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빵과의 이별 실패... 그러나 우리 가족에 남은 것
[이준수 기자]
▲ 그간 수집한 각종 포켓몬 아이템과 포켓몬 스티커 보관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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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포켓몬 스티커 120장을 모으기까진 엄청난 노고가 있었다. 줄을 서도 한 사람당 포켓몬빵을 하나씩밖에 팔지 않는 동네마트 규칙에 따라 딸과 난 비가 오나 태풍이 부나 정해진 시각에 나가 빵을 샀다. 다리도 아프고, 신발이 비에 젖는 강행군이었지만, 포켓몬 전국 버전 도감까지 수십 번 읽은 딸의 열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 나도 올해는 휴직 중이라 같이 따라나설 여유가 있기도 하고.
나 또한 어린 시절에 구버전 포켓몬빵을 적잖이 사 먹었다.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포켓몬의 종류와 스티커는 거의 변함이 없었다. 익숙해서 거부감이 적기 때문일까, 캐릭터를 미끼로 한 얄팍한 상술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얼마 하지도 않는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친구들은 다 즐기는데 우리 집만 안 된다고 하면 딸이 실망할까 봐 제지하지 않았다. 단 구입 횟수는 일주일에 한 번으로 제한했다.
'포켓몬 유니버스'에 발을 디딘 두 딸은 빵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도넛에서 아이스크림으로 덕질의 범위를 넓혔다. 물이 들어올 적에 노를 젓는 상업계의 대응은 실로 놀라웠다. 문구점에서도, 편의점에서도, 잡화점에서도 심지어 냉동식품에서도 귀엽게 팔을 벌린 피카츄와 잠만보를 볼 수 있었다.
피카츄만 보면 조건반사처럼 "백만 볼트! 츄우~!"를 외치는 우리 집 아이들은 피리 부는 사나이에 홀린 듯 물건을 집어 들었다. 생활비 지원 없이 자기 용돈을 사용해야 한다는 조건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이모에 이르기까지 주변의 친지들은 아이가 그토록 바라는 '포켓몬' 제품을 공수해줬다. 저출산 시대에 아이 한 명을 위해 여덟 명의 어른이 기꺼이 지갑을 연다는 '에이트 포켓' 신드롬은 바로 우리 집 얘기였다. 딸은 언제나 학교 옆 소형마트에서 포켓몬빵을 사 먹었다. 사장님은 매일 오후 2시에만 포켓몬빵을 팔았는데, 1인당 구매할 수 있는 개수가 1개로 제한돼 있었다. 학령기 인구가 많은 동네라 그런지 빵의 인기는 상상초월이었다. 30분 전부터 줄을 서도 못 사고 돌아서는 일이 속출했다. 다른 지역에서 슬슬 포켓몬 열풍이 식어가는 조짐이 보일 때에도 우리 동네는 굳건히 매진 신화를 이어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대기열이 줄어들더니 사실상 줄을 설 필요가 없게 됐다. 2시를 넘겨 마트를 찾아도 빵이 남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 빵 사는 날만 기다리는 딸은 원하는 종류의 빵을 살 수 있게 됐다며 방방 뛰었다. 그러나 내 마음은 복잡했다.
▲ 10월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SPC 본사 앞에서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이 SPC그룹의 계열사인 SPL평택 공장에서 끼임사고로 사망한 노동자의 추모 행사를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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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5일 SPC그룹 계열사 SPL 평택 제빵공장에서 20대 노동자가 소스 배합기에 몸이 끼어 사망했기 때문이다(포켓몬빵을 만드는 SPC삼립은 SPC그룹의 계열사다). 현장 검증이 마무리되지 않아 혈흔이 남았는 상황에서도 바로 옆 공간에서는 샌드위치 만들기가 계속됐다. SPC그룹은 사고를 당한 노동자의 장례식장에는 답례품 명목이라면서 '땅콩크림빵'과 '단팥빵'을 놓고 갔다. 회사의 규정을 따른 조치라고는 하나, 최소한의 공감과 존중이란 것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나와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불매운동을 전개했고, 그 여파가 포켓몬빵에도 미친 것이다.
나는 아이에게 그간의 사정을 설명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비록 초등학교 1학년이기는 하지만, 엄연히 구매권을 가진 소비자였다. 나는 요즘 왜 이렇게 포켓몬빵을 기다리는 줄이 짧아졌는지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러나 아이는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잘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포켓몬 빵을 만들던 사람이 죽은 거야?"
"아니 그런 것은 아닌데, 그 회사가 포켓몬빵 만드는 회사와 형제나 자매 사이나 마찬가지인 거야."
8세 아이에게 대기업의 그룹 구조와 지분, 계열사 시스템을 일목요연하게 전달하기란 상당히 곤란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나쁜 기업 물건은 팔아주지 말고, 대신 비슷한 제품을 파는 착한 기업 물건을 이용하자"로 설득 작업을 끝맺음했지만 아이는 여전히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다.
"다른 공장에서는 사람이 안 죽어? 나는 포켓몬이 너무 좋다 말이야. 다른 데에서는 안 판다고."
▲ 아이들의 용돈 지갑, 포켓몬 빵을 사는 돈이 들어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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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전을 바꿔 '장기전'에 돌입하기로 했다. 가정 생활비에서 지출하는 간식을 살 때 포켓몬빵 관련 계열사의 제품을 배제하기로 한 것이다. 불매운동에 포함되는 상품이 꽤 있었다. 우선은 빵. 이상하게도 나는 겨울만 되면 호빵과 호떡이 저녁 무렵 당긴다. 집에서 편안하게 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하기에 찬 바람이 불 때 종종 사 먹는다. 그런데 그간 습관적으로 카트에 담았던 제품들이 모두 관련 계열사 제품이었다.
'유사 프랑스 빵집'에서 즐겨 구입하던 식빵과 소보로빵도 마찬가지. 유동인구가 많은 길목마다 존재하는 그 빵집을 아주 오랜 기간 이용해왔다. 여름이면 수시로 문을 열고 들어갔던 '서른 한 가지 맛 아이스크림 가게'는 또 어떻고. 글레이즈드 도넛이 먹고 싶으면 전화로 남은 수량까지 확인했던 도넛 가게와 당근 케이크가 맛있는 이탈리아풍 카페도 모두 우리 동네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간 의식하고 있지 않았을 뿐 우리 가족은 거대한 요식업 그룹의 손아귀 안에서 뱅글뱅글 돌고 있었던 것이다.
그간 부부 계정으로 적립해온 해피포인트가 몇만 원 남아있었지만, 업체의 진정성 있는 반성과 대책 수립이 나올 때까지 계속 불매를 이어나갈 참이었다. 그래도 불매운동은 쉬웠다. 언제나 대체제가 넘쳐났다. 개인 베이커리와 카페, 타 브랜드 제과점 등 빵집은 작은 골목 어귀마다 영업 중이었다. 아이스크림과 도넛 또한 양질의 재료와 특성화된 맛으로 승부하는 개인 가게들이 도처에서 달콤한 향기를 풍기며 손님을 맞이했다.
나와 아내는 5분쯤 길을 돌아가더라도 지역의 개인 사업장을 찾는 이유를 딸에게 알려줬다. '이상한 나라의 솜사탕 맛' 아이스크림을 사랑하는 큰 딸도 성실한 청년 사장님이 경영하는 유기농 아이스크림 매장에서 '강릉 초당 순두부 맛' 아이스크림을 한 숟갈 떠먹더니 엄지를 척 들어 보였다. 사장님은 기분이 좋았는지 맛보기 스푼으로 토마토 바질 맛 아이스크림을 넉넉히 떠주셨다. 프랜차이즈 가게에선 경험하기 힘든 소소한 이벤트였다.
통일된 포인트 적립이 이뤄지지 않고, 카드사 및 각종 결제 시스템 할인 혜택이 적용되지 않는 곳이 많아 지출 규모는 약간 늘어났다. 하지만 불매운동 자체는 나름 의미 있고 즐거운 과정이었다. 아이들도 새로운 가게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안면을 트는 일이 재미있었는지, 다음에는 어디로 갈까? 묻기도 했다. 나는 이때다 싶어 다시 한번 마음을 떠봤다.
소비자의 힘
"딸, 아직도 포켓몬빵이 좋아? 만약 다른 가게에서 다른 빵을 사면 생활비로 사줄게. 너 용돈 안 써도 돼."
딸은 멈칫하고서 눈썹을 심각하게 꿈틀거리더니 자그마하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나 아직 포켓몬 스티커 끝까지 다 못 모았다 말이야. 1세대 포켓몬도 모으려면 멀었어."
나는 알겠다고 말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세상에 영원한 유행은 없으니 언젠가는 포켓몬을 향한 사랑도 시들해질 것이다. 그와 동시에 엄마와 아빠가 매번 이유를 설명해 가며 불매운동을 이어나간 기억도 가슴 속에 남을 것이다.
아직은 이해를 못 하지만, 나중에 돌이켜 보아 드는 생각과 감정도 있을 것이므로 불매운동이 전혀 의미가 없진 않다. 소비자의 구매권은 선거의 투표권과 같다. 어린이는 어른의 신용카드를 손쉽게 긁게 만드는 '에이트 포켓'의 주인공이자, 예비 성인 소비자이기도 하기에 힘이 세다. 세상에는 기업의 이익에 타격을 줘야만 제대로 실현될 수 있는 가치도 있다는 걸 어린이들이 배우면서 자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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