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시작된 악몽' 카메룬, 월드컵 7연패 끊어낼까
[노성빈 기자]
'불굴의 사자' 카메룬이 카타르 월드컵 본선 무대에 올라온 과정은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알제리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 연장 종료 직전 통한의 실점을 허용하며 본선행이 물건너 가는 듯 보였으나 곧바로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리면서 8년 만에 본선에 오른다. '불굴의 사자' 저력이 위기의 순간 빛을 발한 것이다. 본선에 오른 카메룬 대표팀은 지독하게 이어진 월드컵 연패 사슬을 끊어내려고 한다.
지속되는 내홍, 카메룬의 본선행을 이끈 선수들
카메룬 축구대표팀이 전 세계에 알려진 것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이었다. 카메룬의 축구 영웅 로저 밀러를 앞세워 대회 개막전에서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를 1대 0으로 물리치면서 세계를 놀라게 한 것. 이어 콜롬비아와의 16강전에선 로저 밀러의 결승골로 승리를 거두고 아프리카 역사상 최초로 월드컵 8강 진출의 대업을 이룬다.(이후 2002년 세네갈이 8강에 오른다.)
이때를 기점으로 카메룬은 전성기를 내달린다. 2002년 한일월드컵까지 월드컵에 4회 연속 출전했는데 이는 현재까지 아프리카 대륙에서 역대 최다 연속 출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이어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2회우승(2000, 2002),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금메달, 2003 컨페더레이션스컵 준우승 등 2000년대 초반까지 아프리카 최강팀으로 군림한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이후 카메룬은 점점 쇠퇴의 길을 걷는다. 2006 독일 월드컵을 시작으로 2018 러시아 월드컵까지 4차례의 월드컵 중 두 번을 지역예선에서 탈락했고 2010, 2014 대회에서는 모두 3전 전패로 탈락하는 등 경쟁력을 잃었다.
이는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008년 준우승 외엔 단 한 번도 준결승에 오르지 못했고 2012년과 2013년엔 본선 무대조차 오르지 못했다. 카메룬의 쇠퇴와 함께 나이지리아를 중심으로 코트디부아르, 가나, 알제리, 세네갈 등이 아프리카 축구의 강호로 올라서게 된다.
카메룬이 쇠퇴의 길을 걷게된 데는 선수단 장악의 실패가 컸다는 게 중론이다. 외국인 감독을 선임했으나 브라질 월드컵 크로아티아전에서 거친 파울로 퇴장을 당하거나 경기 중 동료들끼리 몸싸움을 벌이는 등 감독이 이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서 성적까지 따라오지 않기에 이른다.
계속되는 혼란을 수습한 건 베테랑 선수들이었다. 2021년 카메룬 축구협회 회장으로 부임한 사무엘 에투는 팀의 가장 큰 문제였던 선수단 장악을 위해 리고베르트 송을 감독으로 선임하는 초강수를 둔다.
리고베르트 송은 선수 시절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오랜 시간 대표팀의 주장을 역임하며 카메룬의 전성기 시절을 보냈다. 화려한 클럽 경력과 더불어 대표팀에서도 여러 차례 우승을 경험한 레전드 선수 중 한 명이다.
반면 지도자로는 카메룬 23세 이하 대표팀 감독직을 역임한 것 외엔 경험이 일천한 초보 감독이었다. 그럼에도 송을 감독으로 선임한 것은 자국 레전드 출신 감독을 통해 선수들을 바로잡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하지만 기대보단 우려가 더 컸다. 실제로 알제리와 맞대결을 펼친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0대 1로 패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흘 뒤 맞이한 2차전에서 송 감독의 역량이 빛났다. 반드시 이겨야하는 경기에서 송 감독은 유기적인 전술변화를 바탕으로 경기를 주도해 나가면서 전반 13분 에릭 막심-추포모팅의 득점에 힘입어 경기를 연장승부로 끌고가게 된다.
여기서 카메룬의 저력이 빛났다. 연장후반 13분 알제리 리야드 마레즈에게 동점골을 허용하면서 합산스코어 1대 2로 뒤지게 된 카메룬은 이후 알제리의 노골적인 시간 끌기 작전까지 겹치며 그대로 무너지는듯 보였다. 그러던 연장 후반 추가시간 마지막 공격 기회에서 칼 토코 에캄비의 천금같은 역전골이 터진 카메룬은 결국 원정 다득점 원칙에 의거해 극적으로 월드컵 본선진출을 확정짓는다.
결과적으로 카메룬의 월드컵 본선행은 레전드의 합작품이었다. 에투 회장은 세간의 우려에도 경험이 일천한 송에게 대표팀 감독직을 맡겼고 송 감독은 이에 부응하는 결과물을 가져오면서 모두가 윈-윈 하게 된 것이다.
뚜렷한 스타플레이어 없는 카메룬, 카타르 월드컵에서의 목표는?
카메룬은 2000년대 초반 리고베르트 송을 비롯해 자크 송고, 카를로스 카메니, 사무엘 에투, 패트릭 음보마와 같이 이름값 높은 선수들과 유럽 빅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이 중심이 되면서 아프리카 강호로 군림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현재 카메룬은 그런 선수들이 손에 꼽을정도로 예전만 못한 상황이다.
가장 눈에 띄는 선수는 에릭 막심 추포-모팅과 뱅상 아부바카르다. 두 선수는 현 카메룬 선수단에서 유일하게 월드컵 무대를 경험한 선수들인데 이들의 존재는 국제무대 경험이 부족한 카메룬에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추포-모팅은 지난 알제리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 선제골을 터뜨리는 등 예선 3골로 카메룬의 월드컵 본선행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현재 독일 분데스리가 바이에른 뮌헨에서 활약하고 있는 그는 최근 소속팀에서 4경기 연속골을 터뜨릴 정도로 좋은 컨디션을 보여주고 있어 다가오는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기대하게 만들고 있다.
그와 공격을 이끌 아부바카르는 로저 밀러, 사무엘 에투의 뒤를 잇는 카메룬 최고의 스트라이커로서 단단한 피지컬과 스피드, 문전에서의 뛰어난 발재간이 장점이다. 여기에 올해 초 열린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선 8골로 득점왕에 오르는 등 높은 골 결정력을 보유하고 있어 카메룬이 득점을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선수다.
두 선수와 공격에서 호흡을 맞출 선수는 칼 토코 에캄비다. 알제리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종료 직전 결승골을 넣으며 카메룬의 월드컵 본선행을 이끌었던 그는 스피드와 탄력이 뛰어나 측면에서 안으로 파고드는 움직임이 상당히 뛰어나다. 여기에 한 박자 빠른 슈팅, 동료와의 콤비플레이에도 일가견이 있어 측면 공격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능력이 있다.
그리고 이번 대회에서 가장 활약이 기대되는 선수로는 잠보 앙기사가 꼽힌다. 이탈리아 세리에 나폴리에서 김민재와 한솥밥을 먹고 있는 그는 왕성한 활동량을 바탕으로 종횡무진 그라운드를 누비는 가운데 빠른 스프린트, 뛰어난 패스웍을 통해 중원에서 카메룬의 공격을 진두지휘한다. 아울러 프리킥 전문 키커로 나설 정도로 강력한 슈팅 능력도 갖고 있다.
그와 중원에서 호흡을 맞출 선수로는 전술 운용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사뮈엘 웅구에와 송 감독의 큰 신뢰를 받고있는 가엘 온두아가 나설 것으로 보인다. 두 선수 모두 수비보호와 인터셉트 능력에서 상당한 능력을 갖고있어 수비에 큰 도움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선수들이다.
수비에는 부동의 주전 센터백 마이클 은가두를 중심으로 장-샤를 카스트로가 센터백을 형성한다. 측면에는 빠른 스피드가 장점인 암브로이스 오용고와 콜린 파이가 좌우 수비를 맡을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누우 톨로가 왼쪽 수비의 주전으로 나설 가능성도 남아있다.
이들의 최후방에는 앙드레 오나나 골키퍼가 자리한다. 자크 송고, 카를로스 카메니에 이어 카메룬 골키퍼 계보를 이어가고 있는 그는 지난 2018-2019시즌 아약스의 UEFA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진출에 있어 상당한 활약을 펼쳤다. 뛰어난 반사신경을 활용한 세이브 능력이 장점인 그는 지난 2021년 2월 도핑테스트에서 양성반응이 나와 9개월 가량 출전하지 못했었던 과거가 있다.
그럼에도 올시즌 이탈리아 인테르 밀란으로 이적한 그는 부동의 주전이었던 한다노비치를 제치고 첫 시즌만에 주전자리를 꿰찼고 안정적인 플레이와 함께 좋은 폼을 보여주고 있어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기대하게 만들고 있다.
카메룬이 월드컵에서 활약을 기대할만한 선수는 추포-모팅과 아부바카르, 앙귀사, 오나나 정도라고 볼 수 있다. 나머지 선수들의 기량은 뚜렷하게 검증되지 않은 가운데 본선에서 활약을 기대하기엔 현격히 떨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카메룬의 카타르 월드컵 목표는 월드컵 본선 연패사슬을 끊어내는 것이다. 2002 한일 월드컵 독일전 0대 2 패배를 시작으로 2014 브라질 월드컵 브라질전까지 본선 7연패를 기록하고 있는데 16강 진출을 노릴만한 전력이 아닌 카메룬 입장에선 이것이 최우선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조편성이 만만찮다. 강력한 우승후보 브라질을 비롯해 공격력이 뛰어난 포르투갈, 이탈리아를 제치고 본선에 오른 스위스까지 어느 하나 만만한 상대가 없어 최소 무승부조차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자칫하면 이번 대회에서도 3전 전패가 충분히 가능한 조편성이다.
이러한 카메룬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기적이다. 이는 지난 아프리카 예선에서도 나타났는데 코트디부아르와의 2차예선 마지막 경기에서의 상대 수비실수, 알제리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종료 직전 결승골과 같이 카메룬에게 상당한 행운이 따랐는데 이와같은 일이 본선에서도 이어진다면 충분히 연패사슬을 끊어낼 수 있다.
어찌보면 G조의 행방은 카메룬이 쥐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카메룬이 월드컵 연패사슬을 끊어낼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관전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카메룬(Cameroon)
FIFA 랭킹: 43위
역대 월드컵 출전 횟수: 8회(1982, 1990, 1994, 1998, 2002, 2010, 2014, 2022)
역대 월드컵 최고 성적: 8강(1990)
역대 월드컵 전적: 4승 7무 12패
감독: 리고베르트 송(카메룬, 1976. 07. 01)
*카메룬 경기일정(한국시각)*
11월 24일 19:00 스위스, 알 와크라 알 자누브 스타디움
11월 28일 19:00 세르비아, 알 와크라 알 자누브 스타디움
12월 3일 04:00 브라질, 루사일 스타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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