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노동하는 상담사, 어디에서 상담받아야 하나요?

신재용 2022. 11. 2. 11:2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일하는 교육공무직 노동자를 만나다 ⑦-2] 홍천 양덕중 최윤미 상담사

[신재용 기자]

*이전 기사에서 이어집니다(관련 기사: 학교 안에서의 힐링과 치유, 언제나 열린 상담실로 오세요! http://omn.kr/21dls).

감정노동이란 통상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무관하게 직무를 해야 하는 감정적 노동을 말한다. 긍정적인 감정으로 고객을 상대하는 서비스 직종이 대표적이지만, 카지노 딜러나 경호원, 경비원처럼 중립적이거나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야 하는 노동자도 감정노동자다. 전문상담사 역시 자신의 감정과 관계없이 내담자에게 공감하고, 격려해야 하므로 감정노동자다. 감정노동은 정신적 스트레스나 우울증을 유발하기도 하는데, 이를 풀 방법이 필요한 게 일반적이다.

전형적인 감정노동자... "내담자 학생이 느끼는 어려움, 상담사가 그대로 느끼기도"
 
 최윤미 선생님이 학생에게 받은 엽서. 최윤미 선생님은 학생들이 상담으로 도움을 받았다고 할 때 뿌듯함을 느낀다.
ⓒ 신재용
  
- 상담할 때 듣는 사람은 그만큼 감정적으로 소진되거나 힘들 것 같습니다. '감정노동'을 하신다고 생각되는데, 어떤가요?

"상담은 (내담자가)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올 때부터 시작이에요. 단순히 학생을 맞이하는 게 아니라, 어떤 모습으로 문을 열고 들어오는지부터 봐요. 그 아이의 언어적, 비언어적 표현에 주의를 기울이죠. 본인이 의식하지 못하는 비언어적 표현을 관찰해요. 시선을 두는 곳, 음성의 크기, 말의 리듬이나 속도 등으로 감정이나 기분 상태를 파악하죠. 어떤 마음으로 말하는지, 대화를 논리적으로 이끌어가는지도 보고요. 단순히 웃으면서 아이를 맞이하는 게 아니라, 오감이 그 아이에게 모두 집중돼요. 내담자가 느끼는 어려움을 상담사가 그대로 느끼기도 해요. 감정이입이 되는 거죠.

자기 어려움을 끊임없이 말하는데, 중간에 멈추게 할 수가 없어요. 상담을 두 시간 반 동안 한 적도 있어요. 학부모 상담이었는데, 중간에 울기도 하고, 추스르고 웃기도 하고요. 학부모들은 올 수 있는 여건이 잘 안 되다 보니, 한 번 왔을 때 모든 것을 다 이야기하려고 해요. 시간이 길어도 다 들을 수밖에 없죠.

상담을 하루에 한 건만 하진 않아요. 대여섯 건 한다면 (시간을) 조절한다고는 하지만 잘 안 되면 하루 내내 상담할 때도 있어요. 그러면 녹초가 되죠. 내담자는 계속 바뀌는데, 저는 (마음을) 환기하지 못하고 내담자를 맞이하죠. 직전에 만난 친구의 어려움이 나에게 남아 있는데, 그 상태에서 다른 내담자를 만나는데 굉장히 힘겹죠.

심리적 소진이라는 건 상담자만이 느끼는 거라, 어떻게 잘 표현하기가 어렵네요. 여기서 더 나아가면 제가 치료받아야 하는 상태가 되죠. 슈퍼비전을 계속 받는 이유 중 하나가 자기 진단을 받기 위해서죠. 내담자 사례뿐 아니라 상담사 자신의 어려움도 상담받죠. 저도 작년에 여섯 번 받았어요. 슈퍼비전을 받을 수 있는 비용이 예산에 책정돼 있긴 한데, 한도가 있어요. 1년에 한두 번 정도. 나머지는 사비로 하죠.

힐링연수(기자 주 :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업무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하는 연수)도 정말 필요하죠. 최근에 노동조합이 단체협약을 체결했는데, 방학 동안에 자율연수를 부여하고, 안 된다면 힐링연수를 달라고 요구했는데 안 됐어요. 다만 힐링연수는 공공기관에서 예산으로 지출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기도 해요. 관련 연수가 많이 줄었고, 엄격하게 감사한다고 알고 있어요. 그래도 우리는 상담업무의 특성이 있으니까 하자는 거지, 놀자고 하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관리자들은 이해를 못 하죠. 상담사에 대한 이해도가 없어요. 어떤 장학관은 '애들하고 놀면서 뭐가 힘들다고 그래?'라고 했어요. 시설 좋은 곳에 (상담사) 혼자 있으면서 애들과 논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고 봐요. (그렇게 상담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사람들과 교섭하는데, 여러 요구가 수용되겠어요?

'지금도 많이 누리고 있으면서 또 누리려고 한다'라는 시각으로 우리를 보는 거죠. 사서에게 '너는 책만 읽으면 되는데 뭐가 힘들어?'라든가. 실제로는 누린 것도 없고, 학교에서 중요한 일도 많이 하는데요."  

- 상담사 1명당 몇 명 정도의 학생들을 맡고 있나요? 많은 인원을 맡으면 힘들 것 같은데요.

"중학교는 100명 이상, 고등학교는 200명 이상, 초등학교는 300명 이상에 상담사 1명이 배치기준이에요. 큰 학교는 학생 수가 1000명이 넘는데 상담사 혼자 근무하기도 해요. 그만큼 상담이 많을 테니 힘들죠. 학생 수가 적은 학교에 있는 상담사가 덜 힘든 건 아니에요. 순회 상담을 하거든요. 배치기준에 맞추기 위해 인근 학교도 같이 담당하죠. 저도 주변 초등학교 세 군데를 순회 다녀요. 특히 제가 다니는 곳은 한부모 가정이나 다문화 가정 비율이 높은 지역이라 상담이 많아요. 사람 수가 적어도 자주 갈 수밖에 없죠. 반대로 상담사가 상주하지 않는 학교는 상담 기회가 그만큼 줄어들겠죠."

상담 전 준비와 상담 후 기록 및 관리가 무시되는 현실 아쉬워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상담 예능 프로그램들이 많아졌다. 사회가 바뀌면서 자신의 감정을 되돌아보는 사람이 많아졌고, 심리 상담이나 정신 건강에 관한 관심이 커졌다. 상담받는 사람은 한 명이지만, 그 한 명 한 명을 수없이 만나는 상담사의 상담 노동에도 관심이 필요하다. 사진은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의 한 장면.
ⓒ MBC
 
- 학교라는 곳의 특성상 담임 선생님이나 학부모와의 연계, 공문처리 같은 부차적인 행정 업무도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업무량은 어느 정도인지요?

"보통 순회 상담도 하고, 또래 관계가 중요하다 보니 (학생들이) 상담사인 저에게 오기 전에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기도 해요. '또래 상담자'라고 해서, 또래를 상담해줄 수 있는 학생들을 모집해서 동아리를 운영하기도 하고요. Wee클래스 홍보, 행사, 캠페인도 하고요. 홍천의 유관기관(청소년 상담복지센터, 청소년 수련관, 정신보건센터, Wee센터 등)과 프로그램을 공동 진행하기도 하죠.

행사를 열면 눈에 보이는데, 상담은 눈에 보이지 않아요. 상담이 한 번에 끝날 때도 있지만 여러 번 하기도 하고요. 학생이 변화할 수 있게끔 도와야 하니까 학생을 만나기 전에 준비를 해야 해요. 상담이론과 기법을 다시 점검해야 해서, 늘 공부하고 연구해야죠.

상담을 진행했다고 끝이 아니에요. 상담 회기록을 작성해야 해요. 녹취했다면 상담이 끝난 뒤 상담 기록을 모두 정리해야 하고요. 축어록(기자 주 :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에 오간 상담 내용의 음성녹음이나 비디오 녹화를 문자화한 것)을 만드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죠. 심리 검사를 했다면 결과를 정리해서 보고서를 만들어야 하고요. 이렇게 내담자를 한 번 만나면 부차적인 업무에 여러 시간이 소요돼요. 그런데 연말에 상담 결과를 보고할 때는 몇 번 상담했는지 숫자로만 기록돼요. 제가 (상담 전에) 두 시간 가까이 준비하고, (상담 끝나고) 회기록 남긴 것은 없어지고, 학생을 만난 그 시간만 기록에 올라가죠. 억울하죠, 상담 실적이 숫자로만 표현되고 그 과정이 무시되니까요(웃음).

Wee센터라는 기관에서도 근무했는데요. 거기 근무하는 동안은 일주일에 3, 4일은 야근했어요. 학교에 순회 나가서 상담하고, 센터에 찾아오는 내담자와도 상담하고, 센터에서 하는 여러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했으니까요. 그렇다고 학교가 야근이 없는 건 아니고요. 특히 학부모와의 상담은 어쩔 수 없이 야근이 되죠. 대부분 직장에 다니셔서 퇴근 후에 만나야 하니까요."

- 상담실에서 학생과 단둘이 있게 되는 경우가 있을 텐데요. 혹시 위험했던 경험은 없었는지요? 

"(조금) 무서웠다고 할까요. 중학교 3학년 남학생 정도면 성인과 비슷하고, 저보다 훨씬 큰 남학생들도 많아요. 어떤 학생이 친구랑 싸웠나 봐요. 흥분된 상태로 문을 열고 들어왔어요. 흥분 상태로 언성을 높여서 이야기하니까 내심 무섭죠. 그래도 상담사로서 아이의 마음을 읽어줘야 하니 겉으로는 아이가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리드했죠.

들었던 사례는 자살 징후가 있는 학생이 날카로운 도구를 갖고 있었는데, 그걸 꺼내서 휘두르는데 상담사가 아이를 막다 보니까 날을 손으로 잡은 거예요. 상해를 입었죠. 그분은 트라우마가 엄청나게 컸어요.

상담실은 방음장치를 하고, 방음벽으로 만들어져요. 바깥에서 들리지 않고 비밀을 보장하게 끔요. 이 안에서 어떻게 될지 모르기도 하죠. 그래서 안전벨을 설치하는 게 의무예요." 

- 상담사로서 가장 뿌듯했을 때는 언제인가요?

"이번에 (학생에게서) 받은 엽서가 하나 있는데요. 상담받은 친구가 감정이 다시 차분해졌다고 해요. 상담으로 도움받았다고 느끼는 이때는 뿌듯하죠. 친구랑 싸워서 그 친구가 너무 보기 싫다고 하는데, 그 감정은 내가 갖는 거잖아요. '본인 스스로 감정을 담고 살면서 힘들어하는 게 좋아 보이지 않는다', '굳이 그 친구 때문에, 그 친구가 원인인데 왜 본인이 고민하고 가슴앓이를 하느냐'는 식으로 이야기를 해줬죠."

- 가장 힘들 때는 언제인가요? 혹은 바라는 점을 말해주셔도 좋습니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어설 수 없어요. 상담도 마찬가지예요. 상담사의 역량에 따라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상담 서비스의 질이 달라져요. 한 사람이 채용되면, 그 사용자는 기본적으로 임금과 복리후생, 업무를 할 수 있게 직무연수는 필수적으로 체계를 갖춰서 제공해줘야 해요. 자기 연수, 자기 학습, 슈퍼비전 같은 부분이 미약합니다. 역량을 강화하는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교육청에서 제공하지 않으면 내 돈 들여서 연수받으러 다닐 수밖에 없어요. 올해는 교육청에서 직무연수를 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했어요. 노조 담당자와 같이 교육청 면담도 했는데, 이런 연수가 안정적으로 진행되지 않아요. 만족스러울 정도로 직무연수를 시켜줄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정기적인 연수가 있어야죠. 연수를 해도 선착순으로 해서 전체를 수용하지 못하기도 하고요. 특히 코로나19 이후로는 연수가 없어져 버렸죠."

- 마지막으로 이 기사를 볼 분들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학교 안에는 학생을 위해 노력하는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중에는 (교원도, 공무원도 아닌) 교육공무직 노동자들이 있음을 살펴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노동과 세계>에도 게재됩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