저하던 일을 여럿이 함께하니 용기가 생겨 도전하게 됐다. 토종 씨앗을 활용한 소득 증대와 토종 씨앗 소비 확산을 위한 사회 서비스 제공을 위해 '씨앗 토리' 법인을 설립했다. 경제활동과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한다."
 
▲ 씨앗토리 캐릭터 .
ⓒ 최미향
 
- '씨앗 토리'라는 명칭이 상당히 귀엽다. 어떤 뜻이 담겨있고 어떤 일을 하는지.

"작지만 지구를 살리는 씨앗을 심는 사람들로 어린이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씨앗 토리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씨앗 토리는 씨앗처럼 작지만 야무지고 옹골찬 이를 뜻하며, 채소와 과일을 좋아하는 토끼(토끼띠 팀원들)와 씨앗에서 싹이 나오는 이미지를 합성한 캐릭터다. 토종 씨앗을 활용한 지역 농민 소득과 생애주기 맞춤형 생태전환 체험 서비스 제공, 생물 다양성 보존 및 증식, 종자 주권 보호, 자연농법 실현 등을 위한 사업 홍보 활동에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체험 서비스, 토종 씨앗 관련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많은 봉사활동과 공모사업에 도전하며 생애주기 맞춤형 프로그램을 구성하였고 현재 실행 중이다. 처음에는 우리 아이들과 연관된 어린이집이나 학교를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시연하며 피드백을 받고 만족도 조사로 사업 실현 가능성을 알아보았다. 아이들이나 학부모 그리고 선생님들께서 높게 평가 해주시는 덕분에 지속적 계약으로 경제활동이 시작되었고 사업 확장으로 법인을 설립할 수 있게 되었다."
   
▲ 토종씨앗 실태조사 .
ⓒ 최미향
   
- 서산시 토종자원(씨앗) 실태조사를 2016년 시작했다. 어땠나?

"토종 씨앗 수집의 시작은 한국 토종작물자원 도감 저자 안완식 박사님과 인연 때문이다. 공부를 하며 전국씨앗도서관협의회에서 박영재 대표님과 광명씨앗도서관 양인자 대표님의 도움을 받아 서산시 토종자원(씨앗) 실태조사를 2016년 시작했다.

민간에서 추진하는 것이라 오해도 많이 받았다. 어르신들이 사기 치는 것으로 오해해 신고가 들어갈 뻔한 일도 있었다. 얼굴을 마주하게 되니 일면식이 있는 분이라 무사히 넘어갔던 일이 생각난다.

국가에서 추진할 일을 왜 민간이 조사하고 다니냐는 물음에 한참을 이야기하게 됐다. 그때만 해도 토종 씨앗이 국가나 지자체에서 관심 가는 대상이 아니었다. 타지역도 마찬가지로 국가에서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에서 사려져 가는 씨앗들을 수집하고 자료를 모으는 일들을 하고 있었다.

지금은 서산시 농업기술센터 지원사업으로 토종씨앗실태조사를 이어 나가고 있다. 지자체가 함께하다 보니 오해는 사라졌고 지금은 농업인 상담소를 통해 이장님들께 내용이 전달되어 (농가에) 찾아뵙는 것이 덜 두렵다."
 
▲ 채종포 .
ⓒ 최미향
 
- 토종 씨앗이 경제활동에 도움은 되는지?

"경제활동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슬프다. 쌀값도 유지되기 힘든 상황에 농민들이 지쳐간다. 쌀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 우리나라 식량자원이 문제가 되고 있다. 요즘 TV를 보면 공익광고로 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귀 담아 듣지 않는다.

요즘은 아파트에 도마 소리나 반찬 만드는 냄새가 사라졌다. 예전에는 어디서 구수한 밥상을 차리나 궁금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식사 시간이 되면 배달 오토바이를 많이 보게 되면서 밥상 냄새를 느낄 수 없게 되었다. 가정에서 조리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음식 문화가 바뀌며 쌀 소비, 토종 먹거리, 전통음식, 가정마다 특색 있는 레시피 또한 사라진다."

-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에게 씨앗은 작지만, 생명의 근원이고 우리의 미래가 달린 위대한 유산이며, 농촌을 지키는 버팀목이다. 우리의 삶에서 토종 농산물이 사라진 미래는 어떤 방향으로 이어질까?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토종 씨앗의 이름을 불러주는 작은 관심부터 시작하여 인연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 유아활동놀이 .
ⓒ 최미향
   
▲ 토종씨앗 나눔 .
ⓒ 최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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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서산시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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