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脫혐오사회]해마다 늘어나는 '혐오 표현'…'팬데믹' 이후 급증
올해는 9월 기준 2362건
'혐오=비즈니스' 인식에
유튜버들 선정적 혐오 콘텐츠 양산
가해자→피해자→다시 가해자로 발전
혐오 표현 없이 영상 공유도 2차 가해
편집자주 - 사상자 307명, 사망 155명, '이태원 참사'로 전 국민이 큰 충격을 받은 이때, 해묵은 '혐오'가 다시 꿈틀대고 있다. 종류도 유형도 다양하다. 정부가 피해자 지원 방침을 내 놓자 "춤추고 놀러 갔다가 사고 났는데 왜 내가 낸 세금을 쓰냐"는 반응부터 "단체로 나온 중국인들이 밀었다"는 근거 없는 의혹과 인종·성별 갈라치기가 기승을 부린다. 혐오 게시물에는 가해자도 피해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가해자는 또 다른 혐오 가해자에 의해 피해자로 전락하고 전염병처럼 순식간에 번져 나간다. 결국 이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우리 사회의 자정 노력뿐이다. 참사 이후 숨 가빴던 우리의 이틀을 되돌아보며 혐오 사회를 벗어나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를 살펴봤다.
#. 700여명 구독자를 보유한 자동차 튜닝 전문 A유튜버는 지난 30일 이태원 실시간 사고 현장 영상을 2개 올렸다. 그동안 랩핑과 도색 과정을 주로 다뤘던 해당 유튜버는 이태원 실시간 사고 영상으로 편당 20만뷰에 가까운 시청 수를 올렸다. 한 부동산 전문 B유튜버 역시 그동안 부동산 관련 콘텐츠만 게재하다가 이태원 참사 영상을 연달아 게시해 18만뷰 이상을 기록했다. 트위터에서도 해시태그(#)로 '이태원'을 검색할 경우 '이태원 사망', '이태원 사고' 등이 관련 검색어로 뜬다.
[아시아경제 차민영 기자]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지난달 31일 긴급 심의를 열고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적발한 11건의 사진·영상물을 삭제하거나 접속 차단했다. 이 중 국내 사업자는 8건, 해외 사업자는 3건이다. 일반 민원 수도 17건에 달했다. 방통심의위는 유튜브와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모자이크 처리되지 않은 이태원 참사 현장 이미지와 영상이 무차별적으로 확산하면서 선제적 조치에 나섰다.
잔혹·혐오 게시물 매년 늘어…2021년 팬데믹 지나며 폭발적으로 급증
방통심의위에 따르면 인터넷상의 잔혹·혐오 게시물은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관련 게시물 수 심의 건수는 2018년 383건에서 2019년 577건, 2020년 709건, 2021년 2453건, 2022년 9월 누적 2362건으로 매해 늘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한창이던 2021년부터 관련 민원이 급증하면서 심의 건수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특히 이태원 참사처럼 사회가 공분하는 사태가 벌어질 때 조회 수와 개인 홍보 목적을 노린 영상 공유·조롱 글들이 이슈를 재생산하며 혐오 표현과 게시물이 급증한다.
정부는 이태원 사태보다 더 큰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해 즉각 대응에 나섰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인터넷과 등을 통해 혐오·허위·자극적 영상을 공유하는 방안에 대한 자제를 권고한 바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SNS·포털·커뮤니티 사업자들에 공유 게시물 자제를 권고하고 방송사들에는 재난 보도 준칙을 준수해 달라고 당부했다. 포털 등도 자제 및 주의를 담은 공지 글을 올리며 협조에 나섰다.
트위터 코리아는 미디어 관련 정책 공지, 카카오는 카페 및 카카오스토리 공지사항을 게시한 상태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 역시 공지사항을 통해 게시물 작성에 대한 사용자 주의를 당부했다. 다만 유튜브 코리아는 로고 변경을 통해 추모 의미의 '검은 리본'만 달고 별도 공지사항은 올리지 않았다.
혐오 표현 없이 영상 공유 행위 자체로도 유가족에 대한 '2차 가해'
전문가들은 직접적인 혐오 표현이 아니더라도 영상 공유 행위 자체로도 유가족에 대한 2차 가해로 이어질 우려가 높다고 보고 있다. 영상 공유 자체로도 최초 의도와 관계없이 넓은 범주의 혐오 표현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뉴스와 SNS를 통해 참사를 지켜본 국민들 역시 심리적 트라우마를 경험하게 됐다며 영상과 사진을 여과 없이 퍼뜨리는 행위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홍성철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는 "피해자들에게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사건임에도 과거와 달리 인터넷에 영구적인 기록으로 남다 보니 상처가 될 수 있다"며 "피해 당사자나 유가족뿐만 아니라 영상을 접한 일반인들도 심한 피로감과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다"고 짚었다.
다만 포털에 대한 사전 검열 등 규제에 대해선 순기능보다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이병민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표현의 자유 등이 있기 때문에 사전 검열로 가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며 "자율적으로 맡기되 장기적으로 교육이나 가이드라인 제정 등을 통해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홍성철 교수 역시 "성숙한 시민의식이 뒷받침돼야 할 문제이지 이를 규제로 해결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해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혐오가 돈이 되는 시대, 가해자는 또 다른 가해자에 의해 피해자 된다
누군가의 죽음이 돈이 되는 시대다. 누군가를 혐오하는 것만으로 이용자들의 후원이익을 얻을 수 있다. 혐오의 강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열광적인 지지층을 얻을 수 있고 이는 결국 수익의 증가로 이어진다. 가장 손쉬운 장사다. 선정성이 짙을수록 논란이 거세질수록 돈이 된다. 자동차·부동산 전문 유튜버가 이태원 사고 현장으로 달려가고 거친 언사를 쏟아내며 '한남', '한녀', '중국인 음모론' 등이 인터넷상에 돌아다니는 이유다.
'이태원 참사'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와 포털들이 선정적인 영상, 사진을 차단하고 혐오 발언들을 삭제하고 있는 사이에도 이들은 돈벌이를 위해 혐오를 부추긴다. 혐오의 가해자는 곧 또 다른 혐오의 가해자로 인해 피해자로 바뀐다. 2019년 방송학회지에 게재된 논문 '인터넷 개인방송에서 혐오 발언은 어떻게 비즈니스가 되는가?'에서 저자 김지수 씨(서울대 석사 논문)는 유튜브와 아프리카TV에서 활동 중인 창작자들의 영상을 대상으로 여성 혐오 발언이 비즈니스로 활용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혐오로 인한 사회적 긴장 높아지면 집단 광기·폭력으로 번질 수 있어"
논문에서 김 씨는 "혐오는 상품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창작자의 혐오 발언이 이용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때로는 이용자들의 부추김에 의해 시작되기도 한다는 연구 결과를 밝혔다. 양방향으로 소통이 이뤄지면서 창작자들이 이용자들이 보고 싶고, 듣고 싶어하는 혐오를 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혐오 발언의 등장 여부와 그 강도에 따라 후원수익이 증가했다는 점도 연구 결과에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연구는 여성 혐오와 관련됐지만 이를 인종, 국가 등을 대입한다 해도 같은 결과가 나올 것이다.
'혐오사회'의 저자 카롤린 엠케는 "혐오 행위는 남의 일처럼 방관하는 태도에 의해 사회적으로 공모된다. 혐오로 인한 사회적 긴장이 계속 높아지면 언제든지 통제하기 어려운 집단적 광기와 폭력으로 번질 수 있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 침식하고 있는 혐오로 인한 긴장을 끊임없이 완화하고 관리하지 않을 경우 재해보다 더 큰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차민영 기자 bloom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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