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또 날았다…13년 8개월만에 근원물가 최고치로
7월 정점 찍었어도 5%대 고물가 현상 당분간 지속될 듯
유럽 에너지대란 우려로 석유 가격 변수…세계 곡물가격 급등 우려도 남아 있어
[아시아경제 세종=권해영 기자] 소비자물가가 다시 불안한 흐름을 보이고 있는 것은 경유나 등유 등을 비롯한 석유류와 외식 등의 개인서비스같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는 품목의 상승세가 거세서다. 통계 작성 후 12년만에 가장 큰 폭으로 오른 전기·가스·수도요금도 한 풀 꺾인 물가 상승률을 다시 밀어올렸다. 한 번 오르면 잘 떨어지지 않는 물가들이 고공행진 하면서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지수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치로 뛰었다.
◆근원물가지수 13년 8개월만에 최대폭 상승=2일 통계청이 발표한 '10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근원물가(농산물및석유류제외지수)는 107.47을 기록해 전년 동월 대비 4.8% 상승했다. 전월(4.5%) 보다 오름폭이 확대된 것은 물론 지난 2009년 2월(5.2%) 이후 13년 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근원물가는 계절적 요인, 일시적인 충격에 의해 영향을 받는 농산물, 석유류 관련 품목을 빼고 작성하기 때문에 물가의 장기적 추세를 보여주는 지표로 해석된다. 근원물가 중 하나인 식료품및에너지제외지수도 전년 동월 대비 4.2% 상승해 2008년 12월(4.5%) 이후 13년 10개월 만에 최대 상승폭을 나타냈다.
품목별로 살펴보면 전기·가스·수도요금이 지난달 23.1% 오르면서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10년 1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뛰었다. 도시가스가 36.2% 급등했고, 전기료와 지역난방비도 각각 18.6%, 34.0% 올랐다. 전기요금이 4분기부터 kWh당 7.4원, 주택일반용 도시가스요금이 지난달부터 MJ당 2.7원으로 인상된 여파다. 이에 따라 지난달 물가 상승률 5.7% 중 전기·가스·수도요금 기여도는 0.77%포인트를 기록했다.
공업제품과 개인서비스도 고공행진 중이다. 공업제품은 6.3% 올랐는데 이 중 석유류가 10.7%, 가공식품이 9.5% 뛰었다. 휘발유(-2.0%)는 하락했지만 경유(23.1%), 등유(64.8%)는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국제유가 오름세가 둔화되고는 있지만 1년 전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개인서비스의 경우 외식이 8.9%, 보험서비스료가 14.9% 뛰면서 6.4% 올랐다. 외식은 전월(9.0%) 대비 상승률은 낮아졌지만 생선회(9.2%), 치킨(10.3%) 등을 중심으로 오름세를 이어갔다. 공업제품과 서비스의 지난달 물가 상승률 기여도는 각각 2.20%포인트, 2.23%포인트로 집계됐다.
농축수산물은 전월 대비 5.2% 올라 전월(6.2%) 보다 상승폭이 둔화됐다. 이 중 농산물은 7.3%, 축산물은 1.8%로 전월(각각 8.7%, 3.2%) 대비 상승률이 낮아진 반면 수산물은 6.5% 올라 전월(4.5%) 보다 상승폭이 커졌다. 농산물 중 채소류의 경우 21.6% 상승해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5%대 고물가 이어질 듯=두달 연속 꺾였던 물가가 석달 만에 상승폭을 다시 확대하면서 5%대 고물가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물가 정점이 당초 정부가 예상한 10월 보다 석달 이상 앞선 7월이었을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지만, 5%대 높은 물가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미국의 고강도 긴축 및 환율 급등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 또한 물가 불안을 자극하고 있다. 경제주체들이 앞으로 1년간 물가 상승률을 내다보는 기대인플레이션율도 석달 만에 상승 전환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기대인플레이션율은 지난달 4.3%를 기록해 전월(4.2%) 대비 0.1%포인트 올랐다. 7월 4.7%로 역대 최고치를 찍은 후 하락했지만 3개월 만에 다시 오른 것이다. 미국의 고강도 긴축 및 환율 급등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도 물가 불안을 자극하고 있다.
어운선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농축수산물, 석유 등 공급측 상승요인의 경우 상승률이 낮아지는 반면 개인서비스 등 수요측 상승요인은 계속해서 오를 가능성이 있다"며 "물가 상승률이 6%대까지 올라가진 않겠지만 당분간 5%대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엄중한 상황임에는 큰 변화가 없다"고 내다봤다.
공급 측면에서 석유, 곡물 가격이 급등할 우려도 남아 있다. 겨울철 유럽을 중심으로 에너지 대란이 발생할 경우 석유류 가격이 다시 치솟을 수 있다는 점이 특히 우려되는 대목이다. 이에 더해 세계 곡물 가격이 또 다시 들썩일 수 있다는 점도 변수다. 앞서 러시아가 흑해를 지나는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 선박을 공격하지 않기로 한 협정 이행을 중단할 뜻을 내비친 것처럼 언제든 '식량 무기화' 카드를 꺼낼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협정 참여 중단 선언으로 멈췄던 흑해를 통한 곡물 수출이 재개되며 급한 불은 껐지만, 언제든 전 세계 곡물가격이 급등할 우려는 남아 있다.
세종=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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