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 칼럼] 무분별한 독과점 규제는 혁신의 무덤이다
중국 마윈 설화 사건 데자뷔
국내 당국 기다리기라도 한듯
규제의 칼날 마구 휘두를 기세
자칫 창조적 기업의 혁신 막고
기술의 하향 평준화 우려돼
2년 전만 해도 중국의 IT 경제는 활기로 가득 찼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뉴욕 증시에 상장된 중국 IT 기업 퇴출에 나설 만큼 미국엔 큰 위협이었다. IT굴기의 기저엔 마윈이 중국에서 인터넷을 개척해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로 성장시킨 알리바바 그룹이 있었다. 국내 상장 기업들도 알리바바와의 협업 소식만 들려도 주가 폭등으로 대박을 터트리기도 했다. 알리바바 자회사로 간편결제서비스 알리페이를 운영하는 앤트그룹은 홍콩 증시에 사상 최대 공모가 상장이 예고돼 하늘로 비상할 일만 남았다. 그러나 중국몽은 일장춘몽으로 변했다. 지금으로부터 꼭 2년 전 오늘 창업자 마윈의 감독 당국 소환 사건으로 상장은 무기한 연기됐다. 그가 일주일 전 중국의 금융개혁이 안이하다며 비판한 게 화근이었다. 이후 마윈이 백기 투항을 했다는 보도와 앤트그룹의 국유화 소문이 이어졌고 그 여파가 다른 IT 기업 규제로 번졌다.
국내에서 최근 발생한 카카오 먹통 사태가 마윈 설화 사건과 오버랩되는 거 같아 우려스럽다. 앤트처럼 카카오도 창조적 기술력으로 혁신의 아이콘으로 성장한 기업이다. 국민메신저 카카오톡을 통해 메신저 시장을 평정한 뒤 검색포털 1위 네이버를 제치고 코스피 시가총액 2위에 오르기도 했다. 카카오뱅크·페이 등 핀테크 기업을 탄생시키며 은행 등 전통 금융기업까지 위협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금융시장에서 핀테크 기업의 ‘메기’ 역할을 기대하며 지원에 나섰다. 그러나 지난달 15일 화재로 인한 데이터센터 작동 불능과 카톡 먹통 사태는 카카오를 순식간에 ‘국민 밉상’으로 전락시켰다.
중국이 마윈을 끌고가 항복을 받아낸 것처럼 한국도 카톡 사태가 터지자 득달같이 규제의 칼을 꺼내 들었다. 공정위는 사태 이틀 뒤인 지난달 17일 독과점 규제에 대해 “국민의 이익을 위해 당연히 제도적으로 국가가 필요한 대응을 해야 한다”는 대통령 발언이 나오자마자 플랫폼 규제 검토에 나섰다. 카카오가 돈 되는 사업에 몰두한 나머지 데이터센터 이원화 등에 소홀히 한 책임을 묻는 건 불문가지다. 국회가 2020년 입법이 좌절됐던 방송통신발전 기본법을 재소환해 재난관리 대상에 데이터센터를 포함하려 하는 건 이런 취지다.
다만 4700만 회원을 거느린 메신저 장악이 소액 결제, 택시 예약 등 다른 피해로 연결됐다며 손해배상 외에 독과점 규제에 나서는 건 논리적 비약에 가깝다. 지금도 메신저 플랫폼 진입장벽이 충분히 낮은데 어떻게 독과점을 털고 경쟁을 유도하겠다는 건지 선뜻 이해가 안 된다. 소비자들은 카톡 서비스가 불편하면 라인, 텔레그램 등 다른 메신저로 옮길 테고 당국이 우려하는 독과점 문제도 자연스레 해결되는 게 아닐까. 갑의 지위를 이용한 불공정 행위는 더불어민주당이 검토 중인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을 통한 차단으로 충분하다.
간편결제 서비스 원조인 미국 페이팔의 창업자 피터 틸이 스탠퍼드 대학 스타트업 강의 노트 ‘제로 투 원’에서 설파한 경쟁론과 독점론을 살펴보자. 그는 경쟁은 건강하고 독점은 해롭다는 종래 이론을 깨부순다. 그에게 완전경쟁은 경제원론에나 나오는 이상적인 상태일 뿐이다. 경제학자들이 이에 집착하는 것은 단지 모형화가 쉽기 때문이다. 독점 기업 역시 경제학자들에겐 정직하지 못한 방법으로 경쟁자를 몰아냈건, 혁신을 통해 최고 자리에 올랐건 모두 퇴출 대상일 뿐이다. 그러나 독점이 퇴출된 경쟁 시장에서 기업들은 차별화가 없는 상품을 판매한다. 혁신은 실종되고 생존 경쟁이 난무한다.
반면 틸에게 독점 기업은 타사가 감히 비슷한 제품조차 내놓지 못하는 창조적 혁신기업이라는 점에서 진보의 원동력이다. iOS로 마이크로소프트(MS)를 제치고 모바일 OS 시장을 장악한 애플이 그렇다. 19 70년대 하드웨어 시장을 장악한 IBM은 소프트웨어를 독점한 MS에 왕좌를 내줬다. 이처럼 진보의 역사는 더 나은 기술을 가진 독점 기업이 전임자의 자리를 대신하며 소비자들에게 편리함을 제공하는 과정이다. 카카오 독과점을 규제하기 전 바로 이 지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위적인 규제에 매달리면 그 기업만의 독특한 혁신은 물론 소비자 후생까지 갉아먹을 수 있다. 그래도 굳이 메스를 대고 싶다면 카카오를 능가한 기술을 갖춘 기업이 나올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닦는 게 우선이다. 무분별한 독과점 규제는 기술 하향 평준화의 지름길이다.
이동훈 논설위원 d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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