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의 명백한 실패" 외신들이 이렇게 말하는 까닭

신상호 2022. 11. 2.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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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 저버리고, 책임 회피하고, 변명 일관한 정부... 외신 비판 쏟아져

[신상호 기자]

 한덕수 국무총리가 1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이태원 사고 외신 브리핑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 유성호
 이태원 압사 참사를 전하는 해외 언론들의 매서운 펜대는 모두 한국 정부를 향하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긴급하게 외신 브리핑을 여는 등 진화에 나섰지만, 외신들의 비판은 멈추지 않고 있다. 해외 언론들이 매섭게 한국 정부를 몰아붙이는 논점들은 간단하지만 명확하다.

[비판 1] 정부가 사고를 막아야 했다

'할로윈 같은 이벤트 기간 동안 인파를 통제하는 것은 정부의 의무'

이는 이태원 참사를 보도하는 다수 해외 언론들이 공유하는 관점이다. 지난 1989년 영국에서 벌어진 힐스버러 스타디움 압사 참사의 근본적인 원인이 '정부의 무능'으로 드러난 것과 같은 맥락에서 보고 있다. 영국 BBC는 사고를 막을 수 없었다는 정부의 해명을 거듭 비판하고 있다.

BBC는 지난 1일 경찰이 수차례 112 신고를 접수했음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사실을 지적하면서 "드러난 증거와 정부의 공식 사과는 확연한 실패(glaring failures)를 가리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BBC는 참사 전 용산구청과 경찰 등이 두 차례 회의를 열었지만, "인파 통제 문제를 제기하거나 논의했다는 증거는 없다"며 정부 책임을 추궁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도 "행사를 앞둔 용산구청 대책에는 인파 통제 노력이 포함되지 않았다"며 "전문가들은 공공장소에서의 대규모 집회를 통제하는 국가 정책의 한계를 강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시민들은 정부 기관이 올해 인파 급증을 예상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영국 <로이터>는 이태원 압사 참사를 '실패한 재난 대응'이라고 규정했다. <로이터>는 "실패한 재난 대응은 다른 한국 지도자에게는 정치적으로 치명적인 것이 입증됐다"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이번 참사로 인해 심각한 정치적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압사 참사 현장에 국무위원들과 방문해 헌화하고 있다.
ⓒ 이희훈
 
[비판 2] 행사 주최자가 없었다? 납득할 변명 아니다

이번 이태원 압사 참사에 대한 정부 해명은 '행사 주최자가 없어 통제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이런 정부의 해명은 국민들은 물론 외신기자들조차 설득하지 못했다. 지난 1일 한덕수 국무총리의 외신 브리핑에서도 이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진 매킨지 BBC 기자는 한 총리에게 "그날 행사 주최자가 없다는 것을 안다"며 "그러면 어떤 공공기관이 안전에 대한 책임을 지는가, 궁극적으로 누가 이태원 안전을 책임지나"라고 물었다. 스텔라 김 NBC 기자도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하는 사고에서 정부의 책임은 어디에서 시작하고 어디에서 끝나나"라고 지적했다.

이런 외신 기자들의 목소리는 기사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BBC는 "정부 당국은 누구의 탓으로 돌릴 수 없는 사고로 치부하고 있다"며 책임을 회피하려는 정부 태도를 비판했다. 이어 "한덕수 국무총리는 외신브리핑에서 주최자가 없는 사건에 대해 "사전 안전 관리가 어렵다"며 이 말을 되풀이했다"고 지적했다.

영국 <로이터>는 "한국 정부는 대규모 정치 집회를 관리해 온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서울 이태원 축제에는 중앙 조정 기관이 없었다"고 비판했다. 미국 <뉴욕타임즈>는 "한국에는 주최자가 없는 행사에 대한 안전 규정이 없지만 경찰은 사고 당일 이태원에 인파가 몰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라며 "그럼에도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AP 통신도 "정부가 이번 사고를 막을 수 있었는지, 그리고 수년 만에 다시 발생한 국가적 참사를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에 대한 국민적 의혹이 점점 커지고 있다"라고 전했다.

[비판 3] 책임 회피, 떠넘기기에 급급한 공공기관들

이번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혼선을 빚는 정부 해명과 대응은 오히려 여론을 악화시키고 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사고 직후 "(경찰이나 소방의 대응으로) 사고를 막기에 불가능했다는 게 아니라 과연 그것이 원인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라고 말해, 비판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논란이 가열되자 이 장관은 태도를 바꿔 뒤늦게 공식 사과했고, 경찰청장도 대응이 미숙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 장관은 당초 이태원 인파가 많지 않아 정상 수준의 경찰력을 배치했다고 했지만, 정부는 이후 137명의 경찰력을 충분히 배치했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사고 당일 이태원역 무정차 여부와 관련해 경찰청과 서울교통공사 측 해명이 엇갈리는 등 공공기관의 책임 회피 싸움도 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CNN은 "지난 일요일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태원에 인파가 비정상적으로 많지 않아 '정상' 수준의 보안 요원만 배치됐다(고 했다)"며 "한국 내 여론 반발에 직면하여 정부 당국은 월요일 밤 이태원에 약 137명의 인력을 배치했다고 말하면서 태도를 바꾼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헀다. 

BBC는 "경찰청은 인파가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서울교통공사에 이태원역 무정차를 요청했다고 밝혔으나, 공사 측은 사고 발생 후 1시간 뒤 공식적인 요청을 받았다고 반박했다"라며 "용산경찰서도 이태원상인연합회로부터 경찰 배치를 최소화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밝혔으나 상인회 측은 이를 부인하는 등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BBC는 또 "당국자들간 비난 게임이 계속되고 있지만 그날 밤 대부분 10~20대인 수백 명의 사람들이 비탈길에 모여드는 것을 그 누구도 막지 못했다는 사실은 여전하다"며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관료들의 행태를 비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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