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사람들을 향한 축시, 추모시, 조시가 한권에

김용원 2022. 11. 2. 10:1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용원 객원기자, 오동춘 시집 ‘함께 울고 우는 은혜에 감사’ 출판기념회 소회
김용원 객원기자

황복순 고마운 이름
내겐 못잊을 은인일래
지리산 기슭 마천 고향
한고향 아줌마
부산 땅
절간 같은 집 한쪽
토성동에 사셨다

폐병 환자되어
병마 투쟁 중에도
명문대 내 등록금
선뜻 빌려 주어서
마감날
급히 달려가
등록 마친 난 참 기뻤다

어머니와 사방 다 가도
등록금 빌릴 길 없고
대학입학 포기할 순간
구세주처럼 가진 돈
내 준 뜻
넓고 큰 아줌마 마음
인정 깊고 거룩했다

해병 훈련병일 때
아는 대위 내게 보내 격려한
아, 존경스런 복순꽃 아줌마
1962년 여름 총 닦던 내 손
손에 쥔
어머니 편지에
아줌마 죽음 슬펐다

매화 다시 피는 새봄
서른 아홉 꽃나이에
낙화된 황복순 여사
다시 사실 순 없을까
몹사리
보고픈 복순꽃
연인되어 그립다
(오동춘 시집 ‘함께 울고 웃는 은혜에 감사’ 중 ‘그리운 복순꽃’ 전편)

오동춘 시인의 삶을 잘 보여주는 시라는 생각이 들어 서두에 옮겨보았다. 오동춘, 그는 특이한 성품을 가진 시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무려 10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원고를 단권으로 엮고, 그것도 ‘시집’이라는 이름으로 출간할 수 있었으랴.

지난 10월 24일 오후 서울 강서구 화곡동 화성교회(합신) 비전홀에서 시조 시인이자, 한글학자, 교육자, 사회운동가, 장로교 합신교단의 원로라는 다양한 직함을 가진 송골 오동춘 시인의 스무 번째 시집 ‘함께 웃고 우는 은혜와 감사’(도서출판 에벤에셀) 출판 기념회가 있었다.

이 시집은 살아오면서 만나고 그리워한 사람들과 부대낀 삶의 희로애락이 담긴 342편의 애경사 시로 구성됐다. 그가 만나고 그리워한 사람들의 축시, 추모 시, 조시와 함께 500 여장의 사진이 담겨 있다.

나는 1000여 페이지가 되는 시집이라는 그 독특성에 주목할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리더로서 결혼을 축하하거나 그리운 이를 추모하거나 장례식 행사에서 분위기를 반전시킬 축시, 추모 시, 조시를 지어야 할지도 모를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은 그 모든 필요에 있어서 친절한 안내 역할을 할 수 있어 소장하고 싶은 충분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쓴 342편의 애경사 시(詩)를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폭넓은 교류를 해오며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었는지 알 수 있다. 우리 주님은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12;15)고 하셨는데 그는 그 명령에 순복한 사람이다.

이 책의 제목이 ‘함께 웃고 우는 은혜에 감사’인 것은 그가 모든 만남을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선물로 보고 감사하며 함께 울고 웃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믿는 자의 삶은 이러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는 책에서 “나는 날마다 다섯 기도 제목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나가제시’를 날마다 기도한다. 곧 하나님, 나라, 가정, 제자, 시(詩)를 사랑하며 기도하며 오늘도 살아가고 있다”고 적고 있다. 팔십 중반을 살아오는 동안 부지런히 다른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이 겪는 애환을 함께 하지 못했다면 도저히 쓰여질 수 없는 글들이다. 이 시집에서 그가 얼마나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에 대한 열정과 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느냐는 것을 볼 수 있다.

오동춘 시인

그가 관심을 가지거나 만난 사람의 범위는 매우 광범위하다. 시인의 가족에서부터 친지, 교회 교우, 문인들, 제자들과 그 가족, 스승…. 대충 목차를 넘겨보니 그가 흠모했던 도산 안창호를 비롯해 스승이었던 외솔 최현배, 한결 김윤경 박사와 같은 한글학자 이름들, 그리고 화성교회 원로장로요 장로교 합신 교단의 전국장로회 증경회장을 지낸 만큼 박윤선, 한경직, 조용기, 장경재와 같은 목회자들의 이름과 교단·교회 교우들의 이름들, 한하운, 이태극, 김춘수, 황금찬, 이어령, 임수생 시인과 같은 문인들의 이름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 중에서 작고한 임수생 시인은 필자가 부산에서 살 때 열린시를 통해 조병화 시인으로부터 초회 추천을, 2회 추천은 임수생 시인으로부터 받은 적이 있어 그 이름을 발견하고 감회가 깊었다. 그가 일본 다까야마에서 출생해서 한국으로 이주, 어린 시절을 보낸 경상도 함양 마천의 고향산천을 늘 그리워했다. 그곳의 자연과 지인들의 이름도 시로 등장한다.

이 책에는 그가 가르친 제자들과 그 가족들의 소박한 이름도 시가 되어 빛났다. 필자는 오 시인을 20년 전 열두얼회라는 선교단체에 들어가 지금까지 그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몇 해 전인가는 그를 따라 부산으로 내려가 ‘고향의 노래’ 작사가인 김재호 시인을 만난 적이 있다. 김재호 시인은 문학 청년시절 같은 동인이었고 절친이었다.

이 노래는 이수인 선생이 작곡했는데 오늘날 많이 불려지고 있다. 오 시인은 이 땅의 것들을 사랑했다. 흙을 사랑했고, 한글을 사랑했고, 짚신을 사랑했다. 그는 이 땅의 정체성을 짚신으로 정의했다. 23년 전부터 짚신 정신을 받들자는 ‘짚신문학회’를 설립해서 지금까지 잘 이끌어 오고 있다. 사람은 참되고 진실되며, 지조와 신의가 있어야 하며 어두운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고 늘 강조한다. 그래서 그의 인생철학이자 교육철학이기도 한 참삶, 뼈삶, 빛삶의 전도자가 되었다. 그는 물신주의 앞에 변질해 가는 서양 구두들을 싫어했다. 특히 겉만 번드레한 뾰쬭 구두와 콧대가 높은 힐(heel)과 같은 서양 구두들을 신은 자들을 가소롭게 여기고 필요할 대는 일갈했다.

그의 목소리는 늘 우렁차서 목소리 그 자체가 스피커였다. 그래서 서양 구두들은 늘 그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1990년에 수상한 노산문학상은 그의 높은 문학성, 2012년에 수상한 매천황현문학상 대상은 그의 성품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출판기념회장을 빠져나오며 신명이 없고 굴곡만 잔뜩 많은 내 삶을 되돌아보았다. 사람은 다 흙으로 돌아가야 할 질그릇들이다. 하지만 그 질그릇에 무엇을 담는가 하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는다. 송골 오동춘 시인. 흙과 짚신과 한글과 같은 이 땅의 평범한 것들을 사랑하고 참삶, 뼈삶, 빛삶을 강조한 이 땅의 짚신과 같은 그는 결코 범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질그릇에 이런 것들을 담아 팔십 평생을 달려오는 동안 그는 예수를 담은 한 그루의 크고 울창한 멋진 나무가 되어 하늘을 향해 서 있다.

김용원 객원기자 jonggyo@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