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전 오열후 사라진 정몽준…참사후 여야 '손놀림'부터 막았다
10월 29일 발생한 ‘이태원 참사’ 직후 여야가 일제히 당내에 최우선으로 주문한 건 ‘SNS 자제’였다. 국민의힘은 10월 30일 김석기 사무총장 명의로 시ㆍ도위원장, 당협위원장, 지방자치단체장, 광역ㆍ기초의원에게 ‘SNS 글 자제’를 포함한 ‘이태원 사고 추모와 국가 애도 기간 긴급 후속대책’ 지침을 전달했다.
사고 직후 이른 아침부터 “이태원 참사는 서초동에서 출퇴근하는 희귀한 대통령 윤석열 때문”(남영희 민주연구원 부원장)이란 말이 터져 나온 더불어민주당은 신경을 더 곤두세웠다. 이날 오전 박홍근 원내대표는 전 의원에 “SNS 글 게시에 매우 신중을 기해달라”는 문자를 보냈고, 오후엔 조정식 사무총장이 당직자와 선출직 공직자를 대상으로 SNS 자제 지침을 전달했다.
정치권에서 참사 직후 ‘손가락 단속령’부터 내려진 건, 과거 손놀림 하나하나에 거센 역풍을 맞아본 경험 때문이다. 대규모 재해ㆍ재난 사고 상황에서, 시의적절하지 못한 SNS 사용으로 시민의 억눌린 분노를 본인에게 집중시킨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①국민 미개론=대표적인 사례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직후 터져 나온 이른바 ‘국민 미개론’이다. 참사 이틀만인 18일 정몽준 당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의 막내아들(당시 18세)은 페이스북에 “국민들은 대통령이 (현장에) 가서 최대한 수색 노력하겠다는데도 소리 지르고 욕하고 국무총리한테 물세례 한다”며 “국민이 모여서 국가가 되는 건데 국민이 미개하니까 국가도 미개한 것 아니겠냐”고 썼다.
이는 전날 세월호 유족이 사고 현장에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과 정홍원 국무총리에 항의한 것을 두고 쓴 글이라, ‘유족 비하’ 논란으로 이어졌고 엄청난 역풍을 불러일으켰다. 정 후보는 기회가 될 때마다 “막내아들의 철없는 짓에 아버지로서 죄송하기 그지없다”며 눈물도 흘렸지만, 지지율 하락을 막지 못했다.
한때 대선 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1위를 달릴 정도로 기세가 좋던 정 후보는 결국 그해 6월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전 시장에 13%포인트 차로 대패했다. 7선 국회의원을 역임한 그의 생애 첫 낙선이었다. 이후 그는 어떤 선거에도 출마하지 않고 사실상 정계를 떠났다.
②자작시=지나친 감성 표현으로 뭇매를 맞은 일도 있다. 역시 세월호 참사 직후다. 당시 김문수 경기지사는 사고 당일부터 이틀에 걸쳐 트위터에 ‘캄캄바다’ㆍ‘가족’ㆍ‘밤’ㆍ‘진도의 눈물’이란 제목의 자작시 4편을 올렸다. 시의 내용은 “진도체육관ㆍ팽목항구에 비가 내립니다 / 먼바다 속 구조는 어려운데 비ㆍ바람까지 불고 있네요”(진도의 눈물) 등이다.
세월호 희생자 대부분이 경기 안산 단원고 학생과 교사인 상황에서 경기지사가 시 연재를 이어나가자 온라인에선 “도지사가 지금 한가하게 운율 맞춰 시를 쓸 때냐”는 비난이 빗발쳤다. 김 지사는 18일 트위터에 “제 진심과 달리 오해를 초래하게 돼 무척 안타깝다”는 해명을 남겼고 자작시 4편 중 1편만 삭제했다.
③함박웃음=사망 소식을 알리는 재해 뉴스 화면을 배경으로 함박웃음 단체 사진을 찍어 논란이 된 의원들도 있다. 2020년 7월 30일 대전에 기록적 폭우가 내렸을 당시,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는 ‘처럼회원과 박주민, 이재정’이라는 내용과 함께 의원실 사무실에서 민주당 의원들과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사진 속 이들 뒤편에 위치한 TV에서는 ‘대전 침수 아파트 1명 심정지’라는 자막이 달린 대전 폭우 소식이 보도되고 있었는데, 대전 중구를 지역구로 둔 황운하 민주당 의원도 함께 자리해 논란이 커졌다. 황 의원은 이튿날 페이스북에 “수해 피해자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마음의 상처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몹시 죄송한 마음”이라면서도 “기념사진을 찍기 위한 웃음을 물난리 보도장면과 악의적으로 연계시키는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보도행태”라고 언론 탓을 했다.
④폭우속 찌개=폭우 중 부적절한 사진을 올렸다가, 이를 지적한 시민과 설전까지 벌인 정치인도 있다. 수도권 지역에 400㎜ 가까운 폭우가 내린 지난 8월 8일, 박강수 서울 마포구청장은 페이스북에 “맛있는 찌개에 전까지…꿀맛입니다^^♡”는 내용과 함께 ‘먹방’, ‘손가락 브이’ 등 여러 사진을 올렸다. 당시 집중 호우로 마포구엔 산사태 주의보가 발령되는 등 서울 전체에서 시민 5명, 공무원 1명이 사망한 와중에 올린 글이었다.
페이스북엔 “눈치 좀 챙기시라”는 비판이 줄을 이었는데, 이에 박 구청장은 “전을 먹어서 죄송합니다”, “문재인을 존경하시는군요”라는 비꼬는 식의 반박을 남겨 논란을 더 키우기도 했다. 결국 이튿날 그는 게시글을 삭제한 뒤 페이스북에 “물의를 일으키게 된 점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고 썼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손흥민 안면 부상, 교체 아웃...순식간에 얼굴 퉁퉁 부어올랐다 | 중앙일보
- '이태원 토끼머리띠' 지목된 남성 "나 아니다"…꺼낸 증거 보니 | 중앙일보
- '평당 2억' 노리는 서빙고 신동아…"46평 투자땐 10억 번다" | 중앙일보
- "지원 요청 거절당했다" 이태원 파출소 직원이 내부망에 쓴 글 | 중앙일보
- 배우 이지한 빈소서 한참 운 임수향 "너무 야속하고 슬퍼" | 중앙일보
- "소변 콜라색이면…" 이태원 생존자 피멍 본 전문가의 당부 | 중앙일보
- 며칠만에 차익 46억 챙겼다…'83년생 슈퍼왕개미' 구속 | 중앙일보
- 이태원 참사날…2캐럿 다이아 보물찾기 행사에 60대 실려갔다 | 중앙일보
- 이근 "쓰레기 ΧΧ"…이태원 사망자 비난 악플에 분노 | 중앙일보
- 아들 세금 22억→1억 확 준다…45억 집 가진 아빠의 대물림 수법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