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 상정해 최선 다하자"…한국을 반면교사로 배우는 일본 [뉴스원샷]

김현기 2022. 11. 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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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의 사고에 충격을 받았다. 우리도 최악을 상정해 최선을 다하자. 그게 위기관리의 요체다."

지난달 31일 일본 도쿄 가스미가세키(霞が関)에서 열린 '전국경찰본부장회의'. 치안 총책임자인 다니 고이치(谷公一) 국가공안위원장은 회의 모두에 이태원 압사 사고를 꺼내 들었다.

당장 이달 6일 대규모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하는 '기후 노부나가 축제' 행사와 관련, 경찰의 긴급 지침이 내려갔다.

한국에서도 유명한 배우 기무라 다쿠야(木村拓哉)가 사무라이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로 분장해 기마행렬을 선보이는 이번 행사에는 96만6000명의 신청자 중 당첨된 1만5000명이 관람석에 앉을 예정이지만 표가 없는 인파가 얼마나 몰릴지는 예측하기 힘든 상황.

기후현에서 매년 10월에 열리는 '기후 노부나가 축제'의 모습. 기후현 홈페이지 캡처


기후현 경찰은 서울 이태원 언덕에서의 사고처럼 군중 눈사태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게 두 가지 원칙을 세웠다.

'평면이동'과 '일방통행'. 최대한 지하도의 계단 이용을 차단하고, 경찰 차량 위에서 인파의 흐름이 멈추지 않고 흘러가게끔 효과적으로 통제하는 이른바 'DJ 경찰'을 행사장에 배치하기로 했다.

또 관람 구역을 16곳으로 나눠 들어가고 나가는 시간을 다르게 조절하기로 했다. 비행기 탑승 시 자리에 따라 탑승 수속 시간에 차이를 두는 것과 비슷한 방법이다.

일본 도쿄 시부야에서 지난달 30일 'DJ 폴리스'가 개조한 경찰차에 올라가 행인들의 통행을 안내하고 있다. 이영희 특파원


그뿐 아니다. 연말 12월 31일 밤에서 신년에 걸쳐 한 해의 복을 기원하는 '하츠모데(初詣)' 인파가 가장 많이 몰리는 메이지 진구(明治神宮) 측은 신사 본당으로 이어지는 참배 길을 일방통행으로 만들어 역류를 막기로 했다.

이태원 참사를 전하는 일본 언론의 보도는 "일본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란 논조가 대부분이다. '후진적 안전사고'란 보도를 하는 곳도 찾아보기 힘들다. 표현 하나하나에 신중한 일 언론의 특성이 배어 나온다.

다만 1일 자 인기 경제주간지 다이아몬드의 온라인판에는 눈에 띄는 기사가 실렸다. 대충 이런 내용이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일본에서도 이런 군중눈사태가 일어나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 현대 일본이 한국만큼 군중눈사태를 일으키지 않는 건 과거의 교훈을 살려 경비체제를 확실히 깔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인과 한국인을 비교하면 위기관리 능력도, 지식의 풍부함도 한국인보다 일본인이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그건 일본이 한국보다도 먼저 발전하면서 한국보다 많은 경험치와 데이터를 갖고 있기 때문일 것" "일본은 재해대국이다. 모든 상황에 대비하여 매뉴얼화돼 있다. 한편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 한국에선 사고가 사건이 발생하면 희생자의 유족들만 슬픔에서 교훈을 얻고, 정부는 그때마다 이렇다 할 대책을 취하지 못했다." 양국의 국민성 차이를 지적한 대목도 있다.

다이아몬드 온라인 홈페이지에 실린 관련 기사. 다이아몬드 온라인 캡처


"일본은 좋든 나쁘든 신중한 국민성이다. '일단 해보고 안 되면 방법을 바꾸면 된다고 생각하는 한국과는 다르다. 이런 국민성도 사고·사건의 정도 차이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평상시부터 한국에는 다른 사람을 밀며 앞으로 나아가려는 습성이 있다. 이태원 사고를 보고 필자가 떠올린 것은 한국의 출퇴근 러시아워였다. 필자는 수년간 여기에 휩쓸린 적이 있다(필자는 한국 체류 일본인임)."

최근 일본에선 과거 어느 때보다 '한국 배우기'가 진행 중이다. 디지털 기술뿐 아니라 선진화된 행정시스템, 압도적 경쟁력의 대중문화 등 한국을 벤치마킹하는 분야는 다양하다. 1980~90년대 소니·도요타가 한국 기업들의 모방 대상이었다면 이제는 삼성전자·현대차가 일본 기업들의 연구 대상이 돼 있다.

하지만 유독 안전사고에 관한 한 아직 한국은 일본에 "우리는 저렇게 하지 않을 것"이란 '반면교사'의 대상이다. 8년 전 세월호 사고가 그랬고, 이번 이태원 참사가 그랬다.

우리는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들을 너무도 많이 하늘나라로 떠나보냈다. 슬픔과 참담함 속에 한·일 국민성까지 거론되는 건 매우 불편하고 화가 나는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런 상황을 초래한 우리 어른들의 책임은 무겁다. 이런 모욕을 우리 미래 세대가 다시 듣지 않게 하려면 우리는 지금 뭘 해야 할까. 운 좋게 이 생을 사는 모든 이들에 주어진 숙제다.

김현기 순회특파원 겸 도쿄총국장 kim.hyun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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