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R 방법 몰라도 심정지 환자 구할 수 있다

김은빈 2022. 11. 2.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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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시도해야 생존율 높아진다”
응급환자 살렸더니 고소?… “법적 책임 없어”
라이프가드(수상인명구조요원)들이 파도풀에서 인명구조 모의훈련을 받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이태원 참사’에서 심폐소생술(CPR)로 생명을 구한 시민들의 이야기가 전해지며 CPR 교육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전문가는 응급상황 시 CPR 정확한 절차가 떠오르지 않더라도 심정지 환자를 구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119 응급의료 전문상담원이 전화로 CPR 절차를 따라하기 쉽게 안내해주기 때문이다.

1일 CPR 등 응급처치 강습을 진행하거나 연계하는 기관에 시민 문의가 급증했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이날 “이태원 압사 사고 이후 심폐소생술 교육 관련 문의가 증가했다”며 “본사와 서울·경기·인천 수도권 지사에 교육 문의가 2배 이상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CPR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SNS상에서는 근거 없는 속설이 퍼지기도 했다. ‘제대로 하지 않을 거면 하지 말라’거나 ‘잘못 건드렸다가 고소당할 수 있다’는 우려다. 

CPR 방법, 제대로 모르면 시도하지 마라?

질병관리청·대한심폐소생협회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심폐소생술은 심장이 멈췄을 때 인공적으로 혈액을 순환시키고 호흡을 돕는 응급치료법이다. 심장이 멈추면 혈액 순환이 중단되는데, 뇌는 4~5분만 피가 차단돼도 영구적인 손상을 입을 수 있어 4분을 골든타임으로 보고 있다. 

일반인이 심폐소생술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시간이 지체될수록 심정지 환자의 뇌 손상이 커지고 회복 가능성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응급조치가 1분 지연될 때마다 환자가 생존할 확률은 7~10%씩 낮아진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해 12월에 발표한 ‘응급처치 교육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의료인 외 심폐소생술 시행 시 생존율은 15%다. 시행하지 않은 경우의 생존율(6.2%)의 2.4배 이상에 달한다. 

질병청 역시 “일반인은 대부분 심정지 발생 초기에 이를 목격하기 때문에 심폐소생술을 시행한 경우 그 효과는 매우 크다”며 “일반인이 심정지 발생 초기에 심폐소생술을 시행한 경우 생존률이 2~3배 이상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동제세동기(AED)를 적용하는 경우엔 생존률이 5배 이상 높아지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의료인이 아닌 일반인이 CPR 절차를 정확하게 숙지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이에 전문가는 응급 상황에서 119에 전화를 하면 가슴압박소생술 방법을 안내받는 등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박시은 동강대 응급구조학과 교수는 “CPR을 할 때 절차가 잘 기억나지 않을 수 있다. 이때 119로 전화하면 된다. 응급의료 상담원은 전화 상담만으로 심폐소생술 지식을 잘 전달할 수 있도록 전문 교육을 받는다. CPR을 처음 해보는 사람도 심폐소생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설명해준다”고 밝혔다.

박 교수에 따르면 심정지 환자가 발생했을 때 119에 신고하면, 전화를 받은 응급의료 상담원이 환자의 상태 등을 물은 뒤 CPR 방법을 자세하고 정확하게 알려준다. 가슴 압박 속도 역시 상담원이 전화로 직접 안내해준다.

박 교수는 “일반인이 제대로 숙지하지 않고 CPR을 진행하면 안 된다는 말은 근거 없는 헛소리”라며 “잘 모르더라도 자신감을 갖고 119 안내에 따라 CPR을 진행하면 사람을 살릴 수 있다. CPR을 한 번도 배우지 않은 사람이 심정지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시도만 해도 생존율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했다.

CPR 했다가 성추행범으로 몰릴까?

‘CPR을 했다가 갈비뼈가 부러지면 치료비를 내놔야 할지 모른다’, ‘가슴 압박을 하다가 성추행범으로 몰려 고소를 당할 수 있다’ 등의 이유로 응급조치에 나서지 않겠다는 반응도 나온다.

그러나 현행법상 응급 환자를 살리다가 발생한 사상에 대해선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5조에 따르면 응급의료 종사자가 아닌 일반인 또는 업무 수행 중이 아닌 응급의료종사가 응급환자에게 선의로 제공한 응급의료 등으로 재산상 손해와 사상이 발생해도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민사책임과 상해에 대한 형사책임을 면제한다. 사망에 대한 형사책임은 ‘감면’하도록 하고 있다. 

질병청 역시 일반인이 응급처치를 한다고 해도 의료법 위반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주위에 의료진이 없는 경우 일반인이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시행한다 해도 법적인 책임은 없다”며 “2008년 7월부터 ‘선한 사마리안 법’이 발효돼 응급 상황에서 일반인 목격자가 구조자로서 시행한 응급처치 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을 면책하는 제도가 마련됐다”고 안내하고 있다.

다만 응급환자가 사망하면 형사책임을 져야 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남아 있어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망에 대한 형사책임은 ‘감면’한다는 조항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응급의료 면책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의 응급의료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전문가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 시민에게 법적인 책임을 묻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며 근거가 불분명한 논쟁으로 응급구조 활동의 가치를 퇴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해당 법 조항은 살해하려는 의도로 CPR을 활용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확보해준 것에 불과하다”면서 “사람을 살리기 위해 CPR을 했는데 처벌을 한다면 누가 응급처치에 나서겠나. 그런 판례는 없다”고 말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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